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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영환 Dec 10. 2024

톱카프 궁전 (Topkapı Sarayı)[3]

튀르키예 여행기 – 톱카프 궁전 (Topkapı Sarayı, Topkapı Place) [3]


톱카프 궁전의 두 번째 안뜰은 오스만 제국의 역사가 담긴 곳이라 할 수 있다. 오스만 제국이 14세기부터 유럽 동남부, 서아시아, 북아프리카 대부분까지 영토를 확장하고 해상권을 장악하며 지중해의 강자로 부상하는 20세기 초까지 수많은 논의들과 결정이 이곳, 톱카프 궁전에서 이루어졌을 것이다. 그러하기 때문에 오스만 제국의 역사는 고스란히 톱카프 궁전에 담겨있다 하여도 과언이 아니지 싶다. 


사람이 살고 있는 곳은 그곳이 어디든 간에 크든 작든 언제나 이야기가 있기 마련이다. 한적한 시골 마을이든 번잡한 도시이든 사람이 살고 있는 거의 모든 곳에는 늘 사건이 일어나고 이야기가 만들어지고 역사가 기록된다. 소소한 개인적인 이야기부터 한 나라의 흥망성쇠와 관련한 사건까지 하늘의 별만큼이나 많고 바람과 구름 그리고 비처럼 실로 다양하고 서로 인과관계가 있는 수많은 이야기 말이다. 이는 과거에도 그랬고 현재도 크게 다르지 않다. 개개인의 크고 작은 사건이 얽히고설키며 이야기가 만들어진다. 이 이야기는 시간이 지나며 줄거리만 남고 세세한 내용들은 축약적으로 기록된다. 개인이나 한 나라의 기록 또한 크게 다르지 않다. 예나 지금이나 사소한 사건이 발단이 되어 세계적인 역사의 흐름이 바뀔 수 있는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은 그렇게 총알 한 발이 발단이 되어 발발된 전쟁이다. 우리는 이런 과거의 사건과 기록의 조각들을 주워 모은 이야기를 ‘역사’라 한다.


사람들은 늘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거나 듣기를 좋아한다. 개인적인 일임에도 불구하고 나쁜 일은 삽시간에 주변 사람들이 알게 되는 것만 보더라도 분명한 사실이다. 매일매일 일어나는 사건, 미래지향적인 인간의 생각과 행동은 이야기를 만든다. ‘역사’라 하는 옛사람들의 이야기 또한 그렇게 만들어진다. 지금 이 시간에도 오늘을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은 각자의 이야기를 열심히 쓰고 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즐거움과 슬픔, 기쁨과 분노 등 불가(佛家)에서 말하는 다섯 가지의 욕망과 일곱 가지의 감정(五慾七情)이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이야기 말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사건이, 그렇게 또 다른 사건을 만들고, 또 다른 사람과 유기적으로 이어지며 연속성을 가지고 눈덩이 굴리듯 점점 커지게 되고, 그렇게 역사는 쓰이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는 늘 필연적일 수밖에 없다. 언제, 어떤 일이 무슨 일 때문에 일어났을까, 결말은 무엇이고 또 이로 인하여 일어난 또 다른 사건은 무엇일까,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이것은 역사의 필연성을 잘 설명해주고 있다. 결국 늘 필연적인 인간의 이야기가 역사인 셈이다. 


