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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영환 Dec 24. 2024

이슬람 여인의 슬픈 사랑 이야기 피에르 롯띠 언덕

이슬람 여인의 이루어질 수 없는 슬픈 사랑 이야기가 남아있는 피에르 롯띠 언덕 Pierre Loti Hill



톱카프 궁전(Topkapı Sarayı) 성벽을 따라 언덕길을 내려온다. 바로 앞이 보스포루스 해협의 입구이자 마라마라 해로 이어지는 바다이다. 서서히 붉게 물드는 바다와 하늘 그리고 붉은 성벽, 매우 인상적인 마르마라 해변의 풍경이다. 아야 소피아 모스크, 메흐메드 2세 모스크(일명 블루 모스크), 톱카프 궁전, 귈하네 공원 Gülhane Parki 등 동로마 제국에서 오스만 제국으로 이어지는, 이스탄불의 역사와 함께한 건축물이 집중되어 있는 이스탄불 구시가지 중심지엔 마르마라해변을 따라 호텔과 레스토랑이 수없이 들어서 있다. 주변의 다른 건물들에 비하여 붉은 나무로 외부 마감을 한 호텔이 눈에 띈다. 상호가 Hotel Valide Sultan Konagi이다. 술탄의 어머니 칭호였던 발리데 술탄을 상호로 사용한 호텔이다. 길모퉁이에 아주 작은 모스크가 이채롭다. 1482년에 지어진 모스크, 이샤카 파샤 모스크(İshakpaşa Cami)이다. 이샤카 파샤는 메흐메드 2세가 콘스탄티노플 정복에 나섰을 때 아나톨리아 총독이었던 오스만의 고관으로, 후에 그랜드 비지르 지위에 오르는 인물이다. 지금 걷고 있는 거리 명칭도 이샤카 파샤 거리(İshak paşa Cd.)다. 표지판에 필자가 내려가는 방향이 해변에 자리 잡은 공원, Cankurtaran Parkı이라 알려준다. 톱카프 궁전의 붉은 성벽은 해안까지 이어지고, 연이어 고대 비잔틴 성벽이 해안을 따라 이스탄불을 포근히 감싸 안고 이어진다. 바다 건너 보이는 곳은, 오전에 지나왔던 고층빌딩과 쇼핑몰이 밀집되어 있는 이스탄불의 아시아 쪽 비즈니스지구인 아타세히르 지역이다. 해안가에 하이다르 파샤 항구(Haydar paşa Limanı) 뒤로 이스탄불 아시아 지구의 랜드마크인 참르자의 탑(Çamlıca Kulesi - Camlica Tower)이 한눈에 들어온다. 정말 높은 탑이다. 타워의 높이는 369미터이다. 참르자 언덕 꼭대기에 지어져 해발 높이는 587미터에 이르는 이스탄불에서 가장 높은 타워이다.


이샤카 파샤 모스크(İshakpaşa Cami)
ÇamlıcaTower / https://creativecommons.org/licenses/by-sa/4.0
Port_of_Haydarpaşa                     


Creative Commons — Attribution 2.0 Generic — CC BY 2.0


해안가 산책로를 따라 붉게 물들어가는 바다를 즐기며 걷고 있는 사람들, 잔잔한 물결 위에 떠 있는 유람선, 아직 훤한 이 시간에 이스탄불 하늘에 떠있는 둥근달, 둥근 돔과 하늘을 찌를 듯 서 있는 모스크의 첨탑, 도로로 밀려 나온 차량들, 붉은 하늘 위로 날아오른 갈매기, 그리고 구 시가지 골목에 하나 둘 불이 켜지기 시작하며 이스탄불은 또 다른 모습으로 여행자를 맞는다.


