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나의 남자친구
그날도, 어느 날처럼 쓸쓸하고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나누며, 하마처럼 웃고 있는 날이었다. 누나는 조금씩, 자주 먹는다. 아주 큰 문제는 그가 아주 ‘조금만’ 먹는다는 것이었고, 그건 나를 아주아주 뚱뚱하게 만들었다. 그날은 유독 내가 더 하마처럼 보였다. 누나는 누나의 가장 친한 사람 중 한 명을 소개해주겠다고 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누나가 ‘아주 소중하다’고 말한 사람들은 대부분 그의 전, 전전, 전전전... 남자친구들이었기에, 이번에도 그럴 것이라 생각했다.
예를 들면, 잘생긴 검사. 민사고를 졸업하고 스타트업을 창업한 대표. 방송에 출연해 유명세를 타고 있는 유명인. 그날도 예외는 아니었다. 누나가 소개해준 그의 전 남자친구는 조용하고, 온화한 눈빛을 가진 사람이었다.하나같이 잘생기고, 부족할 것 없어 보이는 사람들.‘미인의 특권인가.’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우리는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사이처럼 편안하게 이야기를 시작했다.그가 내 이야기에 궁금함을 가졌는지는 모르겠다.그렇지만 미남을 보는 게 너무 오랜만이라, 들뜬 나는 내 이야기를 시작했다. 지루한 이야기들.
내가 얼마나 훌륭한 사람이 되고 싶은지.
성공하면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그런 애송이의 혼잣말 같은 이야기들.
그러다 며칠 전,
조금 사귀다 헤어진 사람의 이야기를 꺼냈을 때—
그가 갑자기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남자?”
내 표정이 확 바뀌는 걸 눈치챈 그는
“남자…? 아니, 여자…?” 하고 로봇처럼 반응했다.
그의 눈에 스친 당황스러움을 놓치지 못한 나는
작게 누나에게 물었다.
“혹시 말했어?”
누나는 나를 바라보다가
“내가 너한테 언제 그런 말을 했어?” 하고 외쳤다.
그건 일종의 항변이었다.
자신은 그런 실수를 한 적 없다는.
하지만 어떤 시점에서 누나는 분명, 그 이야기를 어딘가에, 누군가에게,
자연스럽게 흘렸을 것이다.
조금 외로워졌다.
젠장.
어색한 공기를 미소로 넘기지 못한 나는 결국 먼저 일어섰다.
“형, 누나가 좀 자야 할 것 같아요. 이제 일어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그는 조용히 가겠다고 했다.
그런데 갑자기 지갑을 꺼내며 말했다.
“내가 누군가의 조카를 보는 게 너무 오랜만이라… 돈을 좀 뽑아왔어. 용돈 주고 싶어서.”
(나는 조카가 아니라, 사촌동생이다.)
밤이라 잘 보이지 않았지만 지폐 한 뭉치가 눈앞에 놓였다.
5만원짜리가 제일 위에 있었다.
나는 놀라 “아니, 이렇게 많이 주신다고요?” 라고 말했더니
그는 웃으며 말했다.
“아, 그래 보일 거야.”
그제서야 5만원 아래에 놓인 만원짜리들이 보였다.
(역시…)
웬지 다행이라 생각했다.
모두 5만원짜리였다면,
그를 괜히 용서해버릴지도 몰랐으니까.
그는 조용히 집을 떠났다.
그의 마음을 나는 알 수 없다.
어쩌면, 집에서 자고 가고 싶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를 재워두고 클럽이나 갔으면 어땠을까.
누나가 좋아하는 사람은,
좋아할 운명에 처해 있는 사람임으로—
그가 자고 갔으면 했다.
그날은, 그런 외로운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