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시작하면 예민함의 끝을 보여주고, 점심엔 또 어떤 날카로운 언행을 툭툭 던져놓는다. 그런 아이를 바라보며 나도 유치하게 "왜 저렇게 예민할까" 하고 마음속으로 툴툴거리기도 하지만, 나는 엄마니까, 오늘도 '나무아미타불'을 외치며 참을 인(忍) 석 자를 가슴에 새긴다.
"나는 아마 스님보다 사리가 더 많이 나올 거 같아."
이런 엉뚱한 생각을 하며 아침을 넘기고, 점심도 그렇게 지나간다. 그런데 저녁에는 다른 이야기가 펼쳐진다. 배불리 저녁을 먹고, 간식을 씹으며 기분 좋은 웃음을 짓는 아이에게 나는 조심스레 묻는다.
"정민아, 너는 이렇게 예쁘게 잘 웃는 아이인데, 왜 아침과 낮에는 엄마한테 그렇게 뾰족뾰족할까?"
아이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는다. 또 내가 괜한 말을 했나. 침묵이 흐르고, 분위기는 조금 얼어붙는다.
"나도 잘 모르겠는데요."
그리고 다시, 과자만 씹는 아이. 말이 없고, 공기는 딱딱하다. 그 순간,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난 또 마음속으로 ‘에휴, 이게 다 청소년기라 그렇지 뭐’ 하고 넘겨본다.
그러다 잠시 후, 아이가 말을 꺼낸다. 어쩐지 편안한 목소리로.
"아마 그냥 편해서 그런 것 같아요. 학교 가면 스트레스받고, 움츠려 있다가 집에 오면 엄마가 편해서..."
그 말을 듣고 나는 묵직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아이가 느끼는 편안함이라는 것이 어떤 마음인지 조금은 알 것 같은 느낌이 들었고, 그 편안함을 소중히 여겨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랬구나. 집이 편하면 좋은 거야. 말해줘서 고맙다, 정민아. 근데 있잖아. 엄마도 사람이니까, 네가 이유 없이 까칠하게 굴 때면 속상할 때도 있단다."
다시 한동안 침묵이 흐른다. 아이는 여전히 아무렇지 않게 과자를 씹고 있다.
그저, 눈빛은 어딘가를 응시하고 있지만, 그 속엔 뭔가 생각이 담겨 있을 것이다.
그러다, 아이가 다시 입을 연다.
"나도 엄마한테 그렇게 하고 집 밖을 나설 때마다 후회해요. 엄마한테 미안하기도 하고."
아이의 그 말 한마디가, 마치 조용히 마음을 녹이는 약처럼 느껴진다. 그건 따뜻한 위로나 달콤한 말이 아니었다. 그저 담담하게 흘러나온 말인데, 나에게는 그 어떤 말보다도 감동적이었다. 찢겼던 마음이 점점 아물어 가는 느낌이 든다. 아이가 나를 치유해 주는 순간이다.
"그래, 그럼 됐다."
청소년기는 이율배반적인 시기다. 낮에는 칸트와 철학 책에 대해 토론하며 '깊은 사고'에 빠져 있다가, 저녁에는 반찬투정을 하며 짜증을 부린다. 사실, 청소년의 뇌는 아직 미성숙한 전두엽과 예민한 편도체로 이루어져 있어서, 이런 복잡한 감정을 처리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시기다. 부모는 그들이 겪는 혼란스러움과 불안정함을 이해하며, 그 안에서 아이가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보아야 한다.
아이의 뇌가 미숙하고 예민하다는 사실을 알기에, 부모는 그 아이를 가엾게 여기며 사랑으로 감싸줘야 한다. 그런 과정 속에서 아이는 스스로 부딪히고, 깨닫고, 결국 성숙한 어른으로 자라나게 된다. 나는 그런 아이를 믿는다. 더 큰 그릇을 갖기 위한 여정이라고 생각하며, 묵묵히 그 길을 함께 걸어간다.
오늘도 무겁게 가방을 메고 성실하게 등교하는 너를 보며, 나는 깊은 한숨과 함께 감사함을 느낀다. 아이가 잘 성장하고 있다는 믿음이 내 마음 한편에 깊게 자리 잡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