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읽기_현재 내 자리에서 내 할 일을 한다.

중용 14장 其位而行(기위이행)

by 주루주루

오늘은 2025년 1월 16일, 시간은 아침 6시 44분이다.

나는 밤에 일찍 자고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데, 아침에 정신이 유독 맑아 무슨 일을 하든 집중이 잘 되기 때문이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는 아마도 흔히 말하는 ‘아침형 인간’인가 보다. 내가 아침형 인간인 증거는 무리해서 노력하지 않아도 새벽에 눈이 떠진다는 것(나는 알람이 없어도 새벽 5시를 전후해 어김없이 눈을 뜬다), 그리고 저녁 7시만 되어도 병든 닭마냥 몸은 비실비실하고 정신은 혼미한 상태가 된다는 것이다. 내가 이런 인간이란 걸 안 건 20대에 접어들면서였지만, 늘 내 몸의 리듬대로 살 순 없었다. 내 경우는 오히려 9 to 6의 직장을 다닐 때 내 리듬을 지킬 수 없었는데, 잦은 야근과 회식, 그로 인한 피로로 내 몸이 원하는 대로 생활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 결과는 결국 몸과 마음의 병이었다. 직장을 그만둔 지금, 금전적으론 풍족하지 못하지만, 충분히 만족스러운 삶을 살고 있다. 우선 내 몸의 리듬대로 생활하고, 직장에 다닐 땐 늘 귀찮은 일로 여겨졌던 집안일을 하면서 오히려 나와 내 주변을 가꾸는 재미를 느끼며, 그 외의 시간은 누가 시켜서가 아닌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을 해나가며 만족을 느낀다(브런치에 글을 쓰는 일도 직장생활을 할 땐 엄두도 못 내던 일이지만 지금 나에게 만족감을 주는 일 중 한 가지이다).


요즘 내가 만족감을 느끼며 하는 일 중 친구들과 함께 중용(中庸)을 공부하는 일이 있는데, 최근 갑자기 눈에 들어온 한 구절이 있었다.


君子素其位而行 不願乎其外(군자소기위이행 불원호기외)

군자는 자신의 자리를 바탕으로 행할 일을 하고, 그 밖의 것을 바라지 않는다.


생각해 보면, 학교를 다니고 직장을 다닐 적에 나는 늘 내가 있는 자리 너머의 일을 생각했던 것 같다. 학교를 다닐 땐 좀 더 좋은 학교, 좋은 환경에서 공부하게 되길 바랐고, 직장에 다닐 땐 좀 더 좋은 직장 혹은 좋은 부서를 바라며 일했다. 하던 일을 열심히 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그 일을 하는 목적이 오로지 내 직분을 다하는 데 있었느냐고 묻는다면 그건 아니다. 늘 잘하고, 칭찬받고, 이걸 밑거름으로 무언갈 받고 싶은 사사로운 욕심이 저변에 깔려 있었다. 누군가는 “그것은 인간으로서 자연스러운 일이 아닌가? 그게 잘못된 건가?”라고 물을 것이다. 나도 그땐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나이를 먹고, 경험이 쌓이고, 아픔을 겪고, 또 고전을 공부하면서 생각이 바뀌게 되었다. 인간이 가지게 되는 자연스런 욕심이긴 하지만, 오히려 스스로 통제하고 다스려야 하는 부분인 듯하다. 왜냐하면 이 사적인 욕망을 통제하지 못하면 오만한 마음이 싹트게 되고, 그러면 결과를 작위 하고 싶어 지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결과를 작위 하기 위해 험한 행동도 불사하지 않게 되고, 결국 무슨 일라도 할 수 있게 되는 厚顏無恥(후안무치)한 사람이 될 수 있다.


君子居易以俟命(군자거이이사명)

군자는 머무는 지위를 편히 여기면서 천명(운명)을 기다리고

小人行險以徼幸(소인행험이요행)

소인은 험한 일을 하면서 요행을 바란다.


결국 이 두 구절에서 말하는 바는 나의 위치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할 뿐, 결과는 내가 어찌할 수 없는 것이니 받아들이라는 것이다. 이걸 서양철학으로 가져와 니체의 말로 바꿔보면 ‘아모르파티’이다. “운명을 사랑하라.” 결국 사람이 할 수 있는 건 자신을 컨트롤하는 일에 불과하다. 결과는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다. 받아들여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작게 말하면 취업이나 승진, 크게 말하면 성공을 위해 나의 능력 밖의 일을 생각하며 자신을 괴롭힌다. 그것이 생각에 그치면 비교나 오만이 되고, 행동으로 옮기면 아첨과 요행이 된다.

