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무제(無題)의 주말

2025년 1월 11일

by 양동생

오늘은 토요일이다. 하지만 별다른 일이 없다.


어떤 날들은 일기의 소재가 되고 제목이 붙는다. "누나와 커피를 마신 날", "누나가 화난 날", "누나가 칭찬해준 날" 같은 식으로. 하지만 오늘은 그런 일이 없다. 아무 일도 없어서, 아무 제목도 붙일 수 없는 토요일.

무제(無題).


제목이 없는 글처럼, 오늘도 그렇게 흘러간다.


주말이면 어쩐지 뭔가 기대하게 된다. 평일 내내 생각했던 것들을 실행할 수 있는 날이니까. 누나와 어디선가 우연히 마주칠 수도 있고, 적어도 한 줄짜리 카톡이라도 받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냥 조용한 하루가 흘렀다.


그렇다고 아예 아무것도 안 한 건 아니다. 밥을 먹었고, 커피를 마셨고, 음악을 들었다. 책을 펼쳤지만 몇 장 읽고 덮었다. 가끔 휴대폰을 들여다봤다. 알림이 왔나 싶었지만, 별다른 건 없었다. 몇 번이고 SNS를 확인했다가도, 무의미하다는 걸 알고 덮었다.


어떤 날은 그런 날이다.


대단한 사건이 일어나지 않고, 감정을 크게 흔드는 일도 없다. 그냥 평범하게 지나가버리는 날. 오늘 같은 토요일.


덕질을 하다 보면, 이런 날이 가장 어렵다. 좋아하는 사람과의 거리를 측정할 수 있는 아무런 단서가 없는 날. 친밀함이 늘어났는지, 멀어졌는지조차 가늠할 수 없는, 공백 같은 하루.


하지만 그런 생각도 한참 하다 보면 문득 깨닫는다.


모든 날이 기록될 필요는 없다는 것.


덕질도, 관계도, 삶도. 어떤 날은 그저 흘러가야 한다. 제목 없는 하루가 쌓여서 결국 하나의 흐름이 되는 것처럼.


그러니까 오늘은 그냥 무제.


이 덕질일기의 어떤 페이지에도 기록되지 않을, 토요일.

이전 05화나에 놀란 건지, 커피에 놀란 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