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손에 가득 책을 안고 나오며, 나는 무거운 책들을 잘 샀는지 곰곰이 살펴본다. 대부분은 아이 문제집들이지만, 간간히 나의 책도 몇 권 있다. 형형색색 아이의 문제집 표지색깔 사이에 무채색인 나의 책들이 끼워져 있다. 언제나 책을 사 오는 기쁨은 황홀하지만, 집에 와서 그 책 한 페이지를 펴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지나야 한다. 대부분의 독서는 원한다고 해서 무작정 다 읽히지는 않는 법이니까.
그저 내가 사 온 그 틈바구니 속에서 타인의 생각과 타인의 언어를 이해하려면 나 역시 타인을 이해할 자세가 되어 있어야 한다. 언제부터였던가. 그런 생각을 가지게 된 것이.
아직도, 여전히 독서는 어렵지만 최대한 담백하게 읽으려고 하는 편이다. 문장을 잡아두려고 하지 않는다. 흘려보내는 문장들이 다가오는 문장들보다 더 많지만, 그렇게 다가오는 문장들이 어떨 때는 서늘하게 마음을 움직이기도 한다. 아무도 알려주지 않는 타인의 생각을, 마치 몰래 훔쳐보듯이 조심히 열어보는 듯한 느낌을 받기도 한다. 저마다의 고유의 색깔을 가지고 있는 그 문장들이 한 번씩 마음을 뒤흔들 때면, 가끔 울고 싶어지기도 한다. 울림이란, 그런 게 아닐까. 타인의 감정과, 언어와, 온도에 괜히 뒤틀려지는 나의 시공간이 묘하고도 이상함을 느끼는 것. 어쩌면 그게 울림일지도.
여름의 초입은 더웠고, 나의 두 손은 무거웠지만, 조금은 기특해 보이기도 하다고 생각한 나의 발걸음이 경쾌하다. 나는 시집도 사고, 산문집도 두권이나 골라왔다. 이 시집을 읽기는 할까. 잠깐 들춰본 이 산문집 두 권을 펼치기는 할까. 그런 고민 따위는 서점에 두고 온다. 지금은 가득 든 내 두 손에 집중하기로 한다. 현재는 언제나 늘 여기 지금, 내가 있는 곳에 존재하고 있다 라는걸 잊지 않으려 한다. 지나간 시간에 마음을 쓰지 않기로 한다. 잡을 수 없는 것에 대한 아쉬움은 아쉬운 대로 놓기로 한다. 읽을지 말지 고민하던 시간은 과거가 되었으니 쿨하게 넘기기로 한다. 언젠가는 읽겠지. 읽다가 말다가도 시작은 하겠지.라고 생각하며.
그렇게 미뤄진 책들이 몇 권이나 되는지 이제는 손가락으로 셀 수도 없을 만큼 많아진 것은, 어쩔 수 없는 사실이다. 읽다만 책들, 읽으려고 했던 책들. 작년인지 재작년인지 언제 샀는지도 모르는 책들. 책장 안에 먼지만 머금고 있는 책들을 생각한다. 서글프고 고요하게 가로로 놓여있는 책들을 바라보며 집에 돌아온 나는 사온 책들을 식탁 위에 올려놓는다. 이 식탁 위에서 밥도 먹고, 글도 쓰고, 책도 읽었다. 새로 사 온 책들을 세로로 얌전히 올려놓는 나의 손길이 다정하다. 나는 다시 또 이 식탁 위에서 디저트도 먹고, 커피도 마시고, 글도 쓰며 책을 읽을 것이다. 비록 그것이 하다가 말지언정, 해야 하는 일이 또 한 가지 늘었다.
형형색색의 아이의 문제집도 차곡차곡 꽂아놓는다. 이 문제집을 풀기 시작할 때쯤엔 오늘 산 책을 다 읽긴 했을까. 의문감을 가지며 크기와 색에 맞게 가로로 문제집을 끼워 넣어둔다.
그렇게 어쩌다 읽었는데 좋은 책을 발견하게 되면, 또 마음이 쿵하는 순간이 오면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그 책을 선물해 줘야지.라고 생각하며 견고하면서 사각형으로 정갈하게 놓여있는 책들을 바라본다.
어쩌면 그 답은 나의 아이가 알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