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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밍웨이가 사랑한 도시, 론다 RONDA

by 조영환

여행의 계절, 다시 걷는 스페인-헤밍웨이가 사랑한 도시, 론다 RONDA


안달루시아의 숨어있는 보석 론다 RONDA


08시 30분, 우리는 절벽 위의 스페인 옛 도시 론다를 항하여 출발한다. 해안가에 성곽처럼 늘어선 눈부시게 흰 회벽집은 지중해의 넘실거리는 푸른 파도와 함께 여행자를 반긴다. 헤밍웨이의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의 배경이 된 도시, 헤밍웨이가 사랑한 도시,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 지방의 숨어있는 보석 론다 RONDA를 찾아 떠난다.


필자는 2022년부터 오랜 친구들과 함께 틈틈이 해파랑길을 걷고 있다. 걸을 때마다 깨닫는 것은, 걸어야만 볼 수 있는 것들이 있다는 것이다. 가끔 문득 스페인 론다가 떠오르는데, 론다에서 걸으며 발견한 것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해파랑길도 마찬가지로, 걷지 않으면 절대 볼 수 없는 보석 같은 길이다.

해파랑길 여행기

해파랑길 DNA 매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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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중해에서 떠오른 강렬한 햇살이 말라가 해변의 도심을 붉게 물들인다. 코끝을 간질이는 지중해 바람이 길거리 악사가 연주하는 기타 선율처럼 기분 좋게 느껴지는 이른 아침이다. 길 건너에 밤새 네온사인을 밝히고 길손들을 잡아끌던 London Pub은 요란하게 번쩍거리던 네온을 끄고 적막에 잠긴다. 시끌벅적 밤새 젊은 열기를 발산하며 서로의 젊음을 탐닉하던 젊은 남녀들은 하나 둘 바를 벗어나 도심 어디론가 사라진다. 이네들의 밤은 우리들의 불금보다 더 요란하다. 밤새 불이 꺼지지 않는 말라가 해변이다. 간밤에 야자수 길가에 좌판을 펼치고 지나는 관광객을 대상으로 장사에 열중이던 흑인들은 아프리카에서 꿈을 쫓아온 이들일 게다. 떠오르는 아침 햇살이 그들의 꿈을 찬란하게 비추어 주는 아침이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차 한 대가 겨우 지나가는 좁은 도로로 전 날의 흔적을 지우듯 청소차 한 대가 굉음을 내며 지나간다. 해변 요트장 옆으로 단장된 공원 산책로를 달리는 사람들의 경쾌한 모습이 수평선 위로 오르내린다. 멀리 산 중턱에 빼곡히 들어선 미하스 마을의 하얀 집들이 햇살을 받아 더욱더 눈부시게 희게 느껴지는 말라가 해변의 아침이다.


지중해변에서 하루를 유숙한 우리는 론다를 향하여 발길을 옮긴다. 구불구불 산으로 난 굽은 도로를 한 시간 남짓 올라 산을 넘는다. 말라가 해변의 파도 소리와 트럼펫과 어우러진 거리 악사의 색소폰 소리는 지중해를 뒤로하고 떠나는 여행객의 들뜬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힌다. 산간으로 난 길은 아직 구불구불 중턱을 돌아가고 있다. 멀리 산 능선을 따라 시야를 옮겨 내려가니 우리가 머물렀던 말라가 해변의 도심이 아주 작은 모습으로 산자락 끝에 겨우 붙어있다. 그리곤 이내 우뚝 솟아오른 산에 가로막혀 자취를 감춘다.