이란 서부 중앙아시아에서 룸 술탄국의 보호를 받으며 살던 약소한 투르크계 유목민 부족은 룸 술탄국과 동로마 제국 간의 전쟁 한가운데에서 살아남기 위하여 룸 술탄국의 용병으로 전쟁에 뛰어든다. 엄밀히 말하자면 자신들의 전쟁이 아님에도, 그저 살기 위해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참전한 셈이다. 물론, 전후에 그 공로를 인정받아 지금의 앙카라 인근 지역의 땅을 봉토로 하사 받아 베이(Bey, 족장)가 되어 약진의 발판을 마련하게 된다. 말이 좋아 베이(Bey)지 여전히 룸 술탄국의 지배권에 속한 속주에 지나지 않았다. 13세기 말경의 이야기다. 11세기말부터 아나톨리아 반도 대부분을 지배한 투르크 왕조 룸 술탄국은 14세기 초인 1308년에 붕괴된다. 이때 베이였던 오스만 가지(Osman Gazi, I. Osmanlı)는 룸 술탄국의 붕괴를 틈타 주변의 동로마 제국 세력을 격파하며 독립을 한다. 이어 1326년 아버지의 죽음으로 베이를 물려받은 아들 오르한 가지(Orhan Gazi)는 그해 전격적으로 동로마 제국의 지방도시 부르사(Bursa)를 점령한다. 당시 오르한 가지의 부르사 점령은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한 교두보를 확보한 사건으로 후에 이스탄불과 발칸반도 등 유럽으로 세력을 확장하고 지중해 해상권을 장악하는 오스만 제국의 매우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였던 도시이다. 이후 주변의 기독교 세력과 이슬람 세력과의 전쟁과 동맹전략을 구사하며 점차 영토를 확장하고 후에 오스만 제국으로 발전하는 오스만 베이국(Osmanlı Beyliği)을 건국한다. 

1300년경 아나톨리아 beyliks의 대략적인 지도 / CC BY-SA 3.0 (creativecommons.org)
Area of the Ottoman Beylik during the reign of Osman I 

 Creative Commons — Attribution-ShareAlike 3.0 Unported — CC BY-SA 3.0

Ottoman Beylik around 1355, during Orhan's reign. /

 Creative Commons — Attribution-ShareAlike 3.0 Unported — CC BY-SA 3.0



골든 혼 (Golden Horn)에서 본 톱 카프 궁전 (Topkapı Palace)의 전망

 Creative Commons — Attribution-ShareAlike 3.0 Unported — CC BY-SA 3.0



이렇듯 오스만 가지가 이끄는 오스만 베이에서 출발한 오스만 제국의 세력 확장은 당시 아나톨리아 반도의 세력 판도 변화와 깊은 연관이 있는, 역사적 필연성에서 비롯된 사실이다. 오스만 제국의 심장과도 같은, 오스만 제국의 역사박물관이나 다름없는 부르사와 톱카프 궁전을 둘러보는 것은 아마도 오스만 제국의 성립과 동로마 제국의 멸망, 오스만 역사상 가장 찬란한 전성기를 이룬 술레이만 대제(I. Süleyman) 시대를 여는 오스만 튀르크 왕조의 역사적인 필연성을 확인하는, 이번 튀르키예 여행 중 가장 중요한 일정이지 싶다.  


세상은 빠르게 변한다. 하지만 인간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따라서, 본질이 변하지 않는 인간만큼, 딱 그만큼 역사 또한 그저 반복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인간사이기도 하다. 역사적인 이야기를 통하여 생각하고 그 생각을 발전시키고, 현재는 물론 다가오는 미래에 적용하고 대비할 수 있도록 역사를 보는 안목과 응용력을 키우는 것이 역사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매우 중요한 관점일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여행은 현장에서 직접 보고 들으며 체험하며 역사를 보는 안목을 키울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고 기회이다. 어디든 크게 상관이 없다. 가볍게 휴양 삼아 떠나는 여행과 흔히들 말하는 역사기행은 크게 다르지 않다. 휴양지에도 이야기는 있는 것이고 유적지나 박물관에도 당연히 이야기가 있기 때문이다. 여행은 그런 이야기를 찾아 떠나는 일이다. 목적지가 미리 정해져 있지 않아도 아무런 상관이 없다. 여행 중에도 이야기는 있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몸을 움직여 직접 역사의 현장에 가서 보고 느끼는 것은 책 속에서 배우는 역사지식 공부와 전혀 차원이 다른 일이다. 결국 여행은 ‘어디에 가느냐’의 문제이기보다 ‘무슨 이야기를 보고 듣느냐’의 문제이다. 



