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도훈 Oct 18. 2023

에필로그

세상 돌아가는 이치야 거기서 거기지만, 어디서 어떻게 바라보는지에 따라 다르게 보일 수 있었다.

산 정상은 하나이지만 그곳에 오르는 길은 하나가 아닌 것처럼 말이다.

다만 문제가 있다면 그 이치란 것이 쉽게 보여지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내 기관사로서의 시간이 그러했다.

한 치 앞만 보였다.

누군가 세상에 숨겨놓았을지 모를 법칙이라거나, 기관사의 입장에서 볼 수 있는 세상 같은 건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우선 기관사라는 일 자체에서 스트레스를 받았던 것 같다.

어둡고 길며 똑같이 생긴 지하터널, 좁고 삭막한 운전실, 어딘가 텁텁한 지하철 먼지의 냄새.

그렇게 대학병원에서 천식이라는 진단까지 받으며, 내 기관사로서의 일은 스트레스가 되어갔다.

일을 하며 쌓인 스트레스를 휴일에 운동으로 풀어가는 나날을 가지게 되었다.

운동에 집착하던 내 휴일에서 생명을 느꼈다면, 기관사로서 일을 하는 날들은 ‘비’생명의 영역이 되어갔다.

흡사 죽어있는 시간과도 같았다.

야간근무자를 위한 검진을 받을 때, 지금 수면장애가 없다는 내게 언젠가는 꼭 수면장애가 오게 될 거라고 저주하듯 말하던 의사의 말이 가끔 생각이 난다.


그러니까 내게는 그런 이치 따위나 세상 같은 건 보이지 않아야만 했다.


그런데 갑자기 5년 동안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어둡고 삭막한 줄로만 알았던 지하철에서 빛들이 보였다.

빛을 마주한 그 순간부터, 내게 지하철이라는 공간은 더 이상 어두운 곳이 될 수 없었다.


이유가 궁금했다.

왜 5년이나 지난 이제서야 빛이 보이기 시작했는지에 대한 이유.


용의자는 셋이었다.

나, 지하철, 승객들.

지하철과 승객들은 그대로 있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바뀐 건 나밖에 없었다.


사형수가 올가미 앞에서 삶을 돌아보듯, 나를 돌아봤다.

나는 줄 하나에 묶인 채 허공에 매달렸고, 나를 바라보는 수많은 시선이 느껴지지 않을 만큼 아득해졌을 때 비로소 솔직해졌다.


그래 결국 내가 달라진 거였다.

세상이 흘러가는 법칙 따위는 지천에 널려있었는데 내가 몰랐을 뿐이었다.

글을 쓰기 위해서 보고자 했을 때, 그저 늘 있던 빛들이 보인 것뿐이었다.


그러니까 지금까지 내가 쓴 이야기는, 웬 기관사가 찾아낸 세상에 숨어있는 줄로만 알았던 법칙에 대한 이야기였다.

이전 21화 15번의 시험, 그렇게 기관사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