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화려한 꽃에서 가장 숭고한 꽃으로
나이가 들면서 2개의 손이 있다는 걸 깨닫게 될 것이다. 한 손은 자신을 돕기 위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다른 사람을 돕기 위한 것이다.
As you grow older, you will discover that you have two hands, one for helping yourself, the other for helping others.
근처에 ‘헵번처럼’이라는 이름의 미용실이 새로 생겼을 때, 솔직히 말해 조금 질투가 났습니다. 너무 멋진 이름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헵번처럼’이라는 말만 들어도 뭔가 우아하고 고상한 이미지가 떠오르지 않나요? 마음속으로 혼잣말처럼 이렇게 다짐했습니다.
“나중에 내가 다시 미용실을 오픈하게 된다면, 꼭 ‘나도 헵번처럼’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싶어.”
저는 꽃 이야기를 들으면 늘 오드리 헵번이 떠오릅니다. 그녀의 청량하고 아름다운 외모도 생각나고, 수많은 명작 영화 속 그녀의 환한 웃음도 떠오르지만, 무엇보다도 저는 그녀의 ‘노년의 삶’을 깊이 존경합니다.
헵번은 젊은 시절 화려한 스타로서 누구보다 반짝이는 삶을 살았지만, 은퇴 후에도 충분히 그러한 영광 속에 머물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전혀 다른 길을 선택했습니다. 유니세프 친선대사로 활동하며 인권운동과 자선사업에 앞장섰고, 제3세계의 오지 마을로 직접 찾아가 아이들을 보살피고 사랑을 나누었습니다.
심지어 암 투병 중에도 소말리아에 방문하여 봉사활동을 이어가는 모습을 보며, 저는 그녀가 어떤 마음을 품고 살았는지, 얼마나 단단하고 따뜻한 사람이었는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얼마 전에는 오드리 헵번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우연히 보게 되었는데, 그 안에서 그녀가 어린 시절 목숨을 걸고 나치의 감시를 피해 유대인들을 도왔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녀가 말년에 앓았던 병이 어린 시절 영양 부족으로 인해 뿌리식물 같은 것을 먹으며 버틴 이들에게 잘 생기는 병이라는 이야기를 듣고는, 마음이 더 아려왔습니다.
그녀의 삶은 그야말로 ‘가장 화려한 꽃’에서 ‘가장 숭고한 꽃’으로 변화해 간 여정이었습니다. 찬란함 속에서 머무르지 않고, 오히려 그 빛을 이웃에게 나눠주는 삶. 그런 오드리 헵번을 떠올릴 때마다 저는 조용히 제게 묻습니다.
"나도, 그런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
물론 쉽지는 않겠지만, 만약 갈 수 있다면, 저도 그 길을 따라가고 싶습니다.
얼마 전 알게 된 사실이 하나 더 있습니다. 오드리 헵번 가족의 제안으로, 팽목항 인근에 ‘오드리 헵번 기억 숲’이 조성되었다는 소식입니다. 세월호 기억의 숲, 그 숲의 나무들 사이로 오드리 헵번의 숨결이 닿아 있다고 생각하니, 그녀는 더 이상 머나먼 외국의 전설적인 배우가 아니라, 우리 곁의 아주 가까운, 그리고 따뜻한 존재로 느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