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도훈 Oct 11. 2023

분홍색 옷을 입은 아이

열차가 2호선의 마지막 종착역인 ‘장산역’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정확히는 종착역인 장산역과 3정거장 떨어진 ‘동백역’으로 향하는 중이었다.

‘동백-해운대-중동-장산’의 순서인데, 내가 전역을 출발해서 ‘동백역’으로 향하고 있을 때 관제에서 개인 무전이 왔다.

“xxxx열차, xxxx열차.”

“네, xxxx열차입니다.”

“미아 찾기 위해 다음 역인 해운대역에 역무원 출장합니다. 전호[철도신호의 종류, 손전등이나 깃발로 관계자 상호 간에 의사를 전하는 것. 이 경우 미아를 찾기 위해 출장했던 역무원이 확인을 마치고 출발해도 좋다는 전호를 보내준다.] 잘 확인하고 출발하세요.”

“네, 해운대역 미아 관련 역무원 출장 알겠습니다.”


해운대역은 이번에 정차하는 동백역 다음이었다.

물론 이번에 정차하는 동백역에서 모든 조치가 이루어지면 좋았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모든 조치들을 열차의 시간적 지연 없이 해내야 하기 때문에, 역무원이 승강장으로 내려오는 시간 지연 없이 가장 빠르게 조치가 가능한 해운대역에서 조치를 취하기로 한 것이었다.

그러한 이유로 관제사, 기관사, 역무원이 해운대역에서 아이를 찾아보기 위해 협의하여 움직이고 있었는데, 만약 아이가 이번에 정차하는 동백역에 내려버리면 상황이 꼬여버리는 것이었다.

혹시 겁에 질린 아이가 보호자를 찾아 이번 동백역에 내려버리면 그걸 캐치해서 관제에 보고하여 상황을 컨트롤할 수 있는, 바로 지금이 그런 기관사적 역량이 필요한 순간이었다.

아이가 내리는지 확인하기 위해 CCTV 모니터와 후사경[승강장을 비추는 기관사용 거울]을 뚫어져라 살폈다.

다행히 미아로 추정되는 아이가 내리는 장면은 보이지 않았다.

혹시라도 아이가 내릴까봐 얼른 출입문을 닫았다.

미아를 태웠을지 모를 내 열차가 그렇게 동백역을 출발했다.


열차가 드디어 해운대역으로 들어가는데 앞에서 두 번째 칸쪽 승강장에 경광봉을 든 역무원이 대기하고 있는 게 보였다.

꼭 찾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예전에 동생이 없어져서 가족들과 동생을 찾을 때, 동생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세상이 무너질지도 모르며 무사히 돌아와만 준다면 앞으로는 절대 동생과 싸우지도 않고 모든 걸 동생에게 양보하겠다고 그다지 믿지도 않았던 신에게 온갖 거짓 공약을 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소중한 누군가가 사라졌을 때의 마음은 나도 아는 것이었다.


열차가 정차했다.

열차가 지연되지 않도록 빠르게 맡은 바를 다해야 하는 역무원이 빠르게 두 번째 칸을 확인하고 내렸고, 경광봉을 크게 돌리며 내게 출발해도 좋다는 전호를 주었다.

안타까웠다.

미아를 찾지 못한 해운대역을 뒤로하고, 나는 열차를 출발시켰다.

열차 바퀴 쪽에서 나는 끼이익 소리가 유달리 신경 쓰였다.

아이가 내 열차에 타고 있었다면 방금 역무원이 아이를 찾았을 테고, 아이에게 무서운 이 상황이 끝날 수 있었고, 동생이 없어졌을 때의 나처럼 세상이 무너질 위기에 놓인 누군가의 위기가 끝날 수도 있었을 테니까.


방금 미아 찾기 작전의 실패로 혹시 진짜 아이를 잃어버리게 될지도 모르는 상황이 되었다.

가능하다면 내가 그걸 막고 싶다는 생각이 스쳤고, 무심코 내 운전실이 위치한 6호차[6호차:첫 번째 칸, 아까 역무원이 확인했던 건 5호차:두 번째 칸] 객실을 살폈다.

