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과 아버지
흙처럼 투박한 사람이 서 있다. 물처럼 유하지 못해 안간힘을 써도 한 걸음이 고작이다. 한껏 귀해지라 빛을 비추어줘도 드러내지 못하는 내면에, 겉모습은 아둔해 보이기 짝이 없다. 내가 나를 바라볼 때의 시선이다.
박사가 되어도 여전히 연구에 서투른 나는 스스로를 과학자라 부를 수 없는 것 같다. 아무래도 학위는 머리를 잘 썼다 보다는 고집이 세서 취득한 것 같다. 잠 못 이루는 불면증은 여전히 길을 못 찾고 헤매고 있는 모습을 잘 보여준다.
이런 고민도 하루 이틀이지... 이쯤 되면 쉽게 생각할 필요가 있을 텐데, 어째서인지 나는 그런 모습을 편안해하지 않는다. 사람을 만나도, 잠자리에 들 때도, 이루지 못한 그날의 실적에 대해 머리가 복잡하게 된다.
이런 나를 보며 안타까워하는 아버지가 있다. 말로는 나를 포기했다고 에둘러 말하지만, 속마음은 전혀 다른 양상을 내비친다. 그렇다. 결혼하라는 소리이다. 돈 걱정은 말아라, 혼자 보다는 둘이 낫지 않겠나. 만나라도 봐라라는 등의 말을 해주는 아버지는 불과 5분 전만 해도 손주 보는 건 마음에서 이미 내려놨다고 발언했었다.
안 한다는 게 아니고 못 하는 건데... 인기 없는 이의 눈가는 촉촉해질 수밖에 없다.
울집 대장, 여사님. 이들의 여정은 과일 장수로부터 시작했다. 열일곱에 이들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 아주 큰 충격이었었다. 생각보다 정말 아무것도 없이 가게까지 차렸었구만.
왜 이들이 나를 기를 쓰고 공부시키려는지 그때 알게 되었었다. 그래서 애초에 유학 길에 들어설 때부터 재정 지원을 받지 않으려고 다짐했었다. 이들의 피 땀 섞인 재산을 나는 받을 수가 없다.
나무가 뿌리내려 양분을 받을 때 흙의 역할이 아주 중요하다. 이들은 나를 나무로 생각하고 있지만, 나는 이들이 내게 나무임에 틀림없다. 먼 곳을 바라보게 해주는 언덕 위의 나무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장에 모아 놓은 돈이 없는데 어찌 결혼하나, 그 이전에 이성도 없는데...
솔직히 아무도 없는 산속 골방에 틀어박혀 연구만 하고 싶은 게 소망이긴 하다. 그래야지 학자로서 이들에게 떳떳할 것 같다.
그러면서 다시 또 신경 쓰지 않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 아버지가 있다. 언젠가 만날 인연이니 다 때가 올 것이라는 아버지의 목소리에는 사실 제발 좀 빨리 가정을 이루고 살라는 속 마음이 들린다.
빠르게 흘러가는 시간에 마음 착잡하고 막힌 듯 답답하다. 내가 만약 가정을 이룬다면, 이들과 함께 있는 시간도 적어질 것이니까.
아버지의 나이를 생각하면 다급한 마음이 이해가 된다. 그럼에도 잘 모르겠다. 내가 아버지처럼 될 수 있을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