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콜라스 파티_더스트(호암미술관)
호암미술관에서 열렸던 니콜라스 파티의 국내 최대규모 개인전 <더스트>는 이미 종료된 전시다(2025년 1월 19일 종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에 후기를 남겨 놓는 것은 그 전시가 미술사의 한 구석에서 혼자 사부작거리다 밀려난 나의 취향과 고민을 상당부분 반영하여 해결해 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전시를 보러 너무 늦게 간 탓에 그 감동을 여러 사람들과 나누진 못하지만, 새로이 알게 된 이 작가의 세계를 스스로 기억하고, 또 나와 비슷한 취향을 가진 분들과 공유하여 나중에라도 그가 한국에 다시 온다면 함께 볼 수 있게 되길 기대한다.
먼저 작가에 대해 알아보자. 나는 사실 이 작가를 이번 전시에서 처음 알게 되었는데, 찾아보니 아트 바젤을 비롯해 뉴욕 경매 등에서 연일 최고가를 경신하고 있는, 현재 국제적으로 대단히 인기있는 작가였다. 스위스 작가이며, 주로 파스텔을 재료로 다소 기괴한 느낌을 주는 초현실적 이미지의 작업을 한다. 유년 시절부터 그래피티와 가까웠으며, 대학에서 영화, 그래픽디자인, 3D애니메이션을 전공하고, 이후 아티스트 그룹을 결성하여 미술, 음악, 퍼포먼스가 융합된 전시와 공연을 만들기도 했고 한다. 이후 그의 작업은 회화를 중심으로 전개되어 왔지만, 앞선 다양한 경험을 통해 벽화, 채색 조각 등 다양한 장르를 아우르는 총체적 설치미술을 선보이고 있다.
니콜라스 파티에게 미술사는 영감을 위한 소중한 보고(寶庫)이다. 그는 고대부터 근·현대를 아우르는 다양한 작가, 모티프, 양식, 재료 등을 자유롭게 참조하며 그만의 독자적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특히 18세기 유럽에서 유행한 파스텔을 재료로 풍경, 정물, 초상 같은 회화의 전통 장르를 재해석한다. 선명한 색, 단순한 형태, 생경한 이미지가 어우러진 그의 작품은 과거 미술에서 보아왔던 전형적 이미지에 기반하면서도 현대의 과감함과 기발함, 세련됨이 동시에 느껴지며, 가벼운 유머가 곁들여져 있으면서도 형이상학적 개념에 대한 진지한 사유가 엿보인다.
전시 제목 ‘더스트’는 그의 작품에서 주재료로 선택된 파스텔이 그저 재료에 머물지 않고 작품의 주제로까지 확장되는 파티의 작품세계와 연계된다. 쉽사리 공기 중으로 흩어지는 파스텔은 지극히 일시적인 재료로 파티에게 있어서 파스텔화는 ‘먼지로 이루어진 가면이자, 화장과 같은 환영‘이다. 즉 파티에게 파스텔화는 먼지와 같은 입자들로 현재 잠깐 존재하다 사라지는 세계이며, 파스텔을 구성하는 입자는 그 세계 속에서 잠깐 존재했다 사라지는 모든 것들이다. 이는 결국 파티의 세계관과 연결되면서 시간의 흐름 속에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는 우리와 우리의 세계를 의미한다.
파티는 이번 전시를 위해 리움미술관의 고미술 소장품을 참조하고 이에 영감받은 여러 신작을 선보였다고 한다. <군선도>, <십장생도 10곡병>, <백자태호>, <용두보당> 등이 그것인데, 그는 이 고미술 작품의 이미지와 상징을 서구의 고미술품의 이미지와 상징과 뒤섞고, 다시 현재와 뒤섞어 시대와 문화를 넘나드는 대화를 시도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그의 이번 작업이 이전 이런 형식의 콜라보 전시에서 보던 것처럼 이미지적 차용만을 하는데 그치지 않고, 고미술 작품들이 탄생하게 된 문화적 맥락과 표현하고 있는 상징의 의미를 정확히 알고 접근해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어내고 있다는 사실이다. 내가 이 전시를 높게 평가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럼 사전 정보는 이쯤 일러두고 본격적인 작품을 보며 니콜라스 파티의 세계를 좀더 자세히 들여다 보자.
이 전시를 위해 호암미술관은 1층과 2층 전시장을 동일한 구조로 만들어 놓고 작품 또한 대응되도록 설치하였다. 이런 구조적 대칭은 그 속에서 병치된 고미술과 현대작업을 하나로 통합해 준다. 예컨대 거대한 파스텔 벽화의 배경 앞에 고미술품이 놓인 광경은 그 자체로 하나의 설치작품이 되면서 어떤 기술적 장치(요즘 유행하는 화려한 영상과 조명의 효과를 강조한)가 없이도 몰입적인 환경을 제시한다. 뿐만 아니라 각 전시실에 놓인 작품이 소재적 혹은 상징적 일관성을 이루면서 전시장을 마치 하나의 독립된 세계로 느껴지게 한다.
1층 공간에서 먼저 주목해야 할 것은 <십장생도 10곡병>이다. 여기에 나오는 십장생 하나하나가 앞으로 나올 파티 작품에 쏙쏙 숨어있기 때문이다. 관람자가 전시를 보며 이 십장생(해와 달(하나의 존재로 봄), 구름, 산, 돌, 학, 거북, 불로초(버섯), 물(폭포), 소나무, 사슴)들이 어떻게 개별작품으로 들어가 있는지 찾아보는 것도 전시를 보는 재미있는 방법일 듯하다.
