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아빠 대신 할아버지가 이런 즐거움을 누려도 될까?
로아의 생애 첫 수업이 있던 날, 퇴근한 현아와 수현이는 나의 입만 쳐다본다. 수업 시간 틈틈이 찍어 올린 사진과 동영상으로 수업 활동하는 로아의 모습을 접하긴 했지만, 현아와 수현이는 당연히 로아의 첫 수업이 어떠했는지 나의 입을 통해 듣고 싶어 한다. 로아의 반응과 활동, 표정을 자세히 설명해 주긴 했어도 궁금증은 더해만 가는 듯했다. 로아에겐 생애 첫 수업이었던 만큼, 엄마 아빠로서 어찌 그 궁금증이 영상과 말로만 해소될 수 있을까.
요즈음 영유아 교육 시작 시기가 예전에 비해 참 빨라진 것 같다. 생후 9개월이 안 된 시점부터 로아도 일주일에 한 번씩 문화센터의 영아 수업에 참여한다. 영유아다 보니 보호자가 함께한다. 내가 로아 양육 당번인 금요일에 열리는 수업이어서 로아 수업의 동행과 돌봄도 내가 맡고 있다.
8명의 영유아가 참여하는 수업 첫날, 로아를 제외하고는 모두 엄마들이 동행했다. 이것만으로도 이 할아버지의 로아 수업 동행은 내게도 특별한 느낌을 주었다. 한 아기의 할머니도 엄마와 함께 오시긴 했지만 참여는 못했다. 교실 밖 통로에서 문에 난 작은 창을 통해 까치발로 손주의 모습을 교실 밖에서 연신 지켜봐야만 했다. 한 명의 보호자만 아기와 함께 있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안과 밖, 그 차이가 이렇게 크게 느껴지는 경우도 많지 않겠다는 생각에 미안한 마음과 특별한 마음이 동시에 들었다.
로아만 첫 수업이었던 것은 아니다. 내게도 할아버지로서의 첫 수업이었던 만큼, 현아와 수현이가 나의 감흥이 어땠는지 궁금해한다. 로아를 품에 안고 함께 활동하면서 로아의 모습과 표정, 몸짓을 일일이 신기하게 지켜보고 가슴으로 느껴본 나의 감흥이 어찌 사진과 동영상, 말로 다 전달될 수 있을까. 현아와 수현이가 너무 부러워 금요일 연차 쓰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을 선에서 적당히 나의 감흥 전달을 마무리했다.
로아의 생애 첫 수업의 설렘은 수업 횟수가 거듭되어도 로아에게나 이 할아버지에게 모두 줄어들지 않고 있다. 로아의 설렘은 회차가 더해 갈수록 커지는 것 같다. 그 설렘은 준비하는 과정에서 이미 시작된다. 전날 저녁 현아가 준비해 놓은 외출복을 입는 로아는 밖으로 나가는 준비임을 알고 할아버지가 이끄는 대로 순순히 잘도 입는다. 기저귀를 갈 때의 온몸으로 저항하는 모습과는 이렇게 다를 수 있을까 싶다. 옷을 차려입고 할아버지 품에 안겨 집을 나서는 로아의 표정은 이내 상기된다. 힘이 들어간 눈동자는 연신 사방을 주시한다. 유난히 추운 날씨와 미세먼지로 인해 계속 집안에만 있다가 외출하니 로아인들 즐겁지 않을까. 온전히 둘만의 데이트인양 상기된 로아의 표정을 보며 로아를 품에 안고 나서는 이 할아버지의 설렘은? 세상에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일이 있는데, 이 경우가 그렇다.
차로 이동하는 시간이 10여 분에 남짓하지만, 로아는 차창 너머 보이는 거리 모습에 호기심 가득한 눈을 고정한다. 운전하는 할아버지와 등을 맞대고 뒷좌석 유아 카시트에 앉아 있으니 할아버지 모습도 보이지 않아서였던지 첫날에는 한순간 울기도 했다. 동요를 들려주고 로아에게 말을 걸면서 계속 할아버지 목소리를 들려주니, 이젠 뒷좌석에서 혼자서도 안심하고 거리 모습을 즐긴다.
