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폐관수련인 Nov 24. 2022

차가운 바람과 함께

가장 기운 찰 수 있는 시기

낙엽이 떨어지는 것을 눈으로 보는 것보다 아침 길을 나서며 내딛는 발걸음이 더욱 계절의 변화를 느끼기 쉽다. 바뀌어진 공기를 몸이 직감할 때는 나도 모르게 신이 나 있는데, 나보다 더 일찍 아침을 여는 사람들은 이 느낌을 먼저 겪었겠다.


겨울이 좋다. 비 내리거나, 바람 부는 날은 더 기분 좋다. 정확히는 겨울에 새벽 운동을 마치고 아침밥을 먹을 때면, 낮은 방 온도가 새삼 신선하게 느껴지는데 그런 점이 좋은 거다. 워낙 더운 날에는 내가 힘을 못써서 하루 종일 골골거리고, 거기다 구내염까지 도지면 날도 더운데 쉴 틈 없이 끓는 물처럼 부글부글 댄다. 여름에는 이런 점이 달갑지 않다. 나는 비로소 추울 때 사람의 집중력이 높아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만 행복한 시기인데, 가족들에게는 그렇지 않다. 가족들 넷 모두 생일이 1~2달 안에 뭉쳐있는데, 그런 거 보면 생일에 따라 성향이 비슷함을 가지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이런 추워진 계절은 업 된 기분에 자신감도 높여주는 것인가 입김을 불어가며 거리를 뛰어댈 때마다 나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라며 굳게 믿어준다. 이럴 때 보면 평소에는 역사에 다시없을 대역죄인마냥 자기 비하 하던 거는 어디 갔고 자존감이 낮은 건지 높은 건지 모를 모래성 같은 마인드의 쿨타임이 이상하게 도는 것 같다. 청개구리가 따로 없네.


내가 이 시기가 특별하다고 생각하니까 잊을 수 없는 기억들도 더 많이 남아 있게 된 것 같다. 연말이 다가오고 다시 또 모험을 떠나보려 하니, 한국에서 안부 전화들이 온다. 여간 걱정들을 적지 않게 하시는 것 같다.

타지에서 홀로이 연말을 보낼 거란 생각에 무슨 시뮬레이션들을 돌리시는 건가 나의 고독사를 려하는 것 같다. 드라마의 영향을 좀 받으신 건가, 원천 모를 이상한 질문들의 목적지는 이성관계라는 발작 버튼을 향해 연결된다. 사실 한국에 안 가는 게 아니다. 못 가는 거다.


살면서 가족들과 떨어져 지낸 적이 없었다. 길어야 한 달이지, 년수로 떨어진 경험은 군 복무가 유일했었다.

그렇게 입대한 지 6개월 만에 휴가를 나왔을 때, 가족과 다시 멀어져야만 하는 사실보다 눈물 맺힌 어머니의 눈을 보는 게 더 힘들었다. 나는 그 상황을 겪는 게 어렵다. 그래서 되도록이면 휴가를 나오지 말자고 생각했었다.


올해 1월에 한국을 다녀오며 더 크게 다짐하게 되었다. 독일로 다시 떠나는 날, 밤 12시 출발인데도 아침부터 눈시울이 붉어진 모습을 애써 아닌 척하려는 엄마를 보고 생각하게 되었다. 휴가 나온 한 달 내내 가게에서 함께 있었는데도, 떠난다는 이유로 하루 종일 눈에 눈물이 맺혀 있는 이 중년 여성에게서는 나 같은 모질이 아들과의 헤어짐이 참 싫은가 보다.


동생이 옆에서 엄마한테 울었냐고 한 술 더 뜬다. 한 달 내내 웃고 지내다가 왜 갑자기 이런 분위기가 되었는가. 공항으로 가는 길에는 말없이 운전만 하는 아버지가 더 신경 쓰인다. 조금이라도 더 챙겨가라고 캐리어백에 마스크를 꽉 꽉 넣은 부모님의 마음을 내가 전부 이해할 수 있을까. 그럴 때마다 내가 반드시 목표 이루어야 이들에게 행복을 줄 수 있는 방향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당장에 죽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게 이미 비행기는 탔고, 한 껏 추운 계절의 기쁨을 느끼며 돌아가야 하는데 동생이 보내준 가족들의 응원 격려가 담긴 음성 메시지들이 눈시울을 붉어지게 만들었다.

이런 상황은 겪을 때마다 적응이 안 된다. 감정도, 마음가짐도 컨트롤이 어렵다. 왜 본인들의 인생은 못 살고 자식들만 바라보며 사실까. 우리 엄마, 아버지가 너무 안쓰럽다가도, 그런 상황을 만들어드린 무능함이 죄송스럽다. 부모가 되어보지 못한 나는 이해심 없는 철부지가 따로 없다.


다행히 돌아가는 길의 좌석 라인에는 나 밖에 없어서 겨울 기운 좀 받았구나 했는데, 기내식을 물어보는 스튜어디스가 살짝 놀란 눈치다. 비록 눈물 콧물 질질 짰으나 "비프스테이크"를 떨림 없이 정확히 발음하고자 했다. 다시 또 찾아와서 필요한 거 없냐고 물어봤던 그 직원 분, 고마웠었다. 거기서 단백질 보충제 없냐고 물어보면 미친놈 소리 들을까 봐 와인으로 달래었다.


그래, 애초에 이곳에 온건 학위를 따러 온 거니 목표부터 이루어야 마음 편히 만날 수 있을 것 같다. 힘을 내야 하는 시기에 마음을 바로 잡지 못하면 죽도 밥도 아니게 된다.


모든 일을 마치고 다음 겨울이 오게 될 때, 그때는 좀 더 발전된 사람으로서 찾아갈 수 있겠다.

이전 08화 흙과 나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