두번째로 주목했던 것은 동굴을 재현한 거대한 파스텔 벽화 앞에 <백자태호>를 위치시키고, 그 맞은 편에 같은 동굴을 날개로 중앙에 초상화를 그려 넣은 미니(mini) 삼면제단화를 대칭으로 놓은 공간이었다. 미니 삼면제단화의 경우 서구의 종교화 형식인데, 화면이 세 부분으로 되어 있고, 양쪽 화면이 덮개(날개) 역할을 할 수 있어 덮어서 보관할 수 있는 형식을 가지고 있다. 파티의 이 작품에서는 양쪽 덮개 부분에 백자 태호의 배경이 되는 파스텔 벽화와 동일한 동굴이 그려져 있고, 가운데 메인 화면에 성인의 이미지를 한 초상화가 그려져 있었다. 사실 이 공간엔 이 작품들만 있지 않고, 또 두 작품이 대칭으로 마주보지도 않으며, 삼면제단화의 경우 크기가 확연히 작아 처음에는 이것들이 대응되어 놓여 있다는 것을 단번에 알아보기 어렵다. 하지만 두 작품이 배경으로 똑같은 이미지를 쓰고 있고, 중앙의 <백자태호>와 성인의 모습을 한 초상에. 동일한 상징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서로 대응되는 것임을 알 수 있었다. 똑같은 배경이란 동굴이며, 동일한 상징이란 바로 태양이다. 자세히 보면 성인의 머리는 오렌지빛에 가까운 노랑으로 동그랗게 표현되어 있는데, 나는 이를 태양이라 해석한다. 그 이미지도 그렇거니와 서구 문화에서 성인 자체가 빛과 같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백자태호> 역시 왕이 될 자의 탯줄을 보관하는 용기로, 왕을 상징한다 할 수 있다. 과거 왕조시대에 왕은 늘 태양으로 상징되곤 했었다. 게다가 친절하게도 그 옆쪽 벽면에는 태양을 상징하는 파스텔화가 두 작품 사이를 연결하고 있다.
2층으로 올라가보자. 1층에서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는 거대한 폭포 그림이 걸려 있다. 십장생도에서 영감을 받은 바위 틈으로 쏟아지는 폭포를 이렇게 재현하고, 폭포의 수직적 압도감을 가장 잘 구현할 수 있는 곳에 위치시킨 듯하다.
2층 전시실로 들어서자 아주 귀여운 작품이 있었다. 길쭉한 형태의 푸른 주전자였다. 한눈에 봐도 어떤 고미술 작품을 모티프로 작업했는지 예상이 됐다. 그것은 바로 다음 공간에 있던 <용두보당>이다. <용두보당> 역시 1층의 백자 태호와 같이 거대한 파스텔벽화 앞에 배치되어 있었다. <용두보당>의 배경이 된 파스텔 벽화는 <용두보당>과 같은 푸르스름한 색으로 표현된 겹겹이 둘러쳐진 거대한 산맥의 모습이었다. 작가는 이 두 작품을 왜 이렇게 배치했을까? 그 이유를 알려면 먼저 <용두보당>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과거 사찰 권력이 강했던 시절, 사찰의 영역이 시작되는 지점에 각 사찰을 상징하고, 영역을 표지하는 거대한 깃발이 걸려 있었다. 그 깃발을 당이라 하고, 그 당을 지지하는 지지대를 당간이라 이른다. <용두보당>은 그 당간을 미니어쳐로 제작한 작품이다. 그 소용은 아마도 사찰 건물 내부를 장식한 소품이었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정확한 사실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결국 니콜라스 파티는 이 용두보당이 무엇인지, 과거 어떤 용도로 쓰이던 물건인지를 정확히 알고 용두보당이 실제 당간의 크기란 가정하에 그것이 실제 놓여 있어야 할 곳에 위치한 모습을 전시장에 구현했다 할 수 있다. 전국에 제대로 된 당간이 남아있는 사례는 계룡산 갑사가 유일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 당간의 모습을 참고한 것인지, 아무튼 남의 나라 전통 미술에 대해 이렇게 열심히 공부하고 작업해 준 파티씨에게 개인적인 감동을 느꼈다. 개인적 감동도 감동이지만 두개가 병치된 모습이 실제 산에 위치한 당간을 보는 것이 아닌데도 자연의 압도감이 느껴져 몰입감이 상당했다.
전시를 다 보고 나올 무렵, 재미있는 작품을 발견했는데, 바로 개 두 마리가 머리에 장식처럼 달려 있는 초상화였다. 군선도의 개를 차용하여 초현실적이면서도 유머러스한 이미지를 만들어 낸 작가의 위트가 돋보이는 작품이었다. 자세히 보니 옷 역시 군선도에서의 김홍도의 필체로 그려진 신선의 옷이었다. 아마도 파티식으로 재해석된 신선이리라.
이 외에도 많은 작품이 전시되어 있지만, 인상적이었던 작품을 중심으로 리뷰해 보았다. 지금은 볼 수 없는, 아니 이 전시를 놓치신 분들이라면 영원이 볼 수 없게 된 전시지만(이 전시에선 고미술품과 현대미술 간의 호응이 중요했고, 작품 역시 일부는 파스텔로 그린 벽화로 이미 지워졌으므로), 오랫만에 본 좋은 전시에 대한 기록을 남겨 놓지 않을 수 없었다. 개인적으로 우리 미술에 대해 성의있게 공부해 주고, 과거와 현재, 동양과 서양에 대해 통찰력있는 시각을 보여준 니콜라스 파티에게 감사를 보내며, 이 전시를 기획한 기획자에게도 또한 ‘좋아요’를 보내고 싶다.
*이 글의 작가와 전시에 대한 전반적 소개는 호암미술관의 전시 소개글을 참고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