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과의 대화의 끝은 항상 마음에 불안감이 남는다. 먼 곳을 떠나오고 그 감정은 갈수록 더 커져가는 것 같다.
장사만 32년, 우리 엄마, 아버지의 경력이다. 날이 덥든 춥든 자식들을 공부시키기 위해서라면 쉬지 않고 치킨을 튀기셨었다. 그렇게 아들이 공부를 하기 시작했을 때, 더욱더 휴식 없이 열성적으로 일을 하셨다. 자식들이 가게의 일손을 맞추는 것보다 공부에만 집중하는 것이 그들의 절실한 소망이고 꿈이셨다. 그러던 고 3의 여름, 아버지는 사고를 당하셨다.
말이 빗길에 미끄러진 오토바이 사고이지, 무리하신 것이 원인 같다. 다행히 천운으로 크게 다치지는 않으셨지만 그 사실을 1주일 씩이나 우리에게 알려주지 않으셨다. 그렇게 꼭꼭 숨기고 또 꽁꽁 싸매서 말을 꺼낸 엄마의 한마디는 참 섭섭하기도 하고 왜 그렇게 당신의 우선순위에는 자식만 놓는 건지 화가 날 뿐이었다.
그렇게 말하게 된 이유도 생계에 문제가 생긴 것 때문이었다. 그때는 배민이나 배달 업계 시스템도 활성화되어있지 않아서 배달에 익숙지 않는 엄마에게는 버거운 문제였다. 아버지의 빈자리가 그저 크게 느껴졌다.
그렇다고 중2 짜리인 내 동생이 나갈 수는 없으니 내가 가서 도와드렸다. 혼란스럽고 정신없는 그 순간에도 엄마는 오롯이 나의 대학 입시 걱정뿐이었다. 사실 나는 가장 중요한 시기든, 인생의 갈림길이든 마음속에서는 어차피 대학은 갈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 순간에도 나만 바라보려는 엄마가 안쓰러울 뿐이었다.
그렇게 9월, 고대하던 서울대에 떨어졌을 때 부모님은 서로를 탓하며 싸우셨다. 나는 귀가 울리도록 소리 지르며 싸우는 그 상황에 원인모를 스트레스를 받았다. 그런 순간들도 결국 이겨내지 못했다는 것 때문일까, 혹은 하루 3시간을 자고 공부해도 실패해버린 태평한 자신에게 화가 난 것일까, 아니면 어쩌면 공부를 더 일찍 시작했더라면 이라는 핑곗거리를 찾으려는 게 화가 난 것일까. 이 의문점은 이후 강원도 산골에서 나라를 지키다가 깨닫게 되었다. 저 두 사람을 내가 불안하게 만들었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래서 그런지 대학 합격 소식에 눈시울이 붉어지는 순간, "나의 노력이 보상받았다!"의 기쁨보다는 단 하루도 빠짐없이 아침마다 못 일어나는 나를 깨워준 가족들이 고마워 더욱 내 감정을 솟구치게 만들었다.
전국에, 그리고 세상에는 나보다 더 뛰어나고 대단한 사람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렇게 노력해도 아직 서투른 것이 있고, 어쩌면 가봤자 적응에 힘겨웠을 수도 있다. 내가 겨우 이런 대학에 가봤자 누가 알아주겠냐만은 결국 그 두 분의 오랜 절실함이 이루어졌던 것임에는 분명한 것 같다. 그래서 내가 공부를 하는거는 나 혼자 나아가는게 아니라 가족들과 함께 가는 거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왜 그렇게 언제나 당신보다 당신의 자식이 우선일까. 남들처럼 가끔은 여유를 가지고, 동년배들과 함께 카페에서 시끄러운 수다를 떠들며 시간을 보내지는 않는 걸까. 어쩔 때 친구 없는 나를 보면, 모전자전인 건가 싶기도 하다.
여우비가 내리던 날, 유학에 진전이 없었던 나를 데리고 간 절에서 엄마는 다시 또 사무치게 그리고 절실히 기도를 하셨다. 사실 내가 보기에는 그건 기도가 아니라 비는 것에 가까워 보였다. 퇴원한 지 하루도 안 되어서 기운 받아가자며 따라왔는데, 내가 종교가 없다는 걸 떠나서 매번 저 모습을 보는 것에 미안함만 남기 때문이다. 자식이라는 이유로 당연하듯이 있기에는 자라오며 받은 것들이 너무 많다.
두 손 모아 애원하는 횟수가 반복될 때마다 나의 무능함도 함께 커지는 것 같다. 애초에 시작부터 꾸준히 믿음직스러웠으면 덜 걱정드렸겠지. 이대로는 벌목하는 도끼마냥 상처만 내겠다 싶은 마음이다.
대체 이 중년 여성의 마음속 절실함이 얼마나 타 들어가는 걸까. 물과 흙이 되어 불을 좀 꺼드리고 싶은데, 계속해서 절을 올리며 당신의 양말을 젖게 만드는 그 부처란 사람이 미웠다.
그날, 마음속으로참 강하게 쌍욕들을 때려 박았다. 물론 비속어가 대부분이지만, "네가 뭔데 우리 엄마 발을 젖게 만드냐"가 주 내용이었던 것 같다. 사실은 무능한 나에게 했던 소리이다.
그런데 그이후에 유학 합격 메일을 받고 독일로 향하게 되었다. 안 하던 짓을 해서 그런지 두 번 했다가는 꿈에 나올 것 같은 느낌이다. 신기방기 하네.
매일이 우리 엄마, 아버지에 대한 걱정과 불안감에 휩싸여 있다. 어찌 되었든 내가 대신 그들의 또 다른 가능성으로 살아갈 것이니 이제는 절실함을 조금이나마 내려두고 그들의 인생에서 여유를 집어넣었으면 좋겠다.
내가 흙과 물이 되어 영양가 있는 사람이 된다면 잎사귀가 자랄 수 있는 나무로 만들어 오래오래 보고 싶은 마음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