과거 콘스탄티노플을 방비하였던 성벽을 그대로 두고 구 도심이 이어진다. 413년부터 축성되기 시작하였으니 약 1600년간 이 도시를 지켜보고 있는 고대 성벽이다. 과거 1453년 오스만 제국이 콘스탄티노플을 정복할 때, 우르반의 18미터 대포로 연일 두드리며, 한 달 반 이상 공성전을 벌였음에도 무너지지 않고 버틴 성벽이다. 당시 오스만 군은 15만 명이었고 성내에는 제노바 용병 2천과 동로마 군 5천 명이 전부였다. 이런 역사적인 성벽이 그다지 훼손되지 않고 도심과 어우러진 이스탄불의 밤거리를 보는 것만으로도 흔히 볼 수 없는 이색적인 경험을 하는 셈이다.



금각만 왼쪽 해안을 따라 북쪽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매혹적인 이스탄불의 야경이 이어진다. 금각만 건너 둥근언덕에 자리 잡고 있는 이스탄불 신시가지의 야경은 금각만 위로 달이 떠오르며 절정에 이른다. 유난히 밝은 모스크 첨탑의 불빛은 이곳이 이슬람의 도시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듯하다.



다시 1453년 당시로 가보자. 한 달 넘게 두드려도 뚫리지 않는 서쪽의 성벽에 비해 마르마라해와 금각만에 접해 있는 성벽은 비교적 허술한 편이었는데도 불구하고, 굵은 쇠사슬로 철통같이 봉쇄된 곳이 바로 금각만(Haliç, golden Horn)이었다. 개전 이후 오스만 해군의 전함은 단 한 척도 들어갈 수 없었다. 이쯤 되면 공성전은 공격하는 쪽이 초조해지기 마련이다. 궁리에 궁리를 거듭하던 메흐메드 2세는 갈라다 탑이 있는, 지금의 이스탄불 신시가지의 산을 깎고 나무를 베어 바닥에 깔고 기름칠을 한다. 마르마라 해에 있던 오스만 제국의 전함을 산으로 밀어 올려 금각만으로 밀어 넣는 참으로 기상천외한 발상이었다. 그야말로 배가 산으로 간 셈이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는 속담이 있다. 아주 틀린 이야기가 아닌 셈이다. 제노바의 원군을 노심초사 기다리던 동로마 제국으로서는 마른하늘에 날벼락이 어느 날 아침 금각만으로 떨어진 셈이다. 이로써 전세는 기울고 동로마 군의 사기는 땅바닥에 떨어진다. 흑해 연안의 제노바 식민지의 원조는 이미 오래 전인 오스만 제국에 의하여 보스포루스 해협이 봉쇄되었고* 기대할 것은 지중해를 통하여 금각만으로 접근이 가능한 제노바 원군이었는데, 이 마저도 하루아침에 봉쇄되어 고립된 콘스탄티노폴리스였다.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더 이상 버티기 어려움을 직감하며 아야소피아 성당으로 들어간다.


콘스탄티노플 공방전 당시 콘스탄티노플의 상황 / 사진의 초록색 화살표가 산으로 밀어올린 오스만 전함을 표시한다. /  Creative Commons — Attribution-ShareAlike 4.0 International — CC BY-SA 4.0


Remote view of Galata Tower in Istanbul, Turkey  (© A.Savin, WikiCommons) /  Free Art License 1.3 | Copyleft Attitude (artlibre.org)


유럽을_공포에_떨게_한_'오스만_제국'_탄생___'콘스탄티노플'_정복에_대한_메흐메트_2세의_야망___tvN_220816_방송_00037



Fatih Sultan Mehmed’s Land Transport of The Ottoman Navy from Galata into Golden Horn by Fausto Zonaro (1854–1929). / File:Kusatma Zonaro.jpg - Wikimedia Commons



