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시절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인연을 이어오고 있는 친구가 다섯 명 있습니다. 각자 인생의 폭풍 같았던 20대에서 40대를 지나, 지금은 1년에 두 번 정기적으로 만나 소중한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 친구들 중 한 분이 요즘 가수 임영웅 씨에게 푹 빠져 계세요. 저는 사실 트로트를 좋아하는 편은 아닙니다. 요즘 유행하는 트롯 경연 프로그램도 한 번도 챙겨본 적이 없습니다. 제게 트롯은 그저 노래방에서 부모님을 기쁘게 해드릴 때 부르는 노래일 뿐이었죠.
그 친구는 학교를 졸업한 후 직장생활을 하다가 선을 보고, 우리들 중 가장 먼저 결혼을 했습니다. 그리고 딸을 낳은 후 1년 만에 이혼을 하고, 지금까지 딸을 혼자 키우며 살아왔습니다.
저는 졸업과 동시에 서울로 올라가 힘든 시간들을 겪으며 외국 생활도 했고, 그러는 사이 친구들과는 자연스럽게 연락이 끊어졌습니다. 그러다 10여 년 전 거제도로 내려오면서 다시 친구들과의 인연이 이어졌습니다.
한동안 연락을 못 했던 친구가 아직도 혼자 살고 있다는 사실이 마음에 걸려, 혹시 상처가 될까 싶으면서도 오지랖을 부렸습니다.
"좋은 사람 만나서 행복하게 살지, 왜 아직도 혼자야?"라고 물었더니 친구는 이렇게 말하더군요.
"친구야, 너는 지금까지 한 명하고만 살았지? 나는 이 남자, 저 남자, 오만 남자를 다 만나봤어. 내 평생에 남자가 없었던 적은 한 번도 없었거든. 그런데 남자란 게 다 그게 그거더라. 이제는 그냥 귀찮고 지겨워."
그 이야기를 들으며 한편으로는 평생 연애 한 번 못 해보고, 한 남자와 결혼해 열심히 살아보려 발버둥치고 있는 제 모습이 떠올라 오히려 친구가 부럽게 느껴졌습니다.
그런데요, 그런 친구에게 예상치 못한 새로운 인생이 찾아왔습니다. 누군가 말하길, 좋아하는 일을 즐기다 보면 그것이 곧 성공이 되고, 심지어 돈도 따라온다고 했지요?
친구의 직업은 보험설계사입니다. 온순하고 두루뭉술한 성격 덕에 평생을 성실하게 일하며 딸을 키우며 살아오셨습니다. 그리고 그 덕분인지 스마트폰 활용은 전문가 수준입니다. 컴퓨터는 제가 더 잘 다루지만, 스마트폰과 관련된 건 오히려 제가 친구에게 물어보곤 합니다.
그런 친구가 임영웅 씨의 열렬한 팬이 된 후, 부산에서 팬 모임을 가지게 되었고, 대부분이 중장년층이었던 팬들에게 큰 도움을 주기 시작했습니다. 어려운 티켓팅을 대신 해주고, 콘서트에는 60\~70대 팬들을 위해 차량까지 마련해 전국 곳곳을 함께 다녔습니다. 친구는 정말 진심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친구는 팬 이름으로 인생 첫 기부도 시작하게 되었고, 부산의 한 신문에 기사로 실리기도 했습니다. 저는 그 모습을 보며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나를 일으켜 세우는 건 가까운 사람들이라고 하죠. 내가 행복하고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있는 건 주변 사람들의 힘 덕분이라고 말했던 톨스토이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가 떠올랐습니다.
저는 아직 그 말씀을 제대로 실천하지 못하고 있는데, 친구는 몸소 실천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친구는 팬클럽에서 만난 여유 있는 60\~70대 분들로부터 보험 상담 요청을 많이 받게 되었고, 그 덕에 지금까지 최고의 실적을 올리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토록 고생만 하던 친구가 이제는 진짜 삶의 여유를 누리게 된 것이죠.
임영웅 씨를 진심으로 좋아했던 그 마음이 좋은 이웃들을 만들어주었고, 그 이웃들을 돕는 과정에서 경제적인 부까지 얻게 된 친구. 지금 친구는 인생에서 가장 크고 깊은 행복을 누리고 있습니다.
어쩌면 조금은 극단적인 이야기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트로트에 별 관심 없는 저조차도, 임영웅 씨와 그의 팬들의 선행과 배려에는 깊이 공감하게 됩니다.
임영웅 씨는 연세 많으신 팬들을 위해 콘서트장에 방석을 준비하고, 지하철에서는 안전요원들이 어르신 한 분당 한 분씩 에스코트를 하도록 배려하셨다고 합니다. 또 부모님을 모시고 온 자녀들을 위해 콘서트장 앞에 대기 공간도 마련해 주셨다고 하네요. 진심 어린 배려가 느껴지는 대목이었습니다.
이런 하나하나의 세심한 마음이, 험한 세월을 살아오신 어르신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결국 ‘맹신’에 가까운 애정을 이끌어낸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저는 여전히 트로트에는 큰 관심이 없지만, ‘그런’ 임영웅 씨에게는 깊은 존경을 보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