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만 제국의 영광과 유산-톱카프 궁전(Topkapı Sarayı)의 하렘 Osmanlı İmparatorluk Haremi과 술레이만의 연애편지
인간은 자신의 감정을 말 또는 글로 표현하는 매우 섬세하고 진화한 생명체이다. 감정을 말 또는 글로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은 인간이 동물과 구별되는 요소 중 하나이다. 어떤 사람이 좋아하는 사람을 그리워하며 마음에 담긴 감정을 시로 써 사랑하는 이에게 보냈다고 가정해 보자. 이 시는 두 사람이 주고받은 지극히 개인적인 사랑의 감정을 노래한 것일 뿐이다. 그런데, 이 지극히 개인적인 감정을 노래한 시는 훗날에 전해지고, 오랜 세월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린다. 사실 이런 일은 가정이 아니더라도 수없이 많이 있었던 일이고, 우리 주변 가까이에서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는 이야기다. 아마도 그 사랑의 노래에서 자기 자신이 보이거나 느껴지기 때문이 아닐까? 황진이와 서화담, 그리고 소세양의 이야기, 홍랑과 최경창의 이야기는 익히 한 번쯤은 들어본 이야기일 것이다. 물론 보는 이에 따라 엇갈리는 평가일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사람이 사람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담겨있지 싶은데, 잠시 홍랑이 최경창을 향한 마음을 노래한 ’묏버들 가려 꺾어’란 시 한수 읊어보고 가자.
擇折楊柳寄千里
묏버들 가려 꺾어 보내노라 임에게
人爲試向庭前種
주무시는 창 밖에 심어두고 보소서
須知一夜生新葉
밤비에 새 잎이 나거든 나인가 하고 여기소서
조금만 세심하게 곱씹어 읽어보면, 실제로 그런 마음이 아니고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은유적이고 역설적인 감정의 언어들로 가득한 시이다.
술레이만 대제의 연애편지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그저 고만고만한 감정을 끌어안고 일생을 살아가는 것이 대부분 사람들의 삶이다. 톱카프 궁전의 세 번째 안뜰 엔데룬 깊숙한 곳엔 오스만 제국의 하렘(Osmanlı İmparatorluk Haremi)이 있었다. 하렘은 술탄의 여자들이 기거하는 곳이었다. 어머니와 여성친척, 여성 하인들도 포함된다. 그리고 여러 왕조와 혼인동맹으로 맺어진 술탄의 아내들도 이곳에 영구거주 하였다. 대부분 하렘의 여인들은 유대인이나 기독교인들로 노예 신분으로 이곳에 오게 된다. 지역은 아프리카에서 러시아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고 다양한 사람들이 이곳으로 온다. 무슬림은 노예로 삼을 수 없다는 종교적인 믿음과 이유로 이슬람 국가의 여인들은 이곳에 오지 않았다. 따라서, 흔히 볼 수 있는 과거 왕조국가의 외척세력 발호는 없었지 싶다.
Vasari wrote that Titian once painted "portrait of Roxelana".This painting was attributed as probable copy of that portrait executed in Titian's workshop / File:Tizian 123.jpg - Wikimedia Commons
그런데, 술탄의 마음에 들고 왕자를 낳아 신분상승을 꾀하였던, 많게는 1000여 명의 여인들이 살았던 하렘에도 사랑의 감정은 있었을까? 독자들께서도 한 번쯤 생각해 봤을 것 같긴 한 주제이다. 하렘은 술탄과 환관 그리고 왕자 정도만 드나들 수 있는 곳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도 알 수 없는 것이기도 한 이야기다. 하지만 사람이 사는 곳은 그곳이 어디든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 필자의 소견이다. 따라서 필자는 이곳에 살았던 하렘의 여인들과 술탄에게도 당연히 그러한 감정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대표적인 예가 술레이만 대제(I. Süleyman)와 휘렘 술탄(Hürlem Sultan)의 이야기 아닐까? 휘렘 술탄의 이야기는 필자의 이 여행기 서두에, 아야 소피아 모스크 편에서 잠시 언급한 바 있는데, 술레이만 대제는 오스만 술탄들이 전통적으로 혼인을 하지 않는 관습을 깨고 휘렘 술탄과 혼인을 한다. 오스만 제국에서 여자에게 술탄의 칭호가 부여되는 것은 왕위를 있는 아들을 낳았다는 이야기이다. 오스만 제국의 제11대 술탄 셀림 2세(II. Selim)가 그녀의 아들이다. 휘렘 술탄은 슬라브계 우크라이나 노예로 이곳에 들어온 여인으로 본명은 알렉산드라 리소프스카(Aleksandra Lisowska), 일명 '록셀라나(Roxelana)'로 불린 하렘의 여인에서 오스만 제국의 당당한 황후 휘렘 술탄이 된다.