도착해서도 수업에 들어가기 전, 로아의 세상 구경과 배움이 이어진다. 진열된 수족관 속의 다양한 모양과 색상의 물고기는 물론 앵무새, 잉꼬, 거북이에게서 로아는 눈을 떼지 못한다. 펫샵에서는 작고 귀여운 강아지들과 새끼 고양이들이 로아의 시선을 빨아들인다. 로아의 상기된 표정과 연신 이곳저곳으로 옮겨가는 로아의 시선을 바라보는 이 할아버지도 덩달아 즐겁다.
수업 공간과 활동에서도 로아와 할아버지의 설렘은 이어진다. 생후 9개월을 이제 막 넘긴 로아는 아직은 수업 활동을 온전히 따라 하지는 못한다. 내용을 온전히 이해하는 것도, 40분의 활동 내내 관심과 집중을 유지하는 것도 아니다. 때로는 졸리면 활동보다는 할아버지 품으로 파고든다. 하지만, 40분의 수업 활동 동안 싫증을 보이거나 짜증을 내지는 않는다. 매주 바뀌는 도구를 이용한 활동에는 대체로 호기심과 관심을 두고 집중한다. 집에서는 순순히 엄마 아빠 할아버지에게 손을 내어주고 맡기는 일이 없는 로아지만, 할아버지와 함께 하는 율동과 수업 활동에서는 자신의 고사리 손을 할아버지에게 잘도 맡긴다.
수업 활동을 하는 로아를 지켜보는 이 할아버지에게는 또 다른 설렘이 있다. 활동을 통해 드러나는 로아의 새로운 모습이나 막연히 생각해 왔던 로아의 기질과 성향을 좀 더 구체적이고 객관적으로 목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수업 4주차를 거치면서 그동안 집에서 관찰하고 목격했던 로아의 기질과 성향이 수업 활동과 또래와의 관계에서 실제로 잘 드러나고 있다.
우선은 적극적인 성격이다. 집에서도 무엇을 하든 주저함이나 두려움이 별로 없다. 수업 활동에서도 선생님이나 할아버지, 다른 어른들의 시선에는 아랑곳없이 행동한다. 선생님이 새로운 도구를 앞에 두고 활동을 설명하는 시간이면, 로아는 자기 집처럼 어김없이 엉금엉금 기어서 선생님과 도구로 다가간다. 수업 참여 아기들 중 유독 로아에게만 두드러진 행동이다.
로아의 사회성도 생각보다 적극적이다. 로아는 평소 다른 아기들이나 외부 어른들과 만나는 기회가 적다.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만 보내기 때문이다. 수업 활동에서 선생님이나 다른 아기들을 한 공간에서 보게 되면 어떻게 행동할지 궁금했다. 낯가림이 적지 않은데도, 선생님에게는 잘 다가간다. 아이들에게도 로아가 먼저 관심을 보이고 적극적이다. 항상 옆자리에 앉는 남자아이에게 먼저 다가가 손으로 터치하는 것도 로아다.
교실 한가운데로 모여 활동하는 시간이나 포토존에서 나란히 앉아 함께 사진 찍을 때면 옆에 앉은 아이에게 몸을 숙이고 손으로 터치하는 것도 로아가 먼저다. 도구를 이용한 활동보다 로아에겐 다른 아이들이 더 관심 대상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도구 활동이야 집에서도 매일 하는 일이지만, 다른 아이들을 보는 것은 일주일에 오직 이 시간 뿐이다. 다른 아기들과 만남과 터치는, 집에서만 시간을 보내는 로아에겐, 영유아기 수업 활동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지 않을까 싶다.
로아의 리듬감 역시 평소 관심 사항이었다. 대부분 영유아를 둔 가정에서처럼, 로아도 집에서 동요와 음악을 많이 듣는다. 아니, 로아가 의식적으로 듣는다기보다는 로아 귀에 소리가 들어온다는 표현이 더 적합할 듯하다. 로아가 깨어있는 동안은 자주 거실 스피커에서 ‘배경음악’이 흐른다. 집에서는 동요나 왈츠 음악이 나오면 엉덩이를 실룩샐룩하고 온몸으로 으쓱거린다. 아빠가 바이올린을 연주해 주면 로아는 바이올린 헤드를 붙들고 자기도 해보겠다는 듯 덤벼들곤 한다. 교실 활동에서도 동요나 음악이 나오면 집에서 처럼 로아는 곧바로 몸으로 반응한다.
