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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폐관수련인 Jul 15. 2024

흙과 나무

아들과 아버지

흙처럼 투박한 사람이 서 있다. 물처럼 유하지 못해 안간힘을 써도 한 걸음이 고작이다. 한껏 귀해지라 빛을 비추어줘도 드러내지 못하는 내면에, 겉모습은 아둔해 보이기 짝이 없다. 내가 나를 바라볼 때의 시선이다.

박사가 되어도 여전히 연구에 서투른 나는 스스로를 과학자라 부를 수 없는 것 같다. 아무래도 학위는 머리를 썼다 보다는 고집이 세서 취득한 같다. 잠 못 이루는 불면증은 여전히 길을 찾고 헤매고 있는 모습을 잘 보여준다.


이런 고민도 하루 이틀이지... 이쯤 되면 쉽게 생각할 필요가 있을 텐데, 어째서인지 나는 그런 모습을 편안해하지 않는다. 사람을 만나도, 잠자리에 들 때도, 이루지 못한 그날의 실적에 대해 머리가 복잡하게 된다.


이런 나를 보며 안타까워하는 아버지가 있다. 말로는 나를 포기했다고 에둘러 말하지만, 속마음은 전혀 다른 양상을 내비친다. 그렇다. 결혼하라는 소리이다. 걱정은 말아라, 혼자 보다는 둘이 낫지 않겠나. 만나라도 봐라라는 등의 말을 해주는 아버지는 불과 5분 전만 해도 손주 보는 건 마음에서 이미 내려놨다고 발언했었다.


안 한다는 게 아니고 못 하는 건데... 인기 없는 이의 눈가는 촉촉해질 수밖에 없다.


울집 대장, 여사님. 이들의 여정은 과일 장수로부터 시작했다. 열일곱에 이들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 아주 충격이었었다. 생각보다 정말 아무것도 없이 가게까지 차렸었구만. 

왜 이들이 나를 기를 쓰고 공부시키려는지 그때 알게 되었었다. 그래서 애초에 유학 길에 들어설 때부터 재정 지원을 받지 않으려고 다짐했었다. 이들의 피 땀 섞인 재산을 나는 받을 수가 없다.


나무가 뿌리내려 양분을 받을 때 흙의 역할이 아주 중요하다. 이들은 나를 나무로 생각하고 있지만, 나는 이들이 내게 나무임에 틀림없다. 먼 곳을 바라보게 해주는 언덕 위의 나무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장에 모아 놓은 돈이 없는데 어찌 결혼하나, 그 이전에 이성도 없는데...

솔직히 아무도 없는 산속 골방에 틀어박혀 연구만 하고 싶은 게 소망이긴 하다. 그래야지 학자로서 이들에게 떳떳할 것 같다.


그러면서 다시 또 신경 쓰지 않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 아버지가 있다. 언젠가 만날 인연이니 다 때가 올 것이라는 아버지의 목소리에는 사실 제발 좀 빨리 가정을 이루고 살라는 속 마음이 들린다. 

빠르게 흘러가는 시간에 마음 착잡하고 막힌 듯 답답하다. 내가 만약 가정을 이룬다면, 이들함께 있는 시간도 적어질 것이니까.


아버지의 나이를 생각하면 다급한 마음이 이해가 된다. 그럼에도 잘 모르겠다. 내가 아버지처럼 될 수 있을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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