하렘의 노예 여인이 신분상승을 할 수 있는 방법은 오로지 술탄의 눈에 들어야만 가능했다. 술탄의 여인이 된 후엔 혼자 쓸 수 있는 방과 수행 하녀와 내시 및 일정한 급여를 받았다. 아이를 낳게 되면 더 좋고 큰 방으로 이주하였다. 이러한 신분 상승을 위해 하렘의 여인들은 이슬람교로 개종하고 쓰기, 읽기와 노래와 춤, 악기연주 등을 배우며 술탄의 여인이 되기 위하여 치열한 삶을 살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렇게 하여 아들을 낳으면 하세키 술탄 Haseki Sultan, 딸을 낳으면 키아세 카든 Kasesi Kadin이라는 칭호를 얻는다. 오스만 제국의 왕위는 장자세습이 아니었다. 따라서 아들을 낳은 술타나 sultanın 또는 하세기 술탄 간의 암투는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일임에 틀림이 없을 것 같다. 그 외 술탄의 여인들 칭호 중 하툰 hatun 및 카든 kadın으로 알려진 배우자들의 계급보다 월등히 높은 칭호였다. 특히 하세키 술탄은 발리데 술탄이 공석일 경우 하렘 내에서 발리데 술탄의 역할과 권한까지 행사하는 실질적인 하렘의 수장이었다. 이렇게 경쟁하여 아들이 왕위에 오르면, 하세키 술탄이었던 왕의 어머니는 발리데 술탄(Valide sultan)이 되어 하렘의 최고 어른이 된다. 발리데 술탄은 하렘 여인들의 생사여탈권은 물론, 술탄의 아내들과 자녀관계를 규제할 수 있는 막강한 권한을 갖는다. 우리나라로 치면 조선왕조의 대비 또는 대왕대비 정도로 이해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지 싶다.
하렘에 들어온 여인들이 하렘을 나가는 일은 제한적이었는데, 술탄의 여인이 되지 못한 여인들 중 일부는 궁전 내에서 이루어지는 소정의 교육을 마치고 궁전의 남성 하인들과 혼인을 하여 지방의 총독의 관저나 행정기관에 소속되는 방식으로 하렘을 나갈 수 있었다. 그리고 아들을 낳은 아내들은 아들이 지방 총독으로 임명되어 임지로 내려가게 되면 어머니는 아들을 따라 하렘에서 나갈 수 있었다.
술레이만 대제와 하세키 술탄 휘렘과의 사랑 이야기는 상당히 세부적이고 조직적인 위계질서가 확립된, 그리고 여인들의 암투가 극심한 하렘에서 술레이만 대제와 법적으로 결혼한 오스만 제국 최초의 사례이다. 술레이만 대제는, 전편 톱카프 궁전[3] 이야기에서 잠시 언급했지만 굉장한 독서광이다. 무힙비(Muhibbi)라는 필명을 사용한 술레이만 대제는 몇 편의 시를 썼는데, 휘렘에게 보내는 연시라 알려져 있는 술레이만과 휘렘의 사랑 이야기이다.
Celis-i halvetim, varım, habibim mah-ı tabanım
Enisim, mahremim, varım, güzeller şahı sultanım
나의 동반자, 나의 사랑, 빛나는 나의 달빛이여,
나의 목숨과 같은 벗, 나의 가장 가까운 이, 아름다운 나의 술탄이여.
Hayatım hasılım,ömrüm, şarab-ı kevserim, adnim
Baharım, behçetim, rüzum, nigârım verd-i handanım
나의 생명, 내가 살아가는 이유인 나의 천국의 강으로 흐르는 나의 포도주여,
나의 봄날, 나의 즐거움, 나의 낮의 의미, 내 가슴속 깊이 새겨진 그림 같은 나의 사랑, 나의 미소 짓는 장미여,
Neşatım, işretim, bezmim, çerağım, neyyirim, şem’im
Turuncu û nar û narencim, benim şem’-i şebistanım
나의 행복의 근원, 내 안의 달콤함, 유쾌한 나의 잔치, 밝게 빛나는 나의 빛, 나의 불꽃.