바쉬스 싸데(Babü-s Saâde, Gate of Felicity)와 세 번째 안뜰 Enderûn


필자는 이제 두 번째 안뜰에서 세 번째 문을 열고 톱카프 궁전의 더욱 깊숙한 곳으로 들어간다. 두 번째 안뜰 끝에 돔형 지붕으로 건축된 바쉬스 싸데(Babü-s Saâde, Bâbüssaâde 또는 Beatitude Kapısı, Gate of Felicity, 약도 01번)이 모습을 드러낸다. 첫 번째, 두 번째 문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마치 술탄의 존재와 권위를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것 같은데, 캐노피 위로 보이는 돔이 매우 인상적이다. 마블 대리석 기둥으로 지지된 캐노피 천정과 벽체가 금박으로 치장되어 있다. 아침에 떠오르는 햇살이 이 문을 비출 땐 온통 황금색으로 반짝거릴 것 같다. 필자가 이 문 앞에 선 시간이 오후 4시 20분경인데, 보는 시간에 따라 상당히 다른 모습일 것 같다. 톱카프 궁전의 가장 내밀한 곳으로 들어가는 입구, 바쉬스 싸데이다. 15세기에 메흐메드 2세에 의해 건설된 바쉬스 싸데와 세 번째 안뜰 Enderûn에는 술탄과 그의 가족들이 거주하는 공간이다. 1774년 술탄 무스타파 3세와 마흐무드 2세 때 로코코 양식으로 다시 치장되었으며, 문 입구엔 꾸란 구절로 장식된 투구라(tuğras)와 천장은 금박을 입혀 화려하기 이를 데 없는 문이다. 


Detail of the Gate of Felicity / CC BY-SA 3.0 (creativecommons.org)

Painting of Sultan Selim III holding audience in front of the Gate of Felicity ("펠리시티의 문 앞에서 청중을 맞이하는 셀림 3세.") / File:Ottoman Sultan Selim III (1789).jpg - Wikimedia Commons


세 번째 문 입구에 과거 산작크 세리프 (Sancak-ı Şerif’in Konulduğu Yer, The Location of The Sancak-ı Şerif)가 게양된 장소를 표시하는 볼록한 돌로 표시된 곳에 붉은 금줄을 쳐 관광객들이 밟는 것을 막아 놓았다. 무함마드의 깃발, 산자크 세리프카 펼쳐진 장소이다. Grand Vizier 또는 전쟁에 나가는 사령관은 엄숙한 의식에서 이 깃발을 받았다고 한다. 산자크 세리프는 이슬람 예언자 무함마드 시대에 사용된 원래 깃발로 무함마드의 수염과 망토 등 다른 신성한 성유물과 함께 네 번째 안뜰에 숨겨져 있다. 


이 깃발은 아라비아 반도에 최초의 통일 정권을 수립하는 초기 이슬람 정복전쟁에서 사용된 이후, 우마이야 왕조 칼리파(Umayyads Caliphate)와 압바스 왕조 칼리파(Abbasid Caliphate) 손에 넘어갔으며, 1516년 8월 이집트를 정복한 술탄 셀림 1세(I. Selim)*가 이슬람 세계의 최고 통치자 칭호인 칼리파직을 이양받음으로 오스만 제국의 손으로 넘어온다. 이로써 과거 동로마 제국 시대의 동방정교회 총대주교좌였던 콘스탄티노플은 1453년 오스만 제국의 수도 이스탄불로 바뀌고 1516년 비로소 이슬람 세계의 중심지가 된다. 이전에는 바그다드와 카이로가 이슬람 세계를 통치하는 중심지였다. 

산자크 세리프를 가져온 오스만 제국은 헝가리 원정을 시작으로 모든 전투에 이 깃발을 들고 참전하였으며, 이슬람 세계가 극도의 위험에 처할 경우 모든 이슬람교도는 술탄이 든 이 깃발 아래 집결해야 한다고 믿는, 무슬림 성전(Jihad)을 상징하는 신성한 깃발이다.


