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물리는 공전주기
19살, 나는 이기고 싶어 안달 났었던 사람이 있었다.
하향지원으로 입학했다는 저 친구는 공부, 운동, 손재주뿐만 아니라 집안 환경까지 학생이 할 수 있는 모든 면에서 나를 웃돌았다. 단박에 똑똑함이 드러나는 친구라서, 무너질 수 없는 견고한 탑처럼 1, 2, 그리고 3학년에 올라와서도 전교 1등을 굳건히 차지하고 있었다.
1학년 2학기, 공부하는 방법을 그제야 알게 된 나는 고등학교 생활 내내 이 친구의 이름은 수도 없이 들어왔었다. 반친구, 선 후배, 선생님까지 모든 이들이 언제나 이 친구에 대한 칭찬만을 나열하고, 그 인기는 남들의 부러움을 샀다. 나도 그를 부러워 하던 이들 중에 하나였다.
그렇게 3학년이 되어서 같은 반이 되었을 때, 신이 내게 기회를 줬다고 생각했다. 저 친구를 단 한 번만이라도 이겨보고 싶었다. 사실, 초, 중학교 내내 공부와 담쌓던 놈이 이제 막 성적 좀 올려봤다고 내가 저 친구를 어떻게 이길 수 있나, 욕심이었다. 쌓아온 지식의 경험을 무시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럼에도 이를 갈았다. 중간고사가 끝남과 동시에 기말고사를 준비했었다. 하루 수면 3시간, 식사, 화장실 가는 시간을 제외하고 버스 이동 시간까지 나머지는 공부만 했었다.
이 때는 어떻게든 가족들에게 당신의 아들이 노력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아등바등한 것 같다. 그렇게 16 등, 9, 그리고 2. 결과를 받아보고 화가 나서 씩씩대기보다는 넘을 수 없는 벽과 마주해 가을철 찬 공기가 더욱 싸늘하게 느껴졌다. 이전에도 나는 나 스스로가 공부에 재능은 없다고 생각했지만, 이 일이 계기로 나는 매우 노력을 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고 다짐하게 되었다.
어느 정도 이미 알고 있었던 사실이지만, 이 친구에 대해 듣던 것과 달리 직접 보고 나서 깨달았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얼마나 노력했을지는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렇게 졸업 이후 대학으로 인생길은 나뉘게 되었었고, 인하대에 들어가 지금은 대기업에 입사해 남부럽지 않게 잘 살고 있다고 소식을 들었다.
여기까지 서론을 길게 풀어헤쳤지만, 사실 내 동생 이야기가 하고 싶었다. 동생이 대학원에 입학하게 되었다.
동생은 지금껏 나 때문에 그림자에 드리워 빛을 못 받아왔다. 항상 비교받고 살아온 이 친구는 나한테 말 못 한 서러움이 많았을 거다. 그래서 대학원 진학에 대해 고민을 털어놨을 때, 내게 참 반가운 이야기였다. 긴 터널 뒤에는 빛을 바라보는 순간이 온다는 건 이 걸 두고 이야기하는 듯했다. 물론 몇몇 시련들이 찾아오겠지만, 잘 헤쳐나갈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나 보다도 더.
동생은 직장 생활을 하면서도 전공 공부를 손에 놓지 않았기 때문에 합격할 수 있었다. 그렇게 인하대학교에서도 기회가 왔었다. 이미 동생의 마음은 다른 대학에 가 있었지만, 그럼에도 나는 동생에게 더 큰 별이 될 수 있다고 강요하게 되었다. 나의 지난 아집이었다. 지금까지 나와 비교받았던 것들을 단 한 방에 날려버릴 수 있다 라며 부담을 주었다.
동생은 워낙 주눅이 들어 나보다도 더욱 공부에 자신감은 없지만, 한 번 본인의 손에 맞게 꿰차면 나는 상대가 안되게 더 잘할 거라는 걸 알고 있다. 가끔 이전에 내가 어떻게 다짐하고 살아왔는지 상기될 때가 있다. 융통성 하나 없이 한 길만 파고드려는 극단적인 나는 깨달음이 필요해 보인다. 아주 많이.
그럼에도 아주 가끔씩 이런 순간들을 통해 나에게 주기적으로 깨달음을 주는 것 같다. 인생의 기로에 설 때면 그래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