나의 오렌지, 나의 석류, 나의 귤, 나의 밤의 빛이여,
Nebatım, sükkerim, gencim, cihan içinde bi-rencim
Azizim, Yusuf’um varım, gönül Mısr’ındaki hanım
나의 식물들, 나의 사탕, 나의 보물, 이 세상에서 내게 고통을 주지 않는 단 한 사람.
나의 성자 유수프, 나의 존재의 이유, 내 가슴속 미스르의 여인이여,
Stanbul'um, Karaman’ım, diyâr-ı milket-i Rum’um
Bedahşan’ım ve Kıpçağım ve Bağdad’ım, Horasanım
나의 이스탄불, 나의 카라만, 나의 루멜리아의 마을과 대지들.
나의 바다흐샨이자 나의 큽착이자 나의 바그다드이자 호라산,
Saçı marım, kaşı yayım, gözü pür fitne, bimarım
Ölürsem boynuna kanım, meded he na-müsülmanım
머리카락은 아름답고, 눈썹은 활과 같고, 눈에는 장난기가 가득한, 나를 아프게 하는 연인이여,
설사 내가 죽더라도 그 이유는 그대 때문이리니, 나를 구해주시오 오, 비무슬림인 아름다운 나의 사랑.
Kapında çünki meddahım, seni medh ederim daim
Yürek pür gam, gözüm pür nem, Muhibbi’yim hoş halim!
그대의 문에서 계속 그대를 찬양하리, 그리고 노래하리.
사랑 때문에 아픈 가슴을 지닌, 눈물이 가득 찬, 나는 무힙비요, 행복하도다.
* 필자 주) 시어로 쓰인 튀르키예어를 번역한 것으로 다소 무리가 있는 번역이지 싶다. 어느 정도 느낌은 전달되었을 것이라 생각되어 제한적이고 부분적으로 수정했다. [출처: 나무위키 ‘휘렘술탄’, https://namu.wiki/w/휘렘%20술탄]
어떤가? 술탄이 쓴 연시다. 유치한가?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랑은 유치함에서 시작되지 않는가?
술레이만 대제가 휘렘 술탄을 생각하며 쓴 연시이다. 엄격한 각운과 음보를 지키는 것이 특징인 오스만 시의 영역 중 하나인 가젤(Gazel)이라 불리는 장르의 시이다. 필자는 언젠가 쉴레이만 대제와 휘렘 술탄의 이야기를 소재로 한, 할리트 에르겐(Halit Ergenç)과 메리옘 우제를리(Meryem Uzerli, Merim Uzerli) 주연의 드라마 ‘위대한 세기’를 정주행 한적 있는데, 이 시는 유트브 영상으로도 볼 수 있다.
이 드라마에서 휘렘 술탄은 세상을 떠나기 전 예전에 술레이만 대제가 썼던 이 시를 다시 한번 들려달라고 하며 눈을 감는다. 사실상 술이만의 휘렘에 대한 사랑을 노래한 연애편지인 셈인데, 하렘에 노예로 끌려와 하세키 술탄이 되기까지 과정이 적나라하게 표현된 한 여성의 일생과 사랑과 열정이 담겨있는 이야기이다.
아무튼 하렘을 둘러보며 휘렘 술탄을 떠올린 것은 드라마 ‘위대한 세기’를 통하여 보았던 오스만 제국의 하렘 기억 때문이지 싶다.
하렘 Osmanlı İmparatorluk Haremi
하렘은 지금도 복원 중이다. 약도에 붉은색으로 칠해진 구역만 개방 중이다. 개방된 구역은 크게,
1) 하렘의 정문(Harem Cümle Kapısı, Harem Potal), 흑인 환관의 안뜰(Harem Ağaları Taşlığı, Courtyard of the Black Eunuchs)
2) 술탄의 처첩들이 머무는 주거지(Kadinefendiler ve Cariyeler Tasligi, The paved Courtard od Sultan’s Wives and Concubines),
3) 황제의 방(Hünkâr Sofası, Imperial Hall)과 무라드 3세의 방(Ⅲ. Murad Has Odasi, Privy Chamber of Sultan Murad Ⅲ.),
4) 왕자의 트윈 키오스크(Çifte Kasırlar / Veliahd Dairesi)와 술탄의 자식을 낳은 하세키 술탄과 키아세 카든, 술탄의 여성 가족들이 머무는 Favorilerin Avlusu,
5) 술탄의 어머니인 발리데 술탄의 방(Valide Sultan Tasligi, Paved Courtard of Sultan’s Mother),
6) 하렘의 주방(Kushane Mutfagi, The Kushane Kitchen) 구역으로 크게 구분된다.