헌데 핑크색 옷을 입은 여자아이가 덩그러니 앉아있었다.

혹시 저 아이가 아닐까 하고 생각하던 찰나, 관제에서 전체 무전이 왔다.

“관제에서 알립니다. 미아를 찾고 있습니다. 여자아이이고…”

이어지는 말이 제발 저 꼬마에 대한 설명이길 마음속으로 간절히 바라며 관제의 무전 내용에 집중했다.

“분홍색 상의…”

라는 말이 나오자마자 무전기를 들고 관제의 말을 막아섰다.

“관제, 관제!! 해운대 출발한 xxxx열차입니다!!”

“어디요? 몇 열차라고요?

“해운대 출발한 xxxx열차입니다! 미아 여기 있습니다. 아까 역무원이 5호차 확인하고 갔는데, 애기가 6호차에 있습니다.”

“아 그래요? 그러면…”

관제에서 망설이는 게 느껴졌다.

미아에 대한 매뉴얼이야 존재했지만 지금 상황에 적용할 만한 세부적인 내용은 애매한 부분이 있었다.

관제에서도 미아를 보호자에게 보내주기 위한 최선의 선택을 하기 위해 고민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때 열차는 다음 역인 중동역에 정차하기 직전이었고, 아이가 내려버리면 큰일이었다.

물론 기관사인 나는 관련 법규에 의거 관제의 지시에 따라야 하지만, 지금은 어떤 융통성이 필요한 순간이 아닐까 하는 짧은 고민에 빠졌다.

찰나의 순간, 현장 책임자는 바로 나이며, 지금 이 상황에 대해 제일 잘 알고 있는 것도 나였고, 이건 내가 해결할 수 있으며, 내가 해결해야 하는 상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관제, 애기 종점인 장산역으로 데리고 갈 테니까, 장산역에 역무원 대기시켜 주세요.”

어떤 확신이 있었던 나는 단호한 말투로 관제에 통보했다.

그러자 관제에서 응답했다.

“알겠습니다. 장산역에 역무원 대기시키겠습니다.”


우선 열차를 종점 한 정거장 전인 중동역에 안전하게 정차시켰고, 아이가 내리지 않게 하기 위해 객실문을 열고 아이에게 빠르게 다가갔다.

다가갈수록 아이가 눈물범벅에 패닉에 빠져있는 게 보였고, 걱정이 되었던 어르신들이 내리려다 말고 아이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당연히 도와주시기 위해 그런 것이었겠지만, 내 입장에서는 그걸 막아야만 했다.

혹시나 아이가 걱정된 어르신들이 아이를 데리고 나간다면 상황을 정리하기 위한 우리[나, 관제, 역무]의 계획이 틀어지게 되고, 마무리되기 직전이었던 상황이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되는 것이었다.

물론 어르신들이 데리고 내려도 보호자를 찾아줄 수 있었겠지만, 아이를 보호자에게 보내주기 직전에 있으며 확실하게 이 상황을 마무리하기 직전에 있는 내가 이 상황을 끝내는 것이 맞는 일이었다.

빠르게 뛰어 아이 앞에 쪼그려 앉아 아이에게 말을 걸었다.

“부모님 잃어버렸지? 아저씨가 부모님 찾아줄게 걱정하지 마.”

근무복에 명찰을 착용하고 확실한 태도로 말하는 나를 보고 어르신들도 안심하고 차에서 내리셨다.

패닉에 빠진 아이가 서럽게 울며 말했다.

“할머니랑 동래역에…훌쩍… 가기로 해…훌쩍…했는데…”

“그래 이쪽으로 와서 앉자. 여기 앞쪽에 아저씨랑 가까운데 앉아있자. 아저씨랑 한 정거장 더 가서 거기서 할머니 찾아줄게 알았지?”

“네…훌쩍…훌쩍…”

아이를 나와 가장 가까운 제일 앞쪽 의자에 앉히고 열차를 출발시켰다.

“관제 관제 xxxx열차입니다.”

“네 xxxx열차 말씀하세요.”

“애기 데리고 가고 있는데, 장산역에 역무원 나와 있습니까?”

