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동네 봄호에 실린 <이토록 보잘것없는 사랑>이라는 글에서 시인 진은영은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이들의 상실과 고통을 섬세하고 정확하게 짚으면서 그럼에도 계속되는 그들의 사랑과 전진을 그들 자신의 목소리를 빌려 담담히 말하고 있다. 세월호에 대한 이야기다.
그 글의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시인은 우리에게 질문한다. '슬픈 사람을 향해 시를 쓴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그 질문을 마주하고 나는 2014년 5월 즈음 시를 왜 배워야 하느냐고 울면서 내게 묻던 어떤 아이를 다시 떠올리게 되었다. 그해 2학기 시창작 수업 첫 시간에 나는 칠판에 '문학이란 무엇인가'라고 썼다가 지우고 '문학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라고 다시 고쳐 썼다. '문학이 무엇인지'가 아니라 '문학은 도대체 무엇이어야 하는지', '문학은 정말 무엇을 할 수 있는 것인지'라고 물어야 했다.
그 이후 나와 아이들의 수업은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길고 긴 여정이었다. 이제 그 아이들은 모두 각자의 삶에서 그 답을 찾았을까? 아이들을 만날 수 있다면 언젠가 물어보고 싶다.
2.
시인은 글에서 자신의 질문에 대해 이렇게 답했다.
문학은 폭우를 멈출 수도 없고 비극을 없앨 수도 없다. 아마도 내가 썼던 시들은 사랑하는 이를 잃은 사람의 고통에 직접 가닿지 못했을 것이다. 비 오는 날 유리 위의 와이퍼가 차 속에서 울고 있는 이의 얼굴에 가닿지 못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지금 세상에는 비가 내리고 한 사람이 눈물을 흘리면서 가고 있다. 그가 무사히 가던 길을 갈 수 있도록 유리창을 부지런히 닦아내는 길고 가느다란 손들, 볼품없고 분주한 손들, 그것이 문학이라고 믿어보자. 문학은 죽은 자를 기억한다. 보잘것없는, 우리가 멈추지 못한 사랑.
- 진은영, <이토록 보잘것없는 사랑>, 문학동네 봄호, 2024, 118쪽
문학은 현실을 바꿀 수도 없고, 한 사람의 고통에 닿을 수도 없다고 시인은 말한다. 하지만 문학은 사랑을 멈추지 않으면서 고통받는 사람을 내내 기억한다. 울고 있는 사람의 평안과 안녕을 위해 문학은 부지런히 계속 다시 말하고 고쳐 쓴다. 문학은 가장 마지막까지 기억하고 기록한다. 그 일을 시인은 '이토록 보잘것없는 사랑'이라고 썼다.
3.
한 때 나는 아이들의 고통에 닿지 못한다는 깊은 슬픔으로 괴로웠던 적이 있다. 너의 슬픔은 거기에 있는데 내 손은 거기에 자꾸 닿지 않는 것이었다. 하지만 주저앉아 울면서 너희들을 이해한다고만 말할 수는 없었다. 세상은 끔찍하고 우리는 망했다고만 말할 수는 없었다. 사람들을 비난하며 우쭐대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내 말을 내가 배반하면서 자기기만에만 빠져 있을 수도 없었다. 바로 그 자리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고내가 할 수 없는 일도 해야 했다. 그것이 아무도 이해할 수 없는 희망과 쓸모없는 사랑이어도 그 때 나는 그래야 했다.
4.
이제는 스무살이 된 한 아이가 얼마전 내게 문자를 보냈다. 잘 지내고 있는지 안부를 묻고 자신은 원하는경제학과에 입학했다고 썼다. 그리고는 올해 4월 16일에 세월호 사진전을 다녀왔다고 했고 1년만에 핸드폰 배경화면을 바꾸었다고 했다.
그 아이의 핸드폰 배경화면은 작년 4월 그가 다니던 고등학교에 걸려있던 세월호 추모 현수막을 찍은 사진이었다. 작년 4월 배경화면은 재작년 세월호 추모 현수막이었다. 봄과 여름, 가을과 겨울이 몇 번이나 지나고 다시 4월이 오는 동안 아이는 핸드폰을 볼 때마다 세월호를 생각했고 아이의 핸드폰을 보는 사람들도 세월호를 떠올렸다.
5.
나는 2학기 수업에 대한 생각들을 포스트잇에 적어 두고 있다. 노란색 포스트잇이 교장실 벽을 채워가고 있다. 이곳에 온 뒤로는 길게는 두 달 정도의 수업이나 가끔 특강 비슷한 것을 했지만 2학기에는 매일매일 아이들과 수업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럴 수 있기를. 나의 보잘것없는 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