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월 12일
애칭이라는 것은 이상한 힘을 가진다.
어떤 단어들은 그냥 단어일 뿐이지만, 애칭이 되는 순간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이름이 아닌 다른 무언가로 누군가를 부르는 것은 단순한 호칭 이상의 행위다. 그 사람을 향한 애정을 담고, 관계의 결을 결정하는 일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부터 누나를 ‘공주’라고 부르기로 했다.
생각해보니 누나는 스스로를 공주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자신을 그렇게 대해달라고 한 적도 있었고, 어떤 날은 스스로를 ‘공주’라고 부르기도 했다. 처음엔 그냥 흘려들었지만, 점점 그 단어가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렇다면, 나는 그 애칭을 받아들이고 공식화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고 해서 이게 허락된 일일까?
누나는 이 호칭을 어떻게 생각할까? 싫어할까? 아니면 그냥 신경 쓰지 않을까? 무언의 허락 같은 건 존재할까?
그런데 사실, 덕질러에게 중요한 것은 허락이 아니다.
덕질이라는 것은 애초에 나 혼자 열심히 의미를 부여하는 일이다. 좋아하는 사람이 어떤 반응을 보이든, 그 안에서 작은 신호를 찾아내고 해석하는 일. 공주라는 단어가 거부당하지 않았다면, 어쩌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신호가 아닐까?
애칭이란 일방적인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상대가 절대 부르지 못하게 했다면 불릴 수 없는 것이 애칭이다. 그러니 누나가 싫어하지 않았다는 것 자체가 무언의 허용처럼 느껴진다.
혹은, 어쩌면 전혀 신경 쓰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그 역시 좋다.
나는 나의 일을 한다. 덕질러는 덕질을 하고, 호칭을 만들고, 마음속에서 기념하고, 관계의 작은 변화를 음미한다. 그것이 덕질의 본질이다.
그래서 오늘부터, 나는 누나를 ‘공주’라고 부르기로 했다.
어떤 애칭은 자연스럽게 자리 잡는다. 그리고 언젠가는, 이 호칭이 너무 익숙해져서 누나가 당연한 듯이 받아들이게 되는 순간이 올지도 모른다. 애칭이란 결국, 관계 속에서 조용히 뿌리내리는 법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