모든 아이는 각자 자기만의 재능을 갖고 있다고 한다. 영유아의 기질과 성향은 타고나기도 하고 후천적으로 익혀 형성되기도 하며 대개는 양육자의 세심한 관찰에 의해 드러나는 것처럼, 아이의 재능도 타고난 것일 수도있고 후천적으로 습득한 것일 수도 있지만, 중요한 점은 그러한 재능을 영유아기부터 관찰하고 파악하는 일이다. 영유아기의 수업 활동은 그 자체로 의미있지만, 동시에 아기의 기질과 성향, 재능을 좀 더 객관적으로 관찰하고 파악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성격의 발견』에서 저자인 하버드대 심리학교수인 제롬 케이건에 따르면, 아기의 기질은 태아 때부터 관찰이 가능하다고 한다. 아기가 성장하면서 저마다 다른 성격을 보이는 것은 각기 다른 독특한 두뇌신경클러스터를 형성하기 때문으로, 기질과 성격이 대개 유전적 요인에 의해 형성되지만, 부모 (혹은 조부모)의 역할에 따라 얼마든지 바뀔수 있다고 한다. 인간 뇌는 경험에 반응하여 조형적 변화를 유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케이건의 책을 빌리지 않더라도, 우리 어른들은 경험을 통해서 안다. 기질과 성향은 유전적 요인이 크지만, (부모를 포함한) 외부적 요인으로 바뀔 수 있다는 점을 알고 있다. 타고난 기질과 성향은 어떤 것이든 그 자체로 전적으로 좋다거나 전적으로 나쁜 것은 아니며, 장점은 살려주고 단점은 보완해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도 알고 있다. 그래서 첫 돌이 되기도 전의 어린아기를 이런 수업 활동에 열의를 갖고 참여시키는 것이리라.
로아 반의 선생님은 열의도 많으시고 경험이 많으셔서 영유아들을 잘 배려해주시고 잘 이끌어 주신다. 아쉬움이 있다면, 대부분의 아기들이 수업 활동 내내 보호자의 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수업 활동에서 아기들이 엄마 (혹은 할아버지) 품에서 벗어나 좀 더 독립적으로 자유롭게 움직이고 아기들끼리 터치하거나 함께 활동하는 기회가 좀 더 주어진다면, 아기의 기질과 성향이 더 잘 드러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선생님이나 다른 아이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는 경우, 내가 로아를 되도록 수업 활동에서 제어하지 않는 이유다. 수업 활동 중에 로아가 옆자리 아기에게 엉금엉금 다가가도 말리지 않는 이유다. 오히려 로아가 다른 아기들에게 더 자주 가까이 다가가서 터치하도록 유도해주곤 한다.
로아의 문화센터 수업은 로아의 기질과 성향을 파악하고 확인하는 기회를 넘어서 이 할아버지의 육아 자세와 마음가짐을 점검받는 기회이기도 하다.
“로아가 첫 손주세요?”
로아의 첫 수업을 마치고 나오는데 선생님께서 여쭤보신다.
“네, 맞아요. 그런데 어떻게 아셨어요?”
“네, 할아버님이 로아에게 대하는 표정이나 말투에 잘 드러나 있으세요. 참 잘하고 계세요. 좋아 보이고요.”
“아하, 그랬나요? 다행이네요. 감사합니다.”
정말 다행이고 감사하다. 로아를 대하는 나의 말투와 표정에 드러난 마음가짐을 로아 수업을 통해 타인에게 점검받게 되니 말이다. 우연의 일치이겠지만, 3주차와 4주차 수업에 각각 한 아기의 아빠가 엄마를 대신해서 활동에 참여했다. ‘할아버지도 손녀를 데리고 수업 활동에 참여해서 열심히 하시는데, 아빠라고 못할 거 없잖아?’ 혹시 이러한 용기가 이 할아버지로 인해 생긴 것은 아닐까? 요즈음 젊은 세대 아빠들은 가사와 양육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는 점을 알면서도 내 생각이 오만을 부리는 것은 아닐까?
4주차 수업을 마치고 로아를 데리고 교실 밖 대기실로 나선다.
“로아 할아버지, 안녕하세요.”
아빠를 대신 들여보낸 바로 옆자리 아기 엄마가 내게 반갑게 인사한다.
“안녕하세요. 오늘은 아빠가 대신 들어오셨네요?”
“할아버지도 하시는데, 아빠는 당연히 해야죠. 오늘 아빠가 쉬는 날이라 제가 등 떠밀었어요.”
“네, 잘하셨어요.”
생애 첫 수업, 로아에게만이 아니다. 나의 가슴 벅찬 할아버지로서의 생애 첫 수업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