*필자 주) 1453년 콘스탄티노폴리스 정복 전쟁 개전 이전에 오스만 제국의 바예지드 1세(Osmanlı Padişahı I. Bayezid, 1389 ~ 1402)는 1393년 보스포루스 해협 우안(右岸)인 아시아 지역에 아나돌루 히사르(Anadoluhisarı) 요새를 세워 해협을 봉쇄하는 교두보를 확보하였고, 그의 증손자인 술탄 메흐메드 2세(Sultan II. Mehmed)는 1452년 보스포루스 해협 좌안(左岸), 즉 콘스탄티노폴리스 코 앞에 루멜리 히사르라(Rumelihisarı) 요새를 구축하여 흑해 연안의 제노바 식민지에서 보스포루스 해협으로 접근하는 것을 원천 봉쇄하며 확실한 보스포루스 해협 통제권을 확보한다.


Anadolu Hisarı / https://creativecommons.org/licenses/by-sa/3.0
Rumeli Hisari / Creative Commons — Attribution-ShareAlike 2.0 Generic — CC BY-SA 2.0
Rumelihisarı / Creative Commons — Attribution-ShareAlike 3.0 Unported — CC BY-SA 3.0


당시 상황을 하나도 빠짐없이 지켜보았을 금각만에 드리운 달빛을 보며, 그렇게 북쪽으로 거슬러 올라와 욥 술탄 지구(Eyüp Sultan)에 당도한다. 욥 술탄 지구는 과거 이슬람 예언자 무함마드의 기수였던 아부 아유브 (Ebu Eyyub el-Ensari)의 이름을 따서 명명된, 이스탄불에서 가장 성스러운 곳으로 여겨지는 지역이다. 이곳에서 걸어서 언덕을 오르면 15분가량 소요되는데, 언덕 기슭에 이스탄불 유명 인사의 무덤이 있다. 금각만을 사이에 둔 이스탄불의 역사지구와 탁심광장(Taksim Meyadani)을 중심으로 뻗어 나간 신시가지의 야경을 동시에 볼 수 있는 곳이다. 케이블 카를 타기 전에 욥 텔레페릭(Eyüp Teleferik) 전망대에서 잠시 머문다. 욥 텔레페릭은 금각만 해안에서 피에르 롯띠 언덕을 오가는 420m 길이의 공중 케이블카이다. 금각만은 이곳에서 이스탄불 신시가지 쪽으로 휘어진다. 그렇기 때문에 이곳에서 만(bay, 灣) 입구 쪽을 바라보면 이스탄불 양안(兩岸)의 야경을 동시에 모두 볼 수 있다. 케이블카를 타고 피에르 롯띠 언덕(Pierre Loti Hill)으로 오르기 전, 멋진 이스탄불 야경을 볼 수 있는 전망 포인트이다.


A) Pierre Loti Hill

Eyüp Merkez, İdris Köşkü Caddesi

B) 에윱 술탄 모스크

Eyüp Merkez, 34050 Eyüpsultan/İstanbul, 튀르키예

C) Golden Horn Bridge

Azapkapı, Beyoğlu/İstanbul, 튀르키예

D) 갈라타 탑

튀르키예 34421 İstanbul, Beyoğlu, Bereketzade

E) 톱카프 궁전

Cankurtaran, 34122 Fatih/İstanbul, 튀르키예




어느 도시든지 도심을 조망할 수 있는 언덕이 있기 마련인데, 피에르 롯띠 언덕(Pierre Loti Hill)이 바로 그런 곳이다. 케이블카를 타고 피에르 롯띠 언덕으로 오른다. 이곳에서 내려다보는 이스탄불의 야경은 말로 이루 다 설명이 불가한 풍경이다. 세상에 마법이 있다면, 바로 그 마법으로 펼쳐 놓은 풍경 같다고나 할까. 누구든 그저 매력적인 풍경에 빠져들고, 폭발적인 감성에 젖을 수밖에 없는 삐에르 롯띠 언덕에서 필자 또한 이스탄불 야경에 빠져든다.