* 주) 술탄 셀림 1세(I. Selim)

1512년, 부황 바예지드 2세로부터 제위를 찬탈한 셀림 1세는 적극적인 영토 확장을 추진한다. 발칸반도에 관심을 기울였던 이전 술탄들과는 달리 소아시아에 대한 정복을 추진한 그는 1514년, 찰디란 전투에서 사파비 왕조를 물리치고 1515년 아랍 원정을 개시하

여 1516년에 북아프리카 알제리의 수도 알제를 점령하였으며, 시리아를 병합하고 예루살렘까지 장악한다. 이어 1517년 이집트를 병합한 셀림 1세는 칼리파직을 양도받으며 수니파 이슬람 세계의 맹주 자격을 획득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페르시아와 메소포타미아에 있던 시아파들은 무함마드의 사촌이자 사위인 알리 이븐 아비 탈리브(Ali ibn Abī Ṭālib)의 후손만이 시아파 무슬림들의 지도자임을 주장하며 칼리프로서의 술탄의 종교적인 권위를 결코 인정하지 않았다. 이집트 원정에서 돌아온 후 로도스섬 정벌을 준비하던 중 병으로 사망한 셀림 1세는 불과 8년의 재위기간 동안 230만㎢의 영토를 650만㎢로 확장한 오스만 제국의 제9대 술탄이다.

A painting depicting Selim I during the Egypt campaign, located in Army Museum, Istanbul / File:Yavuz Mısır Seferi.jpg - Wikimedia Commons


이곳에서 살았던 술탄의 가족들의 일상은 어떠했을까? 물론 국정을 돌보는 것이 술탄의 일상이겠지만, 권력의 최 정점에 있던 술탄과 그의 가족들은 당연히 평범한 서민들과는 사뭇 다른 삶을 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사람이 사는 것은 지위고하나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 필자의 소견이다. ‘사람이 살고 있는 거의 모든 곳에는 늘 이야기가 만들어진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기 때문이다. 톱카프 궁전 또한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특히, 이곳 세 번째 뜰은 술탄의 개인적인 공간이었고 하렘까지 있었으니 더 말할 필요 없지 싶다. 


엔데룬 Enderûn은 페르시아어로 내부를 의미하는 말인데, 외부 뜰은 비룬 Birûn이라 한다. 그 어떤 사람도 이 문을 통과할 수 없었으며 오로지 술탄의 허락을 받은 자만이 들어갈 수 있던 공간이다. 최고위 관료였던 그랜드 비지르(Sadrazam, Grand Vizier) 조차도 특정 날짜와 특정 조건 하에서 허가를 받아야만 들어갈 수 있는 철저하게 제한된 공간이었다. 그럼에도 오늘날, 세상은 바뀌고 변하여 찬란했던 오스만 제국도 역사 속의 기록으로 남고, 술탄제를 폐지하는 튀르키예 공화국이 수립되면서 톱카프 궁전은 박물관으로 일반에 개방된다. 그 덕에 오늘날 이 문을 통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세 번째 안뜰(Enderûn Avlusu, Inner Court)로 들어갈 수 있는 호사를 누린다.