절개된 산자락에 나무와 수풀이 없고 풍화되어 쪼개진 석회암들만 보이는 것으로 보아 산 정상에 다다른 듯하다. 수목이 살지 못하는 척박한 돌산이다. 땅에 납작 엎드린 작은 풀들 만사는 돌산이다. 그럼에도 토끼집 같은 작은 집에 의지하여 사는 사람이 있는 산이다. 오랜 시간 풍화된 바위와 돌들이 금방이라도 부스러져 흘러내릴 것 같은 지질이다. 산간 길을 굽이돌아 내려오니 산 중턱에 사방으로 빼곡히 지어진 붉은 기와지붕의 하얀 집들이 가득하다. 산을 넘어 지중해를 뒤로하고 살짝 산악 내륙으로 들어왔다. 산 중턱의 마을, 론다에 들어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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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발고도 780m, 절벽 위에 형성된, 마을만 우뚝 솟아 있고 주변 지형은 마치 꺼져 내려앉은 것처럼 움푹 파인 형태의 지형, 협곡과 절벽으로 단차가 매우 큰 지형의 론다이다. 이 마을을 통과하는 과달레빈강 Rio Guadalevín은 천혜의 절경, 협곡 타호 데 론다 Tajo de Ronda와 절벽을 만들었고 그 가운데 론다가 솟아 있는 형상이다. 이 협곡을 사이에 두고 론다 구시가지와 신시가지가 구분된다. 절벽 아래 내려앉은 구릉지는 타호 협곡의 물이 빠져나가며 폭이 넓어지며 구릉지가 형성되어 있다. 구릉지는 초지와 농경지로 사용되며 드문드문 농가들이 보인다. 론다가 낭만적인 도시로 알려지게 되는 절경은 이 협곡과 절벽이 빚어낸 것이나 다름없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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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벽과 협곡 지형은 그 자체로 요새가 될 수밖에 없다. 론다 또한 그렇다. 우리가 절경이라 감탄하는 그런 지형적 특성으로 론다는 과거 많은 고난을 겪는 곳이었다. 한때는 무어인들이 점령했던 이곳은 스페인 카스티야 아라곤 연합의 레콘키스타로 탈환되었고 스페인 내전 때에는 공화파 파시스트들에게 점령당하는 뺏고 뺏기는 세력 간 충돌이 극심한 곳이었다.


론다는 고대 로마 시대부터 존재했던 도시다. 당시에는 "아시폴리스"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로마 제국 시대에는 군사적 요충지로 사용되었으며, 그 흔적은 지금까지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특히, 도시 외곽에 있는 로마 다리와 유적지는 론다의 고대 역사를 엿볼 수 있는 중요한 곳이다.


8세기부터 15세기까지 론다는 이슬람의 지배를 받았다. 이 시기에 론다는 중요한 문화적, 경제적 중심지로 발전했으며, 도시의 건축물에는 이슬람 건축 양식의 영향을 많이 볼 수 있다. 이후 레콘키스타로 재정복 되는 과정에서 론다는 중요한 전환점을 맞이하게 된다. 기독교적 요소가 도시 내 건축과 문화에 스며들게 되면서 이슬람과 기독교 문화가 혼재된다.


이후 19세기 후반 많은 예술가와 작가들이 론다를 방문하면서 문학과 예술의 중심지로 자리 잡게 된다. 헤밍웨이는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며 론다에 가장 유명한 인사로 기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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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사람과 로맨틱한 시간을 보내기 좋은 곳’, 필자의 말이 아니다. 헤밍웨이가 론다를 평가한 말인데, 동의하지 않기 어려워 보인다. 지금 기온은 7℃ 정도로 체감온도는 더 낮다. 고만고만한 집들 사이로 이리저리 연결된 좁은 길을 따라 걷는다. 집집마다 작은 베란다에 놓인 화분이 이색적인 안달루시아의 풍광을 이야기한다. 노천카페 테이블에 에스프레소 한 잔으로 담소하는 사람들 모습이 여유롭다. 교회 앞 광장에서 어린아이들의 맑은 웃음소리가 따듯한 햇살처럼 마을 어귀로 퍼져간다.