그런데, 이곳 언덕에 붙어 있는 이름은 사람의 이름이다. 그렇다고 이스탄불 역사지구 곳곳에 붙어 있는 오스만 제국의 역사적인 인물의 이름은 아니다. 딱 봐도 서양 사람의 이름인데, 왜? 무슨 이유로? 어떻게?


피에르 롯띠 (1850.1.14 – 1923.6.10)의 본명은 줄리앙 비오(Julien Viaud)이다. 그는 해군장교로 복무하며 세계 여러 나라를 여행하며 체험하고 관찰한 이국의 색다른 문화와 풍습을 일기로 남겨, 후에 섬세하고 이국적 풍정(風情)이 가득 담긴 소설을 쓰는 재주 많은 사람이다.

Loti (right) with "Chrysanthème" and Pierre le Cor in Japan, 1885.


1879년 이스탄불을 배경으로 한 소설 ‘‘아지야데(Aziyade)’와 역시 익명으로 출판된 그의 두 번째 소설 ‘르 마리아쥬 드 로티(Le Mariage de Loti, 로티의 결혼)’ 등 그의 작품은 주로 해외생활을 통하여 얻은 경험과 기록, 작가적 상상력을 바탕으로 쓴 반 자전적 픽션 소설이다. Pierre Loti라는 이름도 타이티에 머물 때 원주민들이 부른 가명이었는데, 후에 자신의 이름을 피에르 롯띠로 개명한다.


The cover of Aziyadé by Pierre Loti. / File:Aziyadé.jpg - Wikipedia

줄리앙 비오(Julien Viaud)는 1876년 이곳 욥 술탄 지구(Eyüp Sultan)의 공동묘지가 있는 언덕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며 소설 ‘아지야데(Aziyade)’를 썼다고 한다. 소설은 1879년 익명으로 출판된다. 이후 이 소설과 피에르 롯띠 언덕에 관한 이야기는 다분히 주관적이고 낭만적인 이야기로, 단순히 이슬람 여인과 비무슬림 외국인과의 이루어질 수 없는 비련의 사랑 이야기로, 피에르 롯띠 언덕에서 사랑했던 여인을 그리워하며 쓴 소설이라는 이야기가 대부분이다. 그리고 덧붙여진다. 피에르 롯띠가 소설을 썼던 언덕은 어느 날 그의 이름이 붙어 피에르 롯띠 언덕이라 부르게 되었으며, 이런 사연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며 사랑하는 연인들의 데이트 필수코스처럼 널리 알려지고, 이스탄불을 찾는 많은 여행객들에게도 반드시 가봐야 하는 명소로 알려져 있다는 조금은 전설 따라 삼천리 같은, 그리고 조금은 상술적인 서사가 가미된 사랑 이야기로 그려진다. 물론, 그럴 수도 있다. 사람들은 늘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를 좋아하는 경향이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틀리지 않은 이야기이다. 이곳에서 보는 이스탄불의 풍경은 충분히 그런 이야기가 나오고도 남음이 있을 법한 곳이기 때문이다. 인정한다. 하지만 소설, ‘아지야데’의 구성을 살펴보면 그렇게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란 것이 필자의 소견이다. 이 소설의 첫 번째 장(chapter, 章)은 1876년 5월 16일 데살로니키 항구에서 벌어진 6명의 소녀가 교수형에 처해진, ‘데살로니키(Salonique) 사건’을 소재로 시작된다. 그리고 이교도 외국인과 사랑에 빠진 소설 속 여자 주인공 아지야데는 결국 이슬람 여인으로서는 있을 수 없는 불륜을 저지른 불명예 여성으로서 정체성과 인권은 사라지고 사회적, 종교적 관습에 따라 자살을 강요당할 수밖에 없는, 당시 명예살인에 관한 이슬람 사회의 종교적 악습을 소설로 풀어낸 이야기이다.