바쉬스 싸데를 통과하면 관람객의 이해를 돕기 위하여 바쉬스 싸데의 아가(Agha of the Gate, Bâbüssaâde ağası)의 모형이 전시되어 있다. 오스만 제국의 궁정관리들의 모형이다. 바쉬스 싸데의 아가는 16세기말까지 오스만 제국의 궁전관리로 내시들의 수장이었다. 후에 이집트 총독이 선물한 흑인이 환관의 수장이 되면서 흑인 수석 내시(Baş Siyah Hadım)가 백인 내시에 비하여 우위를 점하게 되는데, 이에 대비하여 백인 수석 내시는 Kapi Agha, 술탄의 여자들이 있는 하렘의 여인들을 지키는 내시의 수장은 kizlar agha라고 하였다. 이들은 국정이 수행되는 두 번째 안뜰 Birûn과 술탄과 술탄의 가족이 거주하는 세 번째 안뜰 Enderûn을 분리 통제하는 임무를 수행하였다. 바쉬스 싸데에 위치한 사무실에서 하렘을 포함한 Enderûn에 대한 접근을 통제하고 술탄의 명령을 관리들에게 출납하는 등 술탄을 가장 가까운 곳에서 보좌하는 궁정 관리였다. 따라서 이들의 권한과 정치적 영향력은 생각보다 막강할 수밖에 없었는데, 술레이만 대제(1520-1566)의 통치 기간엔 오스만 제국의 고관인 그랜드 비지어(Grand Vizier) 직위에 오를 정도였다. 이후 1704년에 권한이 대폭 축소되어 실라다르 아가 (Silahdar Ağa)로 이전된다.


군주의 즉위식 등 특별한 의식이 거행되었던 세 번째 안뜰에 있는 알현실(Arz Odası, the Audience Chamber, 약도 02번)의 입구 오른쪽에는 술래이만 시대의 작은 분수와 왼쪽에는 큰 선물 창 (large gifts window)이 있는데, 금박으로 치장되어 있는 창살로 만들어진 창이다. 어쩌면 금으로 만든 창살인지도 모르겠다. 입구 좌우 벽은 이즈니크 타일로 장식되었으며 술탄의 투구라(tuğras) 역시 금박으로 치장되어 화려함을 더해준다. 이즈니크 타일은 부르사(bursa)의 장인들에 의하여 만들어졌는데, 14~15세기에 황금기를 맞는다. 건축물에 지극히 찬란한 화려함을 더해주는 이즈니크 타일은 준 보석으로 인정되는 석영이 80% 이상 함유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관대함, 정의, 선행의 바다"라고 쓰고 술탄이라 부른다는 아랍어 비문이 새겨져 있다 한다.


Main entrance to the Audience Chamber, with the small fountain of Suleiman I to the right, and the large gifts window to the left / Creative Commons — Attribution-ShareAlike 3.0 Unported — CC BY-SA 3.0


마블 대리석을 이용하여 궁형 아치 형태로 건축된 문을 통하여 술탄의 집무실이었던 알현실로 들어간다. 과거 오스만 제국의 고위 관리인 그랜드 비지어 주관으로 개최되는 제국의회(Dîvân-ı Hümâyun, Imperial Council)에서 논의된 국정 현안을 가지고 매주 일요일과 화요일 신하들이 이곳에서 술탄을 알현하였으며, 출병을 앞둔 원정 지휘관에게 오스만 제국의 군 지휘권을 부여하는 산작크 세리프(Sanjak-i Sharif)를 수여하기도 하는 술탄의 통치 행위가 이루어졌던 방이다. 물론 외국의 사신들 또한 이방에서 알현하였는데, 1533년 술탄을 알현한 사절 Cornelius Duplicius de Schepper의 동시대 기록을 인용하면, "황제는 금 천으로 완전히 덮인 약간 높은 왕좌에 앉아 있었고, 수많은 보석이 가득 차 있었고, 사방에 헤아릴 수 없는 가치가 있는 많은 방석이 있었다. 방의 벽은 하늘색과 금색으로 뒤덮인 모자이크 작품으로 덮여 있었다. 이 방의 벽난로 외부는 순은으로 되어 있고 금으로 덮여 있으며, 방 한쪽에는 샘물이 벽에서 솟아올랐다."라고 표현할 정도로 상당히 화려한 방이다. 지금의 알현실엔 Cornelius Duplicius de Schepper의 기록에 묘사된 수많은 보석은 볼 수 없으나, 술탄이 앉아있던 금으로 만들어진 왕좌와 ‘샘물이 솟아오르는’ 금으로 만든 수전은 당시의 화려함을 말해주고 있다.



