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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폐관수련인 May 23. 2024

한국, 별, 그리고 아버지

2년 3개월 그리고 7일 만의 한국

많이 힘들었겠다니까

생애 처음으로 유럽을 다녀오시고 나서 만나는 지인들에게 말씀하신 나의 아버지의 말이었다.

울퉁불퉁한 발바닥 아픈 유럽 길바닥과 웅장한 중세시대 배경을 목격한 것에 대한 자랑인 듯 불만 섞인 듯한 말들이 있는 게 내 아버지 설명의 특징이다. 독일-체코를 돌아 들어온 한국에서는 사람들마다 내가 보낸 시간들을 쉽게 말씀하시지 않았다.


대체 어떻게 생활을 했길래 그 모양이냐

한국에 와서 혈압을 3번 쟀는데, 죄다 180이 넘게 나왔다. 그 결과를 본 아버지가 내게 화가 잔뜩 나셨다. 사실 옷 셔츠가 팔뚝에 껴서 그런 것인데, 그마저도 재검사-간호사-의사의 정상 확인을 받고 나서야 안심하셨다.

생각보다 몸에 큰 문제는 없었다. 어디 한 곳이 망가져 있어야 되는 것 아닌가 싶을 생활 습관이었는데 다행히 아직은 멀쩡했다. 그냥 잠을 좀 자라는 의사의 조언뿐임에도 아버지는 여전히 화가 안 풀리셨다.


우리 아들이 독일에서 박사 학위를 따고 왔는데요, 한국에서 업무 좀 하려고요

내가 혼자 할 수도 있는 일들을 마치 어린아이 다루듯 옆에서 하나하나 챙겨주려고 하신다.

병원, 우체국, 은행 직원들에게 갈 때마다 쓸데없는 사족을 붙이는 아버지에게 왜 그런 말을 하냐고 따지면 입만 삐쭉 나오시는 아버지다. 이제는 하다못해 서울 길을 찾아가는 것도 하나하나 훈수를 두신다.


독일 거주지에 오자마자 밥솥과 냉장고부터 열어보고 청소하는 아버지의 손은 참 분주했다. 내가 먼 타지로 나와 혼자서 외롭게 살았을 거라고 생각하시는 아버지는 나를 챙겨주고 싶은 거다. 표현이 서툰 것인지, 아끼려는 감정표현을 참 눈치채기 쉽다. 물론 나도 마찬가지이다. 내가 누구 자식이겠나.


한국에서는 가게 일을 도우며 가족들과 함께 있는 시간을 더 갖고 싶었다. 나는 쉬는 법을 모르는 줄 알았는데, 가족들과 함께 있는 시간이 내게 가장 큰 휴식임을 깨달았다. 이들이 내 가족이라서 마냥 좋다는 생각 뿐이다. 신기한 점이 가족들과 함께 생활하는 동안 잠을 푹 잘 수 있었다. 나는 이런 순간을 바라왔던 건지 혼자 마라톤 하듯 이런 순간이 올 때까지 스스로를 괴롭힌 건지 모르겠다.


한국에 와서 달라진 또 하나의 이점은 이제는 자동차를 아주 잘 운전하는 동생과 함께 어디든지 갈 수 있다는 것이었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흘렀기도 하고, 대견스럽기도 한데 일단 에어백이 어디서 터지는지부터 찾았다. 칼국수를 먹으러 대부도를 향해 가는 길에 떠오른 아버지의 말들은 눈시울을 붉게 만들었다. 표현도 안 하는 사람이 본인 몸이나 신경 쓸 것이지...

2년 만에 본 아버지의 얼굴 주름이 마음을 참 철렁 이게 만든다. 흘러가는 시간이 애석하고, 아쉽다. 나만 흘러갔으면 하지만, 시간이 흘러야 당신의 아들이 더욱더 나아가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

나는 이들이 나의 가족이라서 좋다. 내가 잘하고 싶은 마음 뿐이다.


본래 한국에 오면 별이 보고 싶었다. 초기 계획은 몽골에 갈 예정이었지만, 그럴 일정들이 아니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돌아온 한국에서 동서남북 매일 같이 발등에 불이 붙은 듯 쉴 시간이 없었다. 오전 오후 두 번씩 약속을 잡게 된 상황에 휴가 같지 않은 휴가라 다 취소하고 싶은 지경이었다. 어째서 왜 학위 발표를 끝냈음에도 내 구내염은 더 늘어만 가는가.


그럼에도 이렇게 다 만나고 나서야 이들이 별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빛나는 인간들이 참 많구나. 나도 분발해야지. 이제 나는 내 앞길을 찾아 나서야만 한다.



350km 나 떨어진 시골 집성촌 동네 어르신들이 축하로 반겨주셨다. 현수막에, 잔치에, 덕담까지. 마치 아이돌이라도 된 기분이었다. 70-80년대 대학 등록금 마련용 애지중지 키우는 소가 이런 기분이었을까? 어딜 가나 축하받고 하도 먹어서 24시간 내내 얼굴이 부어있다. 


그럼에도 많은 분들에게 축하받는 것은 참 감사한 일이었다. 내가 공부할 수 있는 것도, 공부하게 된 것도 모두 아버지 어머니 덕이다. 이 두 분이 입이 귀에 걸려 있으니 앞으로 내가 어떻게 해야 이들의 행복을 오래 보게 될 수 있는지는 답이 정해져 있다.

근데 제발 좀 결혼 이야기는 압박 안 해주셨으면 좋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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