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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폐관수련인 Nov 06. 2023

울집 대장

어머니 휴대폰에 저장된 이름

시간이 참 빠르다. 어느새 다시 또 겨울이 다가오고 몸의 체력이 떨어지는 게 느껴진다. 그렇게 아침 운동을 신나게 다녀와서 다시 누워버렸다. 1시간 정도 되었나, 전화가 몇 통이 와 있다. 무슨 일이 있는 건지 빠르게 전화 거는 그 잠깐에도 지난 트라우마가 몰려온다.

 

왜 전화 안 받냐 이샛기야

내 생일이었다. 걱정 많은 어머니의 격양된 목소리는 숨도 쉬지 않고 몰아붙인다. 우리 집 여사님은 무조건 욕부터 하고 보는 스타일이시다. 아니 근데 걱정된다고 1시간에 20통이나 전화하는 사람이 어디 있나 그것도 간격 맞춰서 2~3분마다 1통씩.


너 같은 아들 한 명 더 낳았으면 내가 제 명에 못살아

내가 무슨 아무도 없는데 졸도한다고 답을 정해 놓은 사람처럼 구냐는 말에 대답하는 여사님이다. 우리 집은 생일을 두 번 맞이한다. 대외적으로 한 번, 내외적으로 한 번. 음력 생일을 따르기 때문이다. 축하받는 기간이 길어지니 좋게만 생각하는데, 본인 생일이 언제인지는 알아야 되지 않나. 매년 헷갈린다.


아침 뭐 먹었냐는 물음과 동시에 소고기라도 사서 먹으라고 돈을 보내셨다. 이것도 답을 정해 놓으셨네. 우리 집 여사님의 감정은 알기 쉽다. 걱정된다며 짜증과 투덜을 섞어 말하는 이 중년 여성은 모질이 아들이 보고 싶다는 감정을 크게 둘러 말하는 것을 안다. 요즘 들어 부쩍 더 횟수가 늘었다.


이런 어머니와 아들의 대화를 옆에서 조용히 듣고 있는 사람이 있다. 우리 집 대장님이다. 관심 없는 척, 무뚝뚝한 척하시지만 우리 집 누구보다 귀를 열어 두신 당신이다. 박사 입학 사실을 알렸을 때, 사실 여사님 보다도 더 기뻐하신 것을 안다. 중, 고등학교 시절부터 내가 반장이 되었다는 이유로 아버지 친구분들이 귀가 박히게 들었다며 알려주셨다. 덕분에 내가 공부하게 된 이유도 당신의 그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싶은 이유 이기도 하다.


맛있는 것 좀 사 먹었냐?

가게 일을 마치고 막걸리를 한 잔 하시는 당신은 속마음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사진까지 보내주는 내 답장에 흡족해하시는 목소리다. 그렇게 어디 아픈데 없냐고 물어보는 말이 따라온다. 감정을 알기 쉬운 것은 가족들 특성 인가보다. 당신 또한 나를 보고 싶어 한다. 그런데 여사님과 같이 내게 못해준 것만을 담아두고 있다. 내가 더 잘 사는 집안에서 태어났었다면, 더 좋은 곳으로 유학 갔을 거라고 말하는 당신이다.


매번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나도 모르게 화를 내고 있다. 아니 근데 당연히 화가 나지 않나. 왜 자꾸 못해줬다고만 생각하는가. 아니면 내가 무언가 마음에 걸리게 만든 거라도 있는 건가 싶었다. 부모님의 속마음을 이해하고 싶지만, 나는 그저 그런 생각을 하지 못하게 만들고 싶을 뿐이다.


한국 오면 뭐가 가장 먹고 싶니?

집안의 기둥으로서 당신의 세월을 나 또한 지켜봐 왔다. 매 순간의 선택들이 가족의 행복만을 위했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대장님의 걱정은 혹여나 당신의 모질이가 우울증에, 향수병에 걸리지는 않을까 봐 물은 염려들이었다. 이것 또한 어지간히 고민하고 또 고민해서 물어본 질문이라는 것을 안다. 나는 그런 당신이 매일 같이 찬 바람을 맞아가며 일을 하는 것이 걱정된다. 곧 다가올 겨울은 더더욱 말이다.


나는 이들의 염려와는 달리 죽을 수가 없다. 이들의 행복 또한 이번 생의 시간이 다 할 때까지 함께 해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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