“네 역무원들 지금 나오고 있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열차가 마지막 종착역인 장산역에 닿아갔고 아이가 잘 앉아있는지 확인하는데, 아이가 일어서서 내리려는 것이었다.

역무원이 나오고 있었는데, 역무원이 도착하기 전에 내려버리면 큰일이었다.

마음은 급했지만 그래서 더 확실하고 안전하게 열차를 정위치에 정차시키고 객실문을 열고 뛰쳐나가서 승강장으로 울며 나가는 아이를 멈춰세웠다.

“아저씨랑 여기 잠시만 있자. 할머니 찾으러 가자 알았지?”

“할머니랑…훌쩍… 동래…훌쩍…역에…”

많이 놀란 아이가 같은 말을 반복했다.

“그래 걱정하지 마. 잠시만 기다리자.”

하는 말이 끝나기 무섭게 역무원 두 분이 급하게 내려오셨다.

역무원분들은 급하게 내려오셔서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아이에게 말을 걸었는데, 아이는 많이 놀란 상태여서 서럽게 울며 같은 말을 반복했다.

해서 현재 상황을 제일 잘 알고 있는 내가 역무원분들에게 상황을 알려줬다.

“관제에서도 다 찾고 있는 미아에요, 다 보고되어 있을 겁니다.”

“아 네 감사합니다 기관사님, 잘 찾아주겠습니다.”


아이를 인계하고 종점인 장산역에서의 내 일을 마무리하러 가다가 한번 뒤를 돌아보았다.

너무 서럽게 우는 나머지 역무원 두 분의 부축을 받으며 걸어가는 분홍색 옷을 입은 아이를 보며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기관사는 관련 법규에 의거 관제의 지시에 따라야만 한다. 그것은 확실한 규칙으로 명시되어 있고 실제적 효력을 발휘한다. 관제의 말을 듣지 않고 문제를 일으킨 기관사는 해당 법규에 근거해 처벌받는다.

‘관제’라는 말의 의미부터가 그렇다.

관제 : 관리하여 통제함. 특히 국가나 공항, 철도 따위에서 필요에 따라 강제적으로 관리하여 통제하는 일을 이른다.

물론 관제의 지시대로 움직이는 것이 맞지만, 언제나 그저 관제의 지시대로만 하면 될까?

문제가 커졌을 때[특히 관제의 지시에 문제가 있었던 경우] 관제의 지시에 따랐음에도 큰 책임이 따르는 상황들이 존재했다.

관제에서 그렇게 지시했다 하더라도 넌 뭘 했냐는 식이다.


확대해서 보자면 매뉴얼이냐 융통성이냐의 문제가 된다.

우리 기관사의 일뿐만 아니라, 책임이 따르는 일을 하는 모든 곳에 존재하는 문제이다.

소방관으로 근무하는 친구가 해준 이야기, 학교에서 근무하는 선생님의 이야기, 경찰에 근무하는 지인의 이야기, 회사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병원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등등등.

그 모든 곳에 존재하는 문제였다.


물론 어려운 문제가 맞다. 쉽게 답을 내릴 수 없고 항상 많은 사람들이 고민하는 문제이기도 하다.

하지만 오늘 내가 현장 책임자라는 생각을 가지고 사명감을 가졌을 때, 그렇게 어렵지 않은 문제라고 느껴졌다.

한 차원 아래의 문제로 느껴졌달까?

내 선택은 융통성이 없지도 매뉴얼[관제의 지시]을 어기지도 않았다.

[물론 융통성을 발휘했을 때 매뉴얼을 어기게 되는 상황도 존재할 텐데, 나는 그럴 때 내 소방관 친구의 말을 해주고 싶다. ‘어차피 잘못되면 xx 할 텐데. 나에게 사명감과 책임감이 있다면 그걸 믿는 게 맞다.’]


세상에는 정답이 아닌 해답들이 존재한다고 한다.

오늘 내가 할머니를 찾아준 분홍색 옷을 입은 아이와, 그리고 찾게 된 하나의 해답.

다만 나는 이제 같은 상황에서 조금 덜 흔들리는 사람이 된 것이 아닐까?

이전 16화 기관사의 가방, 대체 뭐가 들었을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