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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지 Jul 21. 2022

2. 그 분과는 그렇게 이별했다.

안부를 묻고 안녕을 기원하는 그즈음 그분은 세상과 이별했다.

만남이 있다면 헤어짐이 있다.

시간적 차이만 있을 뿐.


우리는 그 사실을 알지만, 이별을 직면하는 일은 항상 쉽지 않다.




4년 전 겨울,

만나고, 이별하게 된 한 환자분이 떠올랐다.


퇴원을 하고도 주기적으로 병원으로 전화를 하던 환자 분이 계셨다.

알코올 중독 문제와 상환해야 하는 고액의 부채로 가산을 탕진하면서 가족이 해체되고

결국 기초생활수급자로 보장받으며 생계를 유지하고 있던 환자 분이셨다.


한 때 이분은 외과 의사로 일을 했는데, '수술할 당시에 나 정말 잘 나갔었지' 하고 잠시 미소를 뗬던 것 이외에는 호황을 누리던 시절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자신의 잘못된 선택으로 인해 가족들과 헤어지고

떨리는 손으로 다시는 수술대에 서지 못하게 되었던 것에 대한 후회를 자주 언급했다.


그리고 후회 하지만 시간을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을 너무 잘 알고 받아들이는 무기력한 모습을 자주 보이셨다.


간경변이 너무 심해 간이식을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였고

신장도 이미 기능이 망가질 대로 다 망가져서 혈액투석밖에는 방법이 없는 상태였다.

얼굴색은 원래의 피부색을 알 수 없을 정도로 까맣게 변해 의료인이 아니라도 몸에 독소가 많이 쌓여 위독한 상태임을 짐작하게 했다.


사회복지사로서 내가 해 줄 수 있는 일이 많이 없어서

상담을 하며 들어주는 일이 대부분이었다.


못해도 2년 동안 두 달에 한 번 정도는 꼬박꼬박 전화를 하시던 환자분이

11월 초쯤 병원으로 한 번 찾아오셨다.


잘 아는 의사를 통해 간이식을 해 볼까 생각 중이라고 하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주치의는 먹지 말라 했지만 다슬기를 먹고 독소도 많이 빠지고 있는 것 같다며 

자신이 의사였을 때는 말도 안 될 일인 민간요법도 가끔은 도움이 되는 것 같다고

그런 일상적인 얘기를 하며 매번 소소한 도움을 주어서 고맙다는 말을 남기고 가셨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11월 말에 또 한 통의 전화를 주셨다.


근데 이전과는 달리 또 술을 드셨는지

영 알 수 없는 말들을 횡설수설하고 계셨다.


어떻게든 알아듣고 도움을 드리고 싶었지만

도무지 전화상으로 알 수 없는 내용에

어찌어찌 통화를 힘들게 끊었던 기억이 그 당시 가장 최근의 기억이었다.


그리고 4년 전 새해를 얼마 앞두지 않던 12월 말. 사회복지실로 다급한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환자분에 대한 상담을 진행하며 인연이 닿았던 지역 복지관의 사례관리 담당 사회복지사 선생님이셨다.


환자가 연락이 되질 않는다고

간이식 얘기가 있어서 수술을 하러 갔나 했지만 이곳저곳 병원을 확인해봐도 

경찰에 신고하고 집을 방문해봐도 환자의 흔적이 없다고, 막 나간 것 같은데 휴대폰도 집에 둔 채 없다고..


그리고 몇 분 뒤 다시 연락이 와 환자가 사망했다고 알려왔다.


너무 믿기지가 않아서

사무실에서 앉은 채로 눈물이 뚝뚝 흘렀다.


마지막에 그렇게 횡설수설하던 그 모습이 어쩌면 술을 드셔서 그런 게 아닐 수도 있었겠구나

왜 평소처럼 조금 더 살갑게 대해드리지 못했을까

못 해 드렸던 것만 떠올랐다.


많은 환자들을 만나고 또 죽음으로써 이별하고 이런 것에 정말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한 사람을 떠나보낸다는 것이 이렇게 무겁고 강렬한 것이라는 생각이 다시 쿵하고 와닿았다.


어느 누구도 챙겨주지 못했을 그분의 마지막에 가슴이 아렸다.

누구나 부러워할만한 과거를 가지고 있었지만

한 해가 저물어가는 그때 왜 그렇게 쓸쓸히 그의 인생도 져버려야 했을까.


많은 사람들이 연말과 연초가 겹쳐지는 시기에

서로의 안부를 묻고 안녕을 기원한다. 

우리는 그 밝은 분위기에 가끔 잊곤 하지만 

또 세상의 한 귀퉁이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소리 소문 없이 세상과 작별하고 있음을...

가슴 아프게 느꼈던 날이었다.


죽음 앞에 할 수 있는 건 많이 없지만

그 죽음이 외롭지 않게, 잠시 세상에 머무르지만 누군가의 관심과 사랑을 잠시라도 느꼈음을 알 수 있도록

우리의 마음과 노력이 그분께 닿았었을까. 


한 분이라도 제대로 일어설 수 있게 돕기 위해 나를 포함한, 지역의 사회복지 공무원 분들과 복지관의 사례관리 담당자분 모두 온 마음을 다해 노력했는데, 예고 없이 맞이한 이별은 

일순간 우리의 모든 노력들이 최선이었는가를 멍하니 생각해보게 했다.


시간이 많이 지나면 이 일도 또 많은 그렇고 그런 일들에 잊힐 수 있겠지라고 생각하며

당분간은 나라도, 이 환자분이 잠시 세상에 머물렀음을 기억해드리고 싶었다.


문득 떠오른 오늘의 이 기억을 찬찬히 되짚어보니

역시나 이별로 인한 아픔은 잠시 묻어둘 수 있을 뿐, 완전히 잊을 순 없나 보다. 


몇 분 동안의 기록으로도 수년 전의 기억이 너무 생생히 소환되는 걸 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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