아갈라르 모스크 Ağalar Mosque 왼쪽으로 얇은 돌을 세로로 세워 점토와 섞어 쌓는 축성방식의 벽과 궁형 아치로 지어진 골목을 따라 걷는다. 하렘으로 이어지는 아갈라르 모스크와 인접한 골목길 끝에 이즈니크 타일로 장식된 출입구가 보인다. 하렘의 정문(Harem Potal, front-entrance door)인 쥬밀레 카파시 (Cümle Kapisi)이다. 바닥에 검은 조약돌을 촘촘히 깔아 놓았다. 얼마나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이 오갔는지 돌이 반질반질하다. 무슬림들이 신성시 여기는 메카의 '검은 돌'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우연일까?
이곳을 통과하면 필자의 전편(톱카프 궁전[3]) 여행기에서 잠시 언급한, 하렘을 지키고 하렘의 여인들을 관리하며 이곳에서 일하는 내시들의 수장인 흑인 수석 내시(Baş Siyah Hadım)가 앉아 있다. 물론 모형이다. 붉은 망토와 허리춤에 칼을 지니고 있는 모습이다. 이곳은 하렘을 지키는 초소이며 흑인 수석 내시의 사무실 정도 되는 구역인 셈이다. 돌과 점토로 쌓은 벽체에 궁형 아치형태의 창문이었던 곳을 막은 흔적과 대리석 문틀 위에 궁형 아치형태로 쌓은 벽돌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다.
좁다랗고 긴 안뜰을 중심으로 양쪽에 2층으로 주택을 지었다. 이곳은 환관들의 숙소로 흑인 환관의 안뜰(Harem Ağaları Taşlığı, Courtyard of the Black Eunuchs)이다. 이 뜰 끝의 둥그런 원형 아치 문으로 들어가면 술탄의 처첩들이 머무는 주거지(Kadinefendiler ve Cariyeler Tasligi, The paved Courtard od Sultan’s Wives and Concubines)로 이어지는 실질적인 하렘의 입구인 셈이다. 튀르키예어 Kadin은 부인, efendiler는 Kadin 뒤에 붙이는 존칭이고, Cariye는 여자 노예나 시녀 또는 둘째 이하의 첩을 뜻하는 말이다. 그런데 방마다 창문은 모두 쇠창살이 설치되어 있다. 저 방에 살았던 여인들은 때로 갇혀 있다는 느낌을 가졌을 것 같다. 알현실에서 봤던 금박 입힌 창살과 같은 모양의 금도금이 되어 있지 않은 창살은 1층이나 2층 모든 창문에 설치되어 있다.
금박을 입힌 문, 돔형 천장과 벽, 벽난로에도 이즈니크 타일을 붙여 딱 봐도 지위가 높은 여성의 방임을 알 수 있는데, 이스탄불의 풍경을 그린 그림으로 장식되어 있는 방이다. 술탄의 어머니인 발리데 술탄의 방이다. 그림은 19세기 이스탄불의 전원 풍경을 그린 그림이다. 거실 창 쪽으로 긴 실크 소파와 가운데 커다란 화로는 어떤 용도일까? 화로가 맞긴 한 건가?
