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기관사로서 혼자 정식 근무를 시작하는 ‘첫날’이었다.
이렇게 신규 기관사가 일을 처음 시작하는 날이면, 기관사 본인은 물론 관제에 있는 선배들까지 초긴장 상태에 돌입한다.
고장이 나거나 문제상황이 생겼을 때, 사태가 커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 고장이나 문제상황 따위가 웃긴 게, 특히 신규자나 운 없는 부류에게만 찾아온다.
신규자 시절 나는 당연하게도 운이 없는 데다가 심지어 신규 기관사였기 때문에, 나로서는 그 사실이 웃길 수가 없었다.
혼자서 처음으로 일을 시작하는 날이었기에 나로서도 어떤 각오나 긴장을 가득 안고 열차에 올랐다.
열차를 출고[차량기지에서 쉬고 있는 열차를 점검해서 본선으로 끌고 나가는 것]해서 시발역[열차 운행의 기점이 되는 역, 처음 출발하는 역]인 ‘호포’역에 정차했다.
정위치에 정차해 출입문을 열자마자 모니터에 고장 알림이 떴다.
‘xxx에러’
잠시 당황했지만 나를 교육시켰던 지도 기관사 선배가 농담 삼아 자주 했던 말이 떠올랐고, 묘하게도 그게 나를 침착하게 만들었다.
“터리 너는 고장을 몰고 다닌다.”
통상적이고 흔한 고장이었고, 선배 말대로 내가 자주 겪었던 고장 중 하나였기에 이때까지는 평온할 수 있었다.
“관제 관제 호포에 xxxx열차입니다. xxx에러입니다.”
“네 기관사님, 화명역에서 복귀조치 하겠습니다.”
“화명역 복귀 조치 알겠습니다.”
첫 고장에 대해 내가 생각해도 깔끔한 관제와의 협의.
만족스러웠다.
[나는 나 잘난 맛에 사는 부류인데 이런 순간이 나를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만드는 편이다]
화명역 도착 후, 필요한 조치들을 빠르면서도 확실하게 완료했다. 그런데 웬걸?
‘xx에러’, ‘비상제동체결’, ‘xxxx고장’ 등등 총 7가지 고장에 대한 알람이 터져버린 물줄기처럼 [막을 테면 막아보라는 듯이] 나를, 내 열차를, 이 상황을 덮쳐왔다.
눈앞에 펼쳐지는 평소와 다른 상황들이 나를 점점 벼랑 끝으로 내몰았다.
“관제 관제 화명에 xxxx열차입니다. 복귀조치 안됩니다. 그보다 xx에러, 비상제동체결 등 다른 고장들이 추가됐습니다.”
별거 아닌 가면을 썼던 고장이, 회사 통틀어서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 진도 7.0 이상의 고장이 되어 나를 흔들었다.
움직이지 않는 열차를 움직이게 만들어야만 하고,
내 열차에 탑승한 수백의 불안해하는 승객들부터 지금 이 상황까지 그 모든 것이 오롯이 내게 달려있다는 생각, 아니 사실.
그때 어떤 어지러움 같은 멀미가 시작되었다.
관제에 있던 선배들도 난리가 났다.
“기관사님!! 복귀 안됩니까?!! 무슨 고장이 떴다고요?”
“지금부터 비상운전 들어가겠습니다!”
“덕천역까지 비상으로 가서 다시 복귀조치 하겠습니다!”
하필 퇴근시간이었기 때문에 손님들이 물밀듯 밀려들었고, 거기에 고장으로 인한 시간 지연이 겹쳐지면서 상황은 악화되어갔다.
지연되는 내 열차로 인해 출발하지 못하고 멈춰서 기다리는 열차들이 내 뒤로 줄줄이 쌓여갔다.
모든 것이 내게 달려 있었지만, 금이 간 댐의 물줄기를 손으로 막는 것처럼 어쩌면 이 상황을 걷잡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시에 내가 느끼던 멀미도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었다.
신규자 + 이례적인 강력한 고장 + 퇴근 러시 시간 + 어쩔 수 없이 늘어만 가는 지연시간 + 줄줄이 쌓여가는 뒷 열차들.
사실 정신을 놓는 것이 자연스러운 상황이었다.
하지만 열차운전면허를 따기 위해 숱한 시간 공부하고 연습하고 이미지트레이닝을 해왔던 시간이 있었기 때문에 정신을 놓지 않을 수 있었다.
한참을 비상상황 속에 놓여 비상운전을 하던 중 열차가 기적적으로 정상화되었다.
다행히 정상화된 열차의 상태와 달리 내 상태는 좋지가 못했다.
나는 아직 멀미 중이었다.
우선 걱정이 컸었다.
내가 했던 조치들에서 혹시 어떤 잘못이 있지 않았을까?
민원이 많이 들어오지 않았을까?
내가 했던 조치들에 문제가 있었다면, 막대한 책임이 뒤따르는 기관사라는 일의 특성상 사측이나 정부기관, 언론, 세상에서 책임을 묻기 위해 득달같이 달려들 수 있었다.
배에서 내리면 사라지는 멀미와 달리,
문제상황이 끝났음에도 경위서를 작성 중인 내 멀미는 쉬이 사라지질 못했다.
나중에서야 조사 결과가 나왔다.
기관사의 잘못은 없다고 했다.
스위스처럼 중립국을 표방하던 모든 이들이 이제는 나를 칭찬했다.
신규자가 이런 상황에서 오히려 조치를 잘했다며.
이상하게 그 칭찬들이 그리 고맙지는 않았다.
그렇게 겨우 내 멀미는 끝이 났다.
멀미는 수동적으로 움직일 때 온다.
배에 탔을 때, 타는 행위는 능동적이지만 배가 출항한 이후부터 오롯이 수동성의 영역에 들어간다.
배라는 공간과 파도에 의한 흔들림이 수동성을 강요하며, 어떠한 능동도 허락하지 않으려 한다.
그곳에서 괴리가 온다.
눈으로 보는 시각 자극과 몸이 수동적으로 느끼는 전정감각의 불일치가 발생하게 되고,
멀미는 그곳에서 비롯된다.
마찬가지로 ‘정신적 멀미’도 존재했다.
상황이나 인생, 사랑 따위의 것들이 나를 강제로 배에 태워 수동성의 바다에 표류시켰고,
느껴진 괴리에 나는 멀미를 했었다.
떠오르는 숱한 물음들을 입으로 끊임없이 토해냈다.
하지만 방법은 많았다.
키미테를 붙인다거나 갑판으로 나간다거나 하는.
요는 괴리를 없애거나, 미련하게 멀미를 참거나.
쉽진 않았지만 괴리를 없애기로 선택했던 나는 더 이상 같은 상황 속에서 멀미를 하지 않을 수 있었다.
지하철에서도, 사랑과 삶에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