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승무사업소라는 곳에 속해서 기관사로서 일을 하게 되는데, 이곳 역시 사람이 모인 곳이다 보니 다양한 컨셉을 가진 기관사들이 존재했다.
기관사이기에 부여받는 들쭉날쭉한 사이 시간에 책갈피처럼 책을 끼우기에 열심인 책 읽는 기관사,
자판기 커피 VIP 고객으로서 해당 기관사 커뮤니티의 핫한 소식들부터 세부적인 소식들까지 줄줄이 꿰고 있는 생생정보통 기관사,
쇳덩이를 들다 못해 기관사로 일한 세월마저 들어 올려버린 헬창 기관사,
주변 돈까스집들의 계보와 정세를 흥미롭게 관찰하며 각 집 돈까스들의 맛과 특성들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는 돈까스 러버 기관사,
활어를 핑계로 세월을 낚는 강태공 기관사,
봉사활동에 열심인 슈바이처 기관사,
생기는 시간들을 독서실에 차곡차곡 적립해서 수십 개의 자격증으로 환급받은 자격증 수집왕 기관사,
탁구 2부 리그 선수 기관사, 클라이머 기관사, 슛돌이 기관사, 푸근하게 배 나온 기관사까지.
똑같은 업무를 똑같은 매뉴얼대로 처리해야 하기에 일을 할 때는 각각이 무채색의 기관사가 되었지만, 그렇다고 각자가 가진 색깔이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기관사는 [오차 없는 완벽함을 강요받는]열차 운전실에서 나왔을 때, 비로소 본인만의 색과 빛을 띄는 존재였다.
그래서 특정 키워드를 말했을 때 입에 오르는 기관사들이 존재했는데,
가령 ‘자격증’이라면 “아 그 자격증 수십 개 가지고 있고 여전히 공부 중인 기관사?”라거나,
‘돈까스’라면 “아 주변에서 돈까스를 먹을 거라면 xxx기관사에게 물어봐. 그럼 넌 만족스런 돈까스를 마주하게 될 거야.”
혹은 ‘헬스’ 라면 “아 네가 쇠질에 대해 관심이 있다면 그에게 말해봐. 그는 풍기문란한 팔뚝과 우람한 근육들로 우리를 건강하게 만들고 싶어 하니까.” 같은 경우이다.
마찬가지로 내게도 그런 키워드가 존재했다.
‘복싱’, ‘주짓수’, ‘크로스핏’, ‘운동’, ‘강함’ 등이 내 이름이 소환되는 키워드였다.
나는 복싱과 주짓수를 오래 수련했고, 시합에 나가 대단하진 않더라도 내 노력에 대한 증명들을 해왔다. 이외에도 쉬는 시간이나 여가시간에 항상 운동을 빼먹지 않았고, 해군 특수부대 UDT/SEAL에서 팀원으로 있었던 내 시간도 그에 한몫을 했다.
그렇게 동료들이 보기에 나는 강한 사람이었는데, 그게 내 삶에 있어서는 ‘성공’이었다.
왜냐면 나는 ‘강함’이라는 가치에 목마른 사람이었으니까.
어릴 때 왕따를 당하고 집단 구타도 당했던 나는 늘 ‘강함’이라는 가치에 대한 목마름을 가지고 있었다.
소화기관이 여물지 못했던 어린 시절 학교에서 우유를 먹고 토를 했는데, 그때는 그게 왕따가 되기에 충분한 계기였다.
물론 토를 한다고 무조건 왕따가 되는 건 아니다.
그런 건 그저 계기에 불과하다.
내가 왕따가 되려면 그 좋은 계기를 이용해서 나를 왕따로 만들고 폭력을 행해줄 아이들이 있어야 하는데, 그때 우리 반에 그런 아이들이 있었을 뿐이었다.
왕따 당했던 초등학생 시절이 지나고, 중학생이 되고, 고등학생이 되고, 성인이 되어 대학생이 되고.
그런 시간이 흘러오며 내 안에 ‘강함’에 대한 갈증이 자리하게 된 것을 나 스스로도 자각하진 못했었다.
그러다 어느 날 알게 된 해군 특수부대 UDT/SEAL.
그곳에 가면 강한 게 무엇인지 알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UDT 대원 선별을 위한 악명 높은 초급반 교육을 받으며 숱한 난관들에 부딪혔다.
그때마다 나를 다잡아 주었던 말은.
‘강한 놈이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는 놈이 강한 것이다.’
기본적으로 우리 부대에 오는 사람들은 운동을 하던 운동인들이다.
