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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스키 한 잔과 시간의 흐름

2025년 1월 7일

by 양동생

오늘 누나는 술을 마신다고 했다. 그래서 나도 집에서 위스키를 한 잔 따른다.


잔에 천천히 흘러내리는 액체는 묵직한 금빛을 띠고 있다. 나는 한 손으로 잔을 들고, 다른 한 손으로 병을 닫는다. 습관적으로 병의 라벨을 한 번 훑어본다. 몇 년 산인지, 어느 지역에서 온 것인지, 알코올 도수는 몇 퍼센트인지. 하지만 사실 그런 정보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오늘 이 순간, 내가 이 위스키를 마신다는 사실이다.


혼자 폼 잡고 싶을 때는 역시 위스키만한 것이 없다.


위스키를 마시는 일에는 어떤 규칙도 없다. 물을 섞어도 좋고, 스트레이트로 마셔도 좋다. 얼음을 넣고 천천히 녹여 마셔도 된다. 그저 천천히, 자신이 원하는 방식대로 마시면 되는 술. 나는 오늘은 스트레이트로 마시기로 한다.


첫 모금을 넘기면 목을 타고 내려가는 열기가 퍼진다. 달콤한 나무 향과 살짝 타들어 가는 듯한 느낌이 남는다. 어떤 날은 그 타는 감각이 좋고, 어떤 날은 그저 조용히 사라지는 여운이 좋다. 오늘은 후자에 가깝다.

위스키는 시간을 마시는 술이다.


천천히 숙성된 원액이 오크통에서 숨을 쉬듯, 위스키를 마시는 순간에도 시간은 흐른다. 한 모금, 그리고 또 한 모금. 술이 목을 타고 내려가는 동안, 나는 과거를 복기한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어떤 대화를 나눴는지, 어떤 감정이 스쳐 지나갔는지. 그리고 어쩌면 그 기억 속에는 누나가 준 태국 브랜디가 떠오른다.


지금 이 시간 누나는 어떤 시간을 보내고 있을까. 안전할까? 나는 어쩌면 쓸데없이 그런 걸 궁금해하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궁금한 걸 궁금해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곧 무심함이 될 테니까.


위스키의 향은 깊고, 그 맛은 천천히 변한다. 처음에는 강한 알코올이 혀끝을 찌르지만, 이내 은은한 단맛과 묵직한 스모키함이 남는다. 사람과의 관계도 그렇다. 처음에는 어떤 단어들이 날카롭게 다가올 수도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 뒤에 감춰진 부드러움이 보인다. 누나와의 관계도, 어쩌면 그렇게 숙성돼야 하는 건 아닐까.

나는 위스키를 한 모금 더 마신다. 그리고 잔을 내려놓는다.


위스키를 마시는 일은 곧 기다리는 일이다. 얼음이 녹을 때까지 기다리고, 향이 퍼질 때까지 기다리고, 마지막 한 방울이 혀끝에서 사라질 때까지 기다린다. 나는 그런 기다림이 싫지 않다.


오늘도 시간은 흘러간다. 그리고 나는, 천천히 그 시간을 마신다. 심히 오글거리지만 역시 폼 잡을 땐 위스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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