이슬람 사회엔 처벌받지 않는 존속에 의한 명예살인(Honor Killing)이 존재한다. 물론 요즘은 과거에 비해 많은 이슬람 국가들이 명예살인을 처벌하는 법을 제정하고 정비하며 여성 인권의 사회적 관심도 예전과는 많이 달라지는 추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이슬람 사회에선 가족의 명예를 더럽혔다는 이유로, 수치심을 씻어 낸다는 이유로, 여전히 명예살인이나 자살 강요가 빈번하게 일어난다. 비무슬림의 시각으로 보면 말도 안 되는 일이고 극단적인 인권침해다. 하지만 이슬람 사회에선 여성과 미성년 여자 형제에 대한 훈육과 소유권리를 아버지나 남편, 남자 형제가 갖고 있고 어느 정도의 폭력을 인정한다. 오래된 이슬람 사회의 관습이다. 뿐만 아니라 여성의 결혼은 남성과 전혀 다르다. 이교도 여성과 결혼할 수 있는 남성과는 달리 이슬람 여성은 율법에 따라 이교도와 결혼할 수 없는 것이 전통적인 종교적 관습이다. 이슬람 여성은 이슬람 남성의 아이만 낳아야 하는 이슬람 순혈주의가 깔려 있는 악습으로 추정되는데, 이를 어기면 율법을 어기고 전통적인 가치체계를 무너뜨린 죄인으로 취급한다. 가족의 명예를 더럽혔다는 오명을 쓰고 영영 고국을 떠나 이국에서 살거나, 그렇지 않으면 가족의 명예를 더럽혔다는 죄 아닌 죄로 가족에 의하여 죽임을 당하거나, 자살을 강요당하는, 비정하고 혹독한, 명예살인으로 대가를 치러야 했다. 실례로 미국에서 유학한 후, 그곳에서 가정을 꾸리고 살던 미국 시민권자인 이슬람 여성이 어머니가 죽을병이 걸리자 몇 십 년 만에 고향을 찾게 되는데, 친오빠에게 살해당하는 사건도 있었다 한다. 양성 평등을 주장한 이슬람 여성 유튜버가 존속에 의해 살해되는 사건도 언론을 통하여 보도된 바 있다. 이슬람 사회에서 최근까지도 심심찮게 발생되고 있는 명예살인에 관한 기사는 뿌리 깊은 악습으로 인한 이슬람 여성의 인권문제가 여전히 심각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대부분 여행자에게 피에르 롯띠 언덕은 그저 낭만적인, 그저 멋진 이스탄불 풍경을 조망하는 여행 중 꼭 들러야만 하는 장소이겠지만, 이곳에서 소설을 썼던 피에르 롯띠에겐 이슬람 사회를 들여다보는 창과 같은 곳이었다. 그렇게 피에르 롯띠의 창으로 보면 이슬람 여인의 이루어질 수 없는 슬픈 사랑 이야기가 남아있는 피에르 롯띠 언덕이다.


오후 7시가 넘어서고 있다. 피에르 롯띠 언덕에서 근 1시간 가까이 머문 셈이다. 내일이면 이제 이 여행을 마무리해야 하는 시간이기에, 친구들과 커피도 한잔 하며, 모처럼 느긋하게 언덕에 머문다. 밤이 깊어 가는 피에르 롯띠 언덕은 오늘도 연인들의 이야기 소리로 가득하다. 두런두런 들려오는 이야기 소리는 이내 언덕을 내려가고 잔잔히 흐르는 금각만으로 흩어진다. 살짝 흐린 하늘에 걸린 둥근 달만이 금각만 물 위에 흩어지는 이야기를 주워 담는다. 도시를 밝히는 수없이 많은 불빛은 밤이 깊어지며 더욱 또렷해지고, 여행자의 마음속엔 어느새 또 다른 불빛이 더욱 반짝거린다. 그렇게, 금각만 위로 떠 오른 달빛을 마음에 담아 언덕을 내려온다.


@thebc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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