알현실을 나와 건물의 외관을 둘러본다. 마블 대리석 기둥으로 지지된 반원형 아치 구조와 활처럼 휘어진 보조 지지 구조물이 처마를 떠 받치고 있으며 미려한 곡선을 살린 지붕이 특징적인 건축물이다. 이른 아침부터 시작된 여행이 오후 4시 30분이 지나고 있다. 살살 피곤해지기 시작하는 시간이다. 알현실 밖에 이런 여행자들을 위한 것인지 잠시 앉아서 쉴 수 있는 벤치가 놓여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드나들었는지 움푹 파인 마블 대리석 바닥이 반질반질하다. 



알현실에서 보이는 세페리 와드(seferli koğuşu, Dormitry of Campaigners, 기숙사, 약도 03번)와 파티흐 키오스크(Fatih Köşkü, Fatih’s(The Conquerer) Pavilion, 약도 04번)는 한창 보수 공사가 진행 중이다. 


세페리 와드는 오스만 제국의 행정 및 군사, 궁정관리 직원들의 훈련을 위해 설립된 톱카프 궁전의 기숙사 겸 교육기관으로 엔데룬의 신입들에게 기초적인 교육을 제공한 기관이다. 왕실의 세탁물 관리를 위하여 지어진 이 건물엔 줄루플루 아가(zülüflü ağaları)라 불리는 궁정 하인이 술탄의 세탁물을 처리하였으며 이들의 수장은 cameşuybaşı라 하였다. 무라드 4세(Ⅳ. Murad 1623~1640) 때엔 과학 및 예술학교로도 사용되었는데, 지금은 술탄의 드레스 컬렉션이 전시되고 있는 왕실의상박물관(Padişhah Elbiseleri Koleksiyonu)으로 운영되고 있다. 보수 공사가 아니었으면 꽤 볼만한 박물관이었지 싶어 여행에서 돌아와 영상으로 대체 관람을 한 세파리 와드이다. (https://youtu.be/sOcta1JzQ5Y) 아무튼, 세파리 와드는 1635년 술탄 무라드 4세에 의해 지어졌으며, 18세기 초 술탄 아흐메드 3세에 의해 복원되어 오늘에 이른다. 아치형이며 14개의 기둥으로 지지되는 건물은 제국의 재무부가 있던 정복자의 키오스크와 인접해 있는 건축물이다. 



https://youtu.be/sOcta1JzQ5Y?si=HJ75wIPiIZopz9-w


파티흐 키오스크(Fatih Köşkü) 구역은 톱카프 궁전에서 가장 오래된 건축물 중 하나이다. 마르마라 해와 보스포루스 해협이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 지어진 건축물로 술탄 셀림 1 세 (Sultan Selim I)의 재무부로 사용되었던 곳이다. Kilerli Koğuşu와 Hazine Koğuşu 건축물이 인접해 있다. 오스만 왕조의 예술품과 보석, 정복지에서 전리품으로 가져온 진귀한 보물, 미니어처와 초상화 갤러리 등 방대한 컬렉션이 전시되는 박물관으로 사용되는 건축물이다. 두 번째 안뜰의 외부 재무부와 구별하여 내부 재무부라 한다. 


Hallway of the Conqueror's Pavilion / File:Imperial Treasury Topkapi.jpg - Wikimedia Commons

The Conqueror's Pavilion (Fatih Köşkü) houses the Imperial Treasury / Creative Commons — Attribution 2.0 Generic — CC BY 2.0


