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움은 언제나 나보다 먼저 도착한다

2025년 4월 2일

by 양동생

오늘은 그런 날이었다. 작은 말 한마디가 나를 너무 쉽게 흔들어놓는 날.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누나에 대한 이야기를 누구에게도 꺼낸 적이 없었다. 말하지 않는 것이 나름의 배려라고 생각했으니까. 혹시라도 내가 꺼낸 말 하나가 누나를 괜히 무겁게 만들까, 내 마음을 들키는 순간 모든 관계가 균열 날까 두려웠다. 그래서 언제나 조심스럽게 침묵을 지켰다.


하지만 오늘 들었다. 누나가 내 동기에게, 우리 둘이서만 갔던 저녁 식사 이야기를 꺼냈다고 했다. 그런 것들이, 아무렇지 않게 다른 사람의 대화 안에 놓였다고 했다. 이게 뭐라고, 나는 또 금세 마음이 아팠다.


그 자리는 누군가에겐 그냥 저녁 식사일 수도 있었지만, 내게는 그런 게 아니었다. 그것은 아주 조심스럽게 접어둔 마음의 한 조각이었다. 말하자면, 내 마음속에서는 아직도 그날의 대화가 계속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누나가 돌리던 손, 가끔 웃던 눈, 무심히 입었던 옷들조차 내겐 강렬한 장면이었다.


물론 누나가 굳이 비밀이라고 말한 적은 없다. 손가락을 걸지도 않았다. 그래서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다. 그럼에도 서운했다. 어쩔 수 없었다. 나는 누나를 감춰두고 있었는데, 누나는 가볍게 내 바깥으로 꺼내 보였다. 그래서 나는 소심하게 말하지 말라고 부탁해 보았다.


그리고 오늘 회사에서 마주친 누나는 여전히 예뻤다.


참 이상하다. 사람의 얼굴은 시간이 지나면 익숙해지기 마련인데, 나는 누나를 볼 때마다 여전히 놀란다. 늘 처음 본 것처럼, 그 아름다움에 다시금 감탄한다.


누나가 미소 지을 때마다, 한 걸음 걸을 때마다, 말끝을 흐릴 때마다 나는 자꾸만 마음을 놓치고 만다. 누군가를 이렇게 오래, 이렇게 깊이 사랑한다는 건 생각보다 더 많은 체력을 필요로 한다는 걸 요즘 들어 실감하고 있다.


그런데도, 나는 여전히 그 자리다. 하루가 지나고, 계절이 바뀌고, 여러 번 마음이 부서지고 또 붙여졌는데도 나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 이 사랑은 발전하지 않는다. 하지만 멈춰 있는 것도 아니다. 마치 아주 느리게, 거의 보이지 않게 자라는 나무처럼 소리 없이 내 안에서 자라나고 있다. 언젠가 이 감정이 끝날지도 모른다. 혹은 끝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나는 오늘도 누나를 보고 예쁘다고 생각했고, 그것만으로 하루가 무너지고, 또 하루를 버텨냈다. 아름다움은 언제나 나보다 먼저 도착한다. 나는 늘 그 아름다움의 뒷모습을 보며 사랑을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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