먼저 생각에 그친 경우의 말로를 생각해 보자. 그 생각의 싹이 튼 것만으로도 정신적으로 엄청난 에너지를 소비하게 된다. ‘나는 이만큼이나 열심히 했는데 왜 아무도 알아주지 않지?’, ‘나랑 쟤랑 뭐가 다른데 내가 더 낮게 평가된 거지?’ 이런 생각이 마음을 늘 억울하게 만든다. 결국 하는 일에 의욕을 잃게 되고, 몸도 지쳐 번아웃이 온다. 나의 이야기다.


그럼 사적 욕망을 통제하지 못하고 행동으로 옮긴 경우의 말로는 어떤 것인가? 바로 어제 일어났던 역사적 사건, 현직 대통령의 체포라는 초유의 일이 그 큰 사례라고 생각한다. 영부인의 신분 위조에서부터 시작해 무리한 대통령실 이전, 공천 개입, 바이든 날리면 사건, 이태원 참사의 부실한 대처, 의료 대란 야기, 반대 인사들에 대한 입틀막, 채상병의 죽음 은폐, 마지막으로 불법적 계엄령 선포까지 자신의 사적 욕망을 실행하기 위해 험한 일을 벌여 영구집권이라는 요행을 바랐던 정부는 결국 무너졌다(아직 마무리되진 않았지만, 그것은 시간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在上位不陵下 在下位不援上(재상위불하 재하위불원상)

윗자리에 있으면서 아랫사람을 멸시하지 말고, 아랫자리에 있으면서 윗사람을 끌어내리려 하지 않으며,

正巳而不求於人則不怨 天下不尤人(천하불우인 정기이불구어인즉불원)

자신을 바르게 할 뿐, 남에게 바라지 않는다면 원망이 없을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한다는 것, 그것은 나에게 주어진 임무만을 수동적으로 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적극적으로 나의 직분을 최선을 다해서 하고, 그 자리에 맞는 나의 태도를 결정한다는 의미이다. 여기서 태도란 나와 내가 마주하게 되는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를 말한다. 그 태도를 결정하는 것은 ‘존중’이 핵심이다. 나를 대하는 아랫사람을 멸시하지 않고, 윗사람을 끌어내리려 하지 않는 것은 상대방을 존중하는 일이고, 자신을 바르게 하는 것은 나를 존중하는 일이다. 여기서 더 방점이 있는 부분은 바로 나에 대한 존중인데, 나에 대한 존중, 즉 나를 바르게 하면 상대방을 멸시하거나 끌어내려는 행동 자체가 나올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대통령이 자기 자신을 존중했더라면 자신의 철학을 가지고 국정을 수행하는데 최선을 다했을 것이다. 또 남을 존중하는 마음을 가졌다면, 다른 사람들이 하는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자신에게 부족한 점을 채우고 보완하여 좀 더 원활하게 국정을 운영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되었다면 자기 분수를 넘어서는 계엄 같은 일을 하지 않았을 것이고, 다수의 국민이 그를 원망하고 미워하여 자리에서 끌어내리고자 하는 일을 당하게 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뉴스를 보니 아직도 대통령은 자신의 신세가 그렇게 된 원인을 자신이 아닌 밖에서 찾고 있는 듯하다. 내 말이 들리진 않겠지만 정신을 차리시라 충언을 드리고 싶다. 서울 구치소에 마련된 방이 독방이라니 거기 앉아 명상이라도 하며 자신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한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이 역사적인 사건을 빨리 잊지 않길 바란다. 나의 자아가 나의 내면이 아닌 밖을 향해 있는 경우 극단으로 치닫게 되면 어떤 꼴이 되는 것인지 기억하고 내면을 가꾸는 일에 좀 더 신경을 쓰는 삶을 살았으면 한다.


결국 편안하고 후회 없는 삶을 사는 길은 내게 현재 주어진 삶을 충실하게 살고, 나 자신과 주변에 대해 존중하는 마음을 잊지 않는 것이다. 글을 쓰는 나조차도 완벽하게 그것을 실천하고 있다 말할 순 없지만 그런 방향으로 살고자 노력하는 것, 그 자체가 아름다운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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