식료품 저장실(Kilerli Koğuşu, Dormitory of Stormen, 약도 05번)은 제국 재무부의 북쪽에 인접한 건물로 술탄을 위한 음식을 차리는 곳이다. 커피 등 각종 차(茶)와 음료, 식품 그리고 식기와 양초, 촛대를 관리하고 유지하는 업무를 맡아 처리하는 공간이다. 헤킴바시 hekimbaşı라 불리는 약품을 관리하는 약국도 이곳에 있었는데, 이를테면 술탄의 부속실인 셈이고 식료품과 의약품, 집기들을 보관하는 창고였다. 이곳의 책임자는 킬레르시바시 Kilercibaşı라 하였으며 수 백명의 궁전 하인들이 킬레르시바시의 감독하에 조직적으로 일을 하였던 공간이다. 1856년 화재 이후 복원되었으며 지금은 미니어처 및 초상화 갤러리 (Müzesi Müdüriyeti)로 사용되고 있다. 12세기부터 17세기의 꾸란과 아랍어로 쓰인 4세기의 성경, Piri Reis(1513) 제독의 첫 번째 세계지도, 보존을 위하여 공개하지 않고 있는 역대 술탄의 사본 초상화 등이 전시되고 있는 공간이다.


Scene from the Surname-ı Vehbi, located in the palace / File:Surname 51b.jpg - Wikimedia Commons


재무부 와드(Hazine Koğuşu, Dormitory of Treasury, 약도 06번)엔 술탄 무스타파 3세(III. Mustafa)의 갑옷, 금과 보석으로 장식된 철제 외투, 금박을 입힌 검, 방패, 등자, 진주와 상아로 상감세공 된 무라드 4세(IV. Murad)의 흑단 왕좌, 에메랄드와 다이아몬드로 장식된 황금 칼자루와 칼집, 러시아 황제 니콜라이의 선물 옥그릇, 49개의 다이아몬드로 세팅된 86캐럿의 스푼메이커스 다이아몬드(Kaşıkçının Elması, Spoonmaker's Diamond Kaşıkçının Elması), 6,666개의 컷 다이아몬드가 장식된 순금 촛대, 진주와 에메랄드로 장식된 인도 스타일의 금도금 왕좌, 황금 덮개로 장식된 세례 요한(Yahya)의 팔뚝과 손 등 헤아릴 수조차 없는 진귀한 보물들이 수장∙전시되는 곳이다.  

 

Door to the Imperial Treasury (Hazine-i Âmire) / Public Domain (wikimedia.org)


믿거나 말거나 한 이야기지만 스푼메이커스 다이아몬드에는 여러 가지 버전의 일화가 전해진다. 그중 하나는 어부와 관련된 이야기로, 이스탄불의 예니 카피 항 근처에 살고 있던 한 가난한 어부가 어느 날 쓰레기 더미에서 반짝이는 돌을 주워 무엇인지도 모른 채 며칠을 주머니에 넣고 다니다 시장의 보석상에게 보여주었는데, 보석상은 유리 조각이라며 숟가락 세 개를 주며 놔두고 가라고 했다 한다. 훗날 고관이 이 물건을 알아보고 구입하여 술탄에게 선물하였고 어부에게 숟가락 세 개를 얻게 해 준 다이아몬드란 의미로 스푼메이커스 다이아몬드라 부르게 되었다고 하는 이야기다. 믿기 어려운 순진한 어부 이야기인데, 말 그대로 가능성은 매우 낮은 설이지 싶은 이야기다. 


Spoonmaker's Diamond / Creative Commons — Attribution-ShareAlike 2.0 Generic — CC BY-SA 2.0

Spoonmaker's Diamond / https://muze.gen.tr/muze-detay/topkapi


아무튼, 아쉬움이 남는다. 파티흐 키오스크 구역은 필자가 방문했을 때 관광객 출입을 차단하고 보수 공사 중이어서 오스만 제국의 가장 귀중한 유물들을 통째로 볼 수 없었다. 세 번째 안뜰 Enderûn은 톱카프 궁전에서 볼 수 있는 대부분 진귀한 유물이 전시되어 있는 곳이다. 하지만 모두 사진촬영은 할 수 없는 촬영 금지구역이기도 하다. 


