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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도훈 Oct 18. 2023

아주 특별한 ‘교행’

‘교행’이란 열차가 마주 보면서 옆 선로로 스쳐 지나가는 것을 말한다.

기관사로서 일을 하다 보면 당연하게도 하루에 수십 번은 반대편 열차와 교행을 하게 된다.

그럼에도 그것은 우리에게 아주 특별한 일인데,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기관사로서 운전실에 앉아 열차 운행이라는 업무를 하게 되면 운전실 유리 너머로 수많은 사람들을 보게 된다.

내 열차에 타고 있는 승객들, 내 열차에 타기 위해 승강장에서 기다리고 있는 승객들, 내 열차에 타고 내리는 승객들, 반대편 열차에 타고 있는 승객들, 반대편 열차에 타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승객들, 반대편 열차에 타고 내리는 승객들 등.

한 명의 기관사가 하루에 만나는 승객은 족히 수천 명은 될 것이다.


그렇게 수많은 승객들 틈에 놓여있지만, 이 ‘기관사’라는 존재는 어딘가 외롭다.

[외로운 동시에 독립된 느낌이기도 했으며, 어딘가 묘한 만족감이 들기도 한다.]

내 유리창 밖을 스쳐 가는 수많은 승객들을 바라보며, 그들이 바삐 움직인다기보다는 내가 상대적으로 더욱 멈춰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끊이지 않는 승객들과 그들이 존재하는 지하철 역사와 승강장, 열차 객실 따위는 한데 어우러졌지만 내가 속한 이 열차 운전실이라는 공간만이 혼자 다른 궤도를 가져서 홀로 아득한 공전운동을 하는듯했다.

아득하고 아득해져서 나 하나만 주변에 섞이지 못하고 홀로 우주 속을 떠다니는 듯한 느낌.


이 묘한 느낌의 원인을 찾아내기 위해 6년 동안 지하에서 고민해온 내가 알아낸 사실은, 그것은 인지의 부재에서 비롯된다는 것이었다.

지하철을 이용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기관사의 존재를 인지하지 못한다.

그것은 아마 보이지 않아서 그럴 것이다. 지하철의 운전실과 객실은 분리되어 있기 때문에 승객들은 기관사를 볼 일이 없고, 그런 승객들의 입장에서 보자면 지하철은 정해진 역에서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운송 서비스를 제공하는 자동으로 움직이는 크고 칙칙한 쇳덩어리일 뿐이었다.

[만약 당신이 버스를 이용하는 중에 문이 열리지 않으면 버스 기사님에게 문을 열어달라고 말하겠지만, 지하철을 이용하는 중에 문이 열리지 않는다면 아마 당신은 기관사의 존재조차 떠올리지 못할 것이다.]

내가 운행하는 지하철을 이용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내 존재를 인지하지조차 못한다는 사실에서 나는 어떤 객체성을 부여받는데, 그 객체성이 홀로 우주를 떠다니는 듯한 묘한 느낌을 만드는 것이었다.


그 외로운 듯 외롭지 않은 묘한 느낌.

그렇게 홀로 섞이지 못하고 아득히 떠다니던 중에 나와 똑같은 존재를 만난다는 사실.

이러한 이유로 이 ‘교행’이라는 것이 우리 기관사들에게 특별한 일이 되는 것이었다.

해서 업계에 있는 우리들은 거수경례[오른손을 들어 하는 경례]로써 반가움이나 안전운행에 대한 기원 등을 서로에게 전했다.


이 각별한 교행을 하며 반가운 얼굴을 확인하고 즐겁게 경례를 하기도 했고,

[기관사 역시 마찬가지의 인간이다 보니] 좋아하지 않는 얼굴을 확인하고 사무적인 경례를 하기도 했다.

반대편 열차가 보이지 않는 터널을 지나고 있었기에 교행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고, 반대편 열차는 보였지만 사이의 기둥에 절묘하게 가려져서 반대편 기관사만 절묘하게 보이지 않을 때도 있었다.

빠른 속도로 스쳐 지나 형체만 보일 때도 있었고, 마침 느린 속도로 만나서 반대편 기관사의 표정까지 알 수 있는 느린 교행도 있었다.

또 어떤 때는 일에 집중하느라 반대편 열차가 다가오는 것을 모르고 있다가 휙 하고 반대편 열차가 지나가버린 뒤에 허공에 대고 뒤늦게 경례를 하기도 했다.


생각해 보면 삶에서 어떤 일들도 교행처럼 찾아왔다.

좋은 일도 나쁜 일도 찾아왔고,

내가 모르는 사이에 어떤 일들이 벌어지기도 했고,

분명 어떤 일을 겪었음에도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정확히 알 수 없을 때도 있었다.

당연하게 다가오기도, 갑작스레 스쳐 지나가기도 했고,

또 아차 하는 사이에 지나가버린 일들도 많았다.


그중에는 후회되는 일들도 많았지만, 뭐 어쩌겠는가?

이제는 말 그대로 지나간 열차일 뿐인데.

다음에 좀 더 멋들어진 거수경례를 해볼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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