지어진 지 100년은 더 됐지 싶은 집들이 다닥다닥 어깨를 나란히 하며 고풍스러운 옛 마을이 형성되어 있다. 산악 중턱 지형을 깍지도 보태지도 않고 그대로 살려 지은 집들이라 오르내림이 있고 바닥 높낮이가 서로 다르다. 통로도 좁고 계단도 지형 생긴 대로 놓여있다. 조각방처럼 실내공간도 넓지 않은 구조다. 출입문은 넓게 낼 수도 없기에 위로 길게 높이를 늘려 문을 달았다. 우리네 상식으론 생활하기엔 참으로 불편한 집임에 틀림없지만 이네들은 이곳에 카페테리아는 물론이고 기념품 가게, 꽤나 알려진 메이커 명품점, 식료품점, 와인 상점, 호텔을 꾸리고 바를 내고 식당을 꾸려 이네들만의 방식으로 영업을 한다. 워낙 작은 집들이라 실내 공간이 협소한 관계로 노천에 테이블을 놓고 영업하는 노천카페로 충족하는 일이 일반적이다. 세련되고 차가운 현대식 집들과는 사뭇 다른 따듯한 정감이 넘치는 집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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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벽 위에 세워진 마을 한쪽 투로스 데 론다 광장 Plaza de Toros de Ronda을 지난다. 지금은 투우를 하지 않고 박물관으로 쓰이는 투우장이다. 옛 모습 그대로 지금은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는 스페인에서 가장 오래된 투우장이다. 이곳 기병사관학교에서 생도들 군사 훈련을 위하여 움직이는 표적이 필요했던 이네들이 소를 표적으로 삼아 훈련을 하였고 축제 때 이런 훈련 모습을 재현하면서 투우가 시작되었다는 기원설이 유력한 설이다.


헤밍웨이와 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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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밍웨이 Ernest Miller Hemingway(1899~1961)는 ‘노인과 바다’로 1953년 퓰리처상을, 그리고 1954년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For Whom the Bell Tolls)’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우리에게도 꽤나 익숙한 소설가이다. 필자가 헤밍웨이의 작품을 접한 것은 고등학교 다닐 때인데, 30여 년이 지난 시점에 론다에서 헤밍웨이를 만난다는 사실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감개무량한 일이었다.


그는 미 육군 상사로 예편한 후 저널리스트로 활약하며 파시스트이자 후에 군사 독재자가 된 프랑코에 반대하는 입장으로 스페인 내전에 참여하게 된다. 헤밍웨이는 이후 론다에 머물면서 스페인 내전을 바탕으로 로버트 조던과 마리아의 사랑을 그린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를 집필하게 된다. 이 장편 소설은 1943년에 게리 쿠퍼와 잉그리드버그만 주연의 영화로도 제작되어 16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을 비롯한 9개 부문 후보에 올라 여우조연상을 수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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론다의 늘 같은 카페에 들러 커피를 마시며 작품 구상에 몰두하는 헤밍웨이의 모습을 상상해 본다. 헤밍웨이가 걷던 헤밍웨이 산책로 Paeso de Hemingway를 따라 걷는다. 아찔한 절벽 아래로 구릉지가 펼쳐지는, 그야말로 정신이 번쩍 들 만한, 흔치 않은 그런 산책로이다. 누에보 다리 건너 구시가지 절벽 위 언덕에는 헤밍웨이가 머무르면서 글을 썼던 베이지색 2층 집이 아직 남아있다.