무슨 종목 선수, 엘리트 체육인, 국대 상비군, 체대생 등 발에 치이는 게 체육인들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 흔한 체육인의 범주에 속하지 못했고, 나는 그곳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었다.
동기 중에 대단한 체육 명문 대학교에 다니던 P라는 녀석이 있었다.
초급반 교육을 받으며 맹세코 나는 단 한 번도 포기한 적이 없었지만, 나 같은 사람은 이곳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P의 눈에는 내가 못마땅해 보였다.
입장을 바꾸어 보았을 때, 내가 체육인으로서 자부심이 대단한 P의 입장이었다면 나 역시 어울리지 않는 존재가 싫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해서 나를 향한 P의 공격적인 행동과 언어들을 머리로는 이해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아마 UDT 교육을 받으며 한창 퇴교자가 생겨날 때쯤] 갑자기 P가 돌변했다.
P가 나에게 건네는 따뜻한 말과 행동들 틈에서 나와 친해지고 싶다는 마음이 분명하게 느껴졌다.
나중에 정식 UDT 대원이 되고 P와 같은 곳에 파견되어 근무하게 되었을 때, 술 한잔하며 P가 말했다.
UDT 교육을 받던 중 정비 시간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때 너무 힘들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고 했다.
이게 뭐 하는 거지? 왜 이 힘든 걸 하고 있지? 퇴교할까?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데,
앞에 그토록 무시하던 내가 다른 동기들과 웃으며[P의 말을 그대로 빌리자면 ‘빠개며’] 지나가는 걸 보면서 그때 생각했다고 한다.
‘아니… 나도 이렇게 힘든데… 저 새끼 생각보다 강한 놈일지도 모르겠는데?’
그렇게 나는 살아남기 위해 최선을 다했고,
그러다 그게 강한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사실 나는 [군대에서 전역하기 전까지] 강하다는 것이 체력과 정신력에 대한 것이라고만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동안 악착같이 강함을 추구해 온 끝에 알게 된 것은,
내가 몸과 더불어 마음까지도, 더 나아가서는 업무능력이나 개인적 역량에 대한 부분에서조차, 더 나은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는 것.
부대를 전역한 뒤에도 ‘강함’에 대한 목마름은 복싱이나 주짓수 시합을 나가는 형태로 표출되었다. 다음날 더 나은 기술을 가지기 위해 매일을 훈련했고, 더 나은 기술이나 시합에서의 승리 같은 것들을 얻어 갔다. 하지만 그 끝에 기다리던 것은 더 나은 기술만이 아니었다. 매일 더 나은 기술을 얻기 위해 행했던 훈련이, 나를 매일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고 있었다.
대학생 때 삶에서 스피치 능력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을 한 뒤, 교양과목 스피치 교수님께 집요하게 매달렸다. 교수님 수업을 따라다니고 교수님이 집필한 책을 따로 사서 공부하고 교수님이 알려주신 방법대로 작은 스피치 경험들을 쌓아갔다. 그 결과 학과 창립 이래 최초로 대한전기학회 대상[1등:장관상] 수상 및 특허출원이라는 쾌거를 달성했고, 그렇게 스피치 능력은 내 것이 되었다.
기관사가 되기로 마음먹고 기관사가 되기까지 2년이 넘는 시간과 크고 작은 15번의 시험을 거쳤다. 중간에 포기하고 싶은 순간도 있었지만 포기하지 않았기에 3개의 철도운영기관에 합격할 수 있었다.
전부 포기하지 않고 집요하게 매달렸기에, 그랬기에 살아남은 거였다. 그게 내가 알게 된 ‘강함’ 이었다.
어떤 선생님이 그런 말을 했다고 한다.
어떤 일을 하던, 그중 90%는 여러분들 경쟁자가 아니라고.
그 90%는 끝까지 가지 못하고 포기한다고.
어떤 집단에 가던 똑같다고.
뒤집어서 얘기하면, 끝까지만 한다면 무조건 상위 10%에 드는 거라고.
그러니 뭘 선택하든, 일단 하나 선택했으면 끝까지 하라고.
개인적으로 깊은 울림이 있는 말이었다.
‘강함’을 추구했기에 얻게 된 것들을 되짚어봤다.
해군 UDT/SEAL 대원, 지하철 기관사, 복싱, 주짓수, 스피치 능력 그리고 작가까지.
나 스스로도 내가 만족스러우며, 어떠한 자격지심이나 부정적인 것들에도 맞서서 없애버리고 극복해버린 지금의 내 삶.
해서 나는 오늘도 강하다는 것을 추구하고 좇는 중이다.
그리고 여전히 되뇌인다.
“강한 놈이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는 놈이 강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