하렘에서 가장 화려한 방은 술탄과 술탄 가족들이 연회실로 사용한 황제의 방(Hünkâr Sofası, Imperial Hall)이다. 튀르키예어 Hünkâr는 '황제', Sofa는 '개방된 넓은 방'을 뜻하는 말이다. 공식 접견실로도 사용되었던 이방은 하렘에서 술탄의 개인적인 방이었으며 가족들과 이슬람 축일을 즐기는 공간이다. 오스만 건축의 고전적인 건축 양식의 돔형 건축물이다. 1666년 하렘의 화재로 술탄 오스만 3세(III. Sultan Osman) 때 로코코 양식으로 개조되었다. 그러나 돔 천장과 펜덴티브(pendentives, 돔건축에서 돔과 지주사이의 아치형 부분)에 그려진 문양은 16세기 임페리얼 홀이 지어졌을 때 원형이 그대로 남아있다. 벽을 둘러싼 타일 벨트는 푸른 바탕에 흰색 아랍어 서예로 채워졌는데, 이 타일은 18세기 네덜란드 도자기 양식인 델프트 웨어(18th-century blue-and-white Delftware) 도자기 타일이다. 벽면은 베네치아 유리 거울로 장식되었다. 홀의 중앙에는 독일의 황제 빌헬름 2세(Wilhelm II.)가 선물한 금박을 입힌 왕좌가 있는데, 보는 것만으로도 압도된다. 그리고 양옆으로 놓인 중국도자기... 실크로드를 통하여 이곳으로 왔겠지... 왕좌의 우측 갤러리는 술탄의 어머니인 발리데 술탄과 정궁인 하세키 술탄 등의 자리였다. 내부의 모서리와 기둥은 모두 금박을 입혔으며, 벽면을 장식하고 있는 현란한 이슬람식 문양은 그저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눈이 어지러울 지경이다. 이곳에서 살았던 술탄과 술탄의 가족들은 과연 어땠을까?
이 방에는 술탄이 사용하는 비밀 통로가 있다. 거울 뒤에 있는 비밀 통로는 발리데 술탄의 방과 술탄의 목욕탕으로 이동할 수 있는 문이고 반대쪽 문은 아흐메드 3세(III. Ahmed) 때 재건축된 작은 식당과 큰 침실로 이어지고, 다른 하나의 문은 분수가 있는 방(Çeşmeli Sofa)인 무라드 3세의 방으로 이어지는 비밀 통로이다.
지금도 물이 떨어지는 무라드 3세의 방((Ⅲ. Murad Has Odasi, Privy Chamber of Sultan Murad Ⅲ.)이다. 분수를 바라보며 잠시 물 떨어지는 소리를 들어본다. 과거 스페인 여행 중 알함브라 궁전에서 보았지만, 이슬람 사람들의 물 다루는 기술은 가히 상상을 초월하는 기술이다. 이 분수도 크기에 비하여 소리가 상당히 크게 느껴지는데, 술탄이 이방에 머물며 어떤 이야기를 해도 엿듣기 쉽지 않을 정도의 소리이지 싶다. 무라드 3세의 방은 오스만 건축가 Sinan이 16세기에 인테리어를 시작한 방으로 지금까지 원형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톱카프 궁전에서 몇 안 되는 방이다. 황제의 방보다 작은 돔 천장은 일반적인 돔 천장과는 조금 다른, 벽체와 이어지는 특징적인 구조로 건축되었다. 돔 천장 아래와 벽난로 위 양 옆으로 아치형 스테인드글라스 창을 들여 자연채광을 채택하였고 흰색, 푸른색, 산호색이 조화를 이룬 이즈니크 타일로 가득한 벽면은 자연채광을 받아 보는 시간에 따라 다른 빛깔을 띨 것 같다.
하렘에서 이스탄불의 하늘을 볼 수 있고 가장 외부 전망이 좋은 마당이 있는 곳은 17 세기에 지어진 두 개의 개인 방으로 구성된 왕자의 트윈 키오스크(Çifte Kasırlar / Veliahd Dairesi)와 술탄의 아들 딸을 낳은 하세키 술탄 또는 술타나와 키아세 카든, 그리고 아끼는 후궁들, 누나나 여동생들이 거주하는, 하렘의 최상위 계급의 여성들이 거주하는 공간(Gözdeler, Mabeyn Taşlığı ve Dairesi)이다. 이곳은 술탄이 가장 아끼고 좋아하는(Favori) 사람들이 머무는 안뜰(Avlusu)이라는 의미로 Favorilerin Avlusu라 한다. 로코코 양식으로 지어진 상당히 고급스러운 목조 건축물이다. 사진의 마당 오른쪽 건물이다.