누에보 다리 Puente Nuev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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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에보 다리 Puente Nuevo 위에서 까마득한 다리 아래를 내려다본다. 헤밍웨이에 의해 유명해진, 깎아지른 듯한 120m 높이의 협곡 양안 절벽에 42년에 걸쳐 돌과 벽돌을 쌓아 올려 아치형 교각을 세우고 만든 누에보 다리다. 가끔 여행을 하다 보면 불가사의한 일을 보게 되는데, 누에보 다리 교각을 쌓아 올린 것을 좀 더 자세히 관찰해 보니, “이게 가능해?”란 말이 먼저 입에서 나온다. 좀 과장된 표현으로 그야말로 불가사의한, 보통 일이 아니었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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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세월 비바람을 견디며 서있는 누에보 다리 난간 위에 손을 올려본다. 울퉁불퉁 덜 다듬어진 돌로 만들어졌다. 협곡에서 채집하여 가져온 돌이다. 매끈하고 정교하게 가공하지 않고 생긴 그대로 알맞은 크기로 절단하여 사용한 돌이 왠지 더 정감이 가는 그런 누에보 다리다. 언뜻 보면 엉성해 보이지만 폭이 좁은 협곡이어서 당연히 물살도 센, 건설이 용이하지 않은 깊은 협곡에 42년이란 오랜 세월 동안 악조건을 극복하며 협곡 양안 절벽에 돌과 벽돌을 쌓아 건설한 누에보 다리다. 말로는 뭐라 형언할 수 없는, 이곳 사람들의 의지가 느껴지는, 그저 경이로울 뿐인 누에보 다리다.



론다 구시가지


역사의 소용돌이를 고스란히 겪으며 지켜봤을, 이제는 유일한 목격자인 누에보 다리에서 우리는 이곳에 머물며 소설을 쓰던 헤밍웨이의 흔적들을 더듬어 옛 시가지로 들어선다. 다리를 건너와 마을 입구에 들어서니 왠지 세월을 훌쩍 뛰어넘어온 느낌, 마치 과거로 시간 여행을 떠나는 느낌이다. 왜일까?


모든 것이 멈추어 있는 듯하다. 그런 예스러운 도시 론다의 작은 기념품점에서 아내는 이제 여섯 살이 된 손자 녀석과 세 살배기 손녀 선물로 론다를 소재로 디자인한 티셔츠 한 장, 원피스 한 벌과 모자를 구입한다.


골목길 안쪽에 자리한 소박한 카페 앞에 전형적인 집시 여인이 앉아있다. 카페 안에서 희미하지만 베사메 무초 노랫소리가 흘러나온다. 베사메, 베사메 무초~ Besame Mucho, ‘나에게 me, 키스 많이 Mucho, 해주세요.’라는 뜻의 달달한 스페인어 멕시코 노래다. 론다에서 듣는 베사메 무초, 평소 그다지 큰 감흥을 느끼지 못한 그저 그런 노래라 여겼는데, 조금은 다른 감흥이 느껴지는 베사메무초다. 로맨틱하고 달콤한 분위기에 어울리는 그런 노래인데, 이곳 론다에서 듣는 베사메 무초는 어찌 들으니 구슬프기 그지없는 노래지 싶다. 집시여인의 분위기 때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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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발길을 멈춘다. 스카프를 목에 두르고 권련을 깊게 문 전형적인 안달루시아 남자의 또각또각 발걸음 소리가 좁은 골목 안을 가득 채운다. 집시들이 신는 굽이 높은 구두에서 나는 소리다. 골목길에 벌집처럼 빼곡히 들어선 상점들은 상품을 진열하며, 그리고 낯선 이방인 손님을 맞으며 장사 준비에 여념이 없다. 낡고 오래된 집들과 거리를, 어찌 보면 꽤나 불편할 거 같은 예스러운 이곳에서, 이네들은 정갈하게 닦고 가꾸고 고치며 오늘을 잘 살아내고 있는 론다의 골목 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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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에 붙는 스키니진

바지에 가벼운 셔츠 차림으로 금발을 뒤로 쓸어 넘기며 골목길을 걷는 여인의 발걸음이 경쾌하게 골목 끝으로 멀어지고 막걸리 좋아하고 사람 좋은 우리 친구 고 박사 부부는 고토 데 하야스 coto de hayas 와인 통을 통째로 들고 올 기세다.

@thebcstory

#헤밍웨이 #론다 #스페인 #누에보다리 #스페인내전 #레콘키스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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