추밀원(Has Oda, Privy Room, 약도 07번)은 술탄의 개인궁전으로 지어진 건축물이다. 이곳엔 산작크 세리프 (Sancak-ı Şerif’in)와 무함마드의 망토와 수염, 모세의 지팡이 등 이슬람 세계에서 가장 귀중하게 여겨지는 신성한 유물을 소장하고 있는 성유물의 방(Mukaddes Emanetler Dairsi, Chamber of Holy Relics)이다. 인접한 궁전 부속실(Has oda Koğuşu, Privy Room Dormitory, 약도 08번)은 술탄이 궁전에 머물 때 시중드는 하인들의 거소이다. 이곳의 궁전 관리들은 성유물을 관리하고 유지하는 업무를 담당했다. 오늘날엔 역대 술탄의 초상화가 소장되어 있다. 


Privy Chamber from the courtyard / File:Surname 51b.jpg - Wikimedia Commons
The Sacred Trust is kept in the former Privy Chamber in Topkapı Palace / File:Privy Chamber Topkapi 

신성한 유물이 보관되는 상자 (Topkapı Palace Museum, no. 21/29, 2/784) / https://istanbultarihi.ist/546-sacred-relics-in-istanbul

Hırka-i Şerif (예언자의 망토) 모스크 /  https://istanbultarihi.ist/546-sacred-relics-in-istanbul


hirka-i-serif-camiinde-hirka-i-serif-icin-hazirlanan-ozel-muze /  https://istanbultarihi.ist/546-sacred-relics-in-istanbul


Letter by Muhammad / File:Privy Chamber Topkapi March 2008.JPG - Wikimedia Commons


축복받은 망토의 방 내부 / File:Privy Chamber Topkapi March 2008.JPG - Wikimedia Commons


hirka-i-serif 예언자의 망토 /  https://istanbultarihi.ist/546-sacred-relics-in-istanbul


예언자의 검 /  https://istanbultarihi.ist/546-sacred-relics-in-istanbul


톱카프 단검(17세기) / https://muze.gen.tr/muze-detay/topkapi                                Has O


Has Oda 옆에 별채로 지어진 아갈라르 모스크(Ağalar Camii, Ağalar Mosque, 약도 09번)는 톱카프 궁전의 모스크로 당시 술탄은 이곳에서 매일 기도를 하였다 한다. 오늘날엔 필사본 도서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Ağalar Mosq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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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고전주의 건축양식으로 Enderûn에 지어진 아흐메드 3세의 도서관(Ⅲ. Ahmed Kutuphanesi, Library of Ahmed Ⅲ. 약도 10번)은 알현실(Arz Odası) 바로 뒤에 있다. 톱카프 궁전이 박물관으로 지정되면서 Enderûn 도서관이라고도 하는데, 대리석으로 마감된 건물의 외관이 상당히 미려하다. 원래 이 자리에는 Mimar Sinan이 셀림 2세(II. Selim)를 위해 지은 정원과 수영장이 딸린 대저택 하우스바체 맨션(Havuzlubahçe Mansion)이 있었지만, 이미 파손되어 사용하지 않고 있던 저택을 철거하고 도서관을 지어 예니 사라이(Sarây-ı Cedîd)에 보관되어 있던 책을 이곳으로 옮겨온다. 당시에 신학 및 이슬람 율법서와 아랍어와 튀르키예어, 페르시아어로 쓰인 약 3,500권의 도서와 이슬람 및 동양과 서양의 20,000권 이상의 필사본이 소장되어 있는 도서관이다. 오스만 제국의 정복자 메흐메드 2세(II. Mehmet)와 술레이만 대제는 굉장한 독서광으로 알려져 있다. 도서관 외부엔 분수가 설치되어 있는데, 안내판 설명을 읽어보니, 꾸란 isra suresi 17장 82절 "치유와 자비가 있다"라는 비문이 새겨진 분수로 튀르키예어로 체쉬메키타베시 Çeşme kitabesi라 한다.  


Enderûn Library, or Library of Sultan Ahmed III / Public Domain (wikimedi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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