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월 13일
나는 회색의 예쁜 비니를 하나 준비했다.
비니를 고를 때 특별한 기준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너무 두껍지 않으면서도 적당히 따뜻해야 했고, 너무 크지도 작지도 않은 사이즈여야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누나에게 어울려야 했다. 아니, 어울릴 것 같았다. 나는 누나가 비니를 쓴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지만, 왠지 잘 어울릴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그런데 이게 이상한 일이다.
어떤 사람이 어떤 옷을 입을지, 어떤 모자를 쓸지 예상하는 것은 대체로 경험에서 나온다. 하지만 누나는 평소 모자를 자주 쓰는 사람이 아니었고, 적어도 내가 아는 한 비니를 쓴 적은 없었다. 그런데도 나는 비니를 쓴 누나의 모습을 자연스럽게 떠올렸다.
비니를 쓰면 조금 달라 보일까.
평소보다 부드러운 인상이 될까. 조금 더 편안해 보일까. 아니면 전혀 예상치 못한 느낌이 될까. 상상해도 답이 나오지는 않았다. 다만 분명한 것은, 누나는 귀여울 것 같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귀엽다’라는 말을 어색해한다. 하지만 귀여움이라는 것은 단순한 외적인 요소를 넘어서는 무언가다. 예상하지 못한 순간에 불현듯 찾아오는 감정. 조금 색다른 모습이 보일 때, 평소와 다르게 다가오는 분위기 속에서, 혹은 예상과 살짝 다른 표정을 마주할 때. 나는 누나가 비니를 쓰면, 그 예상과 다른 무언가를 발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물론 이 모든 것은 어디까지나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는 일이다.
누나가 이 비니를 받아서 쓸지도 알 수 없다. 설사 받아들었다 해도, 정말로 쓸지는 모른다. 결국 책상 위 어딘가에 놓인 채, 영원히 쓰이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그것조차 신경 쓰지 않는다.
덕질이란 원래 그런 것이니까.
무언가를 기대하면서도, 기대하지 않는 태도. 일어날지도 모를 일을 상상하면서도, 일어나지 않을 가능성을 미리 알고 있는 마음가짐. 그리고 설사 그 일이 일어나지 않더라도, 상상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하는 태도.
나는 누나가 비니를 쓴 모습을 상상한다.
회색 비니를 쓰고, 익숙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조금 다른 분위기를 풍기는 누나. 아마도 나는 그 모습을 머릿속에서만 그려보다가, 결국 비니를 조심스럽게 손에 쥐고, 다시 한번 생각할 것이다.
“이거, 진짜 잘 어울릴 것 같은데.”
그리고 그 생각만으로도 충분히 따뜻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