왕자의 트윈 키오스크는 이즈니크 타일로 장식된 벽과 벌집 모양의 창을 들인 단층 건축물이다. 사진의 마당 왼쪽 건
물이다. 이곳에서 왕자들은 오스만 제국의 왕자로서 갖추어야 할 모든 것들을 훈련받았으며, 성인이 된 후에 아나톨리아 각 지방에 총독으로 파견되어 국정운영과 제국의 행정에 대한 추가적인 훈련을 받았다고 한다. 옛 고궁에서 내려다보는 이스탄불 도심의 전경은 조금은 이색적인 특별한 경험이 된다.
이제 필자는 황금 도로(Altın Yol)를 따라 하렘 투어를 이어간다. 도로라 하지만 우리가 오늘날 생각하는 도로는 아니다. 15세기에 지어진 하렘의 공간을 이어주는 축이다. 내시들의 안뜰과 개인실(Has Oda) 사이를 잇는, 붉은색 벽돌로 지은 한 두 사람 다니지 싶은 좁은 통로이다. 이 통로를 이용하여 하렘의 황제의 방(Hünkâr Dairesi)과 발리데 술탄의 방, 하세키 술탄의 방, 왕자의 키오스크와 Favorilerin Avlusu로 이동하였다. 이 통로를 Altın, 황금 Yol, 도로라 하는 이유는 술탄이 축일에 이 통로를 다니며 금화를 던져 놓았기 때문인데, 이 금화는 술탄의 첩들이 주로 가져갔던 것이라 한다. 물론 확인된 사실은 없다. 이런 이야기들은 늘 아무도 알 수 없는, 그냥 설이다. 학계에서도 역시 논란이 많은 이야기이다.
술탄의 어머니인 발리데 술탄의 주택(Valide Sultan Tasligi, Paved Courtard of Sultan’s Mother)은 16세기에 지어진 하렘에서 가장 크고 중요한 구역이다. 지금의 발리데 술탄의 방은 1666년경 화재로 재건축되었다. 식당, 응접실, 침실, 기도를 위한 작은 방과 18세기에 추가된 작은 음악실이다. 위층에는 시녀들의 방이 있다. 시녀들만 39명 정도였다고 한다. 그런데 왜 39명일까?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 이곳엔 황제와 발리데 술탄을 위한 목욕탕(Hünkâr ve Vâlide Hamamları)도 딸려 있다. 술탄과 발리데 술탄이 목욕하는 구역은 금박을 입힌 파티션으로 가려져 있는데, 목욕 중 암살당하는 것을 막기 위한 공간 구분을 위해서 설치한 것이라 한다. 내부는 오스만 건축가 Sinan에 의해 고품질질의 도자기 타일인 이즈니크 다색 타일과 대리석으로 마감하였다. 발리데 술탄의 방은 극히 일부만 여행자들에게 공개하고 있다.
하렘의 주방(Kushane Mutfagi, The Kushane Kitchen)은 톱카프 궁전주방에서 실력이 입증된 가장 숙련된 요리사(Zülüflü Baltacılar)가 술탄과 그의 가족들을 위하여 요리를 하는 주방이다. 주로 술탄을 위한 특별한 조류 요리를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어 ‘새장 kuşhane ’이라고도 부르는 하렘의 주방이다.
아래 사진을 보면 자갈이 촘촘히 박힌 길이 보인다. 요즘 우리나라의 웬만한 산책로에는 맨발로 걷는 이런 길이 조성되어 있다. 그런 용도의 길일까? 독자분들은 어떤 용도의 길이라 생각하시나요?
하렘은 지극히 제한적으로 일부만 공개되고 있다. 일반에 공개된 구역은 지금까지 둘러본 구역 정도이다. 하렘의 주방을 둘러본 필자와 하렘을 찾은 여행자들은 이곳의 출입구인 하렘의 주방 출입구인 Kuşhane Gate를 통하여 하렘을 빠져나간다.
톱카프 궁전도 제대로 보려면 하루를 꼬박 할애하여도 부족하지 싶다. 톱카프 궁전의 가장 안쪽에 있는 네 번째 뜰은 술탄과 그의 가족의 개인 성역이다. 일반에 공개된 황실의 장미 정원 Gülhane Parki은 투어 일정에 포함되지 않았다. 이미 시간은 오후 5시 30분이 넘어가고 있다. 아야 아이린 Aya İrini 돔에 걸려있는 석양은 톱카프 궁전을 붉게 물들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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