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아와 왈츠를

아기도 음악을 들을 줄 알까?

by 로아 할아버지

오늘 저녁 이유식을 먹은 후, 나의 품에 안겨 프로코피예프의 음악동화 <피터와 늑대>를 듣던 로아가 그대로 잠이 들었다. 이 곡이 자장가처럼 듣기 편안한 음악은 아니지만, 로아의 잠든 모습은 참으로 평화롭고 고요하다. 품에 안긴 로아의 들숨 날숨을 조심스럽게 몸으로 받아내며, 로아의 얼굴에 나의 시선을 얹고 한참을 그대로 앉아있었다.


생후 채 8개월이 되기 전부터 로아에게 <피터와 늑대>를 들려주기 시작했다. 로아를 무릎에 앉히고 CD로 음악을 들려주며 내 목소리로 스토리텔링을 해주었다. 아직은 빠르다고 생각은 했지만, 예상과는 달리 집중을 제법 잘한다. 오늘도 늑대가 오리를 잡아먹고 나무 위의 새와 고양이를 잡아먹을 궁리를 하던 장면까지 듣고 잠이 들었으니 15분 정도 음악과 이야기에 집중했던 것 같다. 한 번은 27분간 한자리에서 이 음악 동화를 통째로 들었던 적도 있다.


“나도 어려서 아빠 품에서 저 음악 듣다가 잠이 들곤 했던 일 기억나.”


부엌에서 저녁 식사를 준비하며 흘끔흘끔 우리를 바라보던 수현이가 잠든 로아 모습을 보고는 웃으면서 말을 건넨다. 어려서 내 품에 안겨 들었던 바로 그 음악을 이번에는 로아가 품에 안겨 듣고 있는 모습을 보고 남다른 감회가 일었던 모양이다. 나도 모르게 내 입가에도 미소가 지어진다. 두 세대에 걸쳐 반복되니 말이다.

로아와 같은 아기들은 얼마만큼이나 음악을 알아들을 수 있을지 평소 궁금해 왔다. 태아 4개월이면 외부소리를 알아듣고 이에 반응하기 시작하며, 특히 음악은 태아에게 심신의 안정을 주고 태아의 모든 발달에 도움이 된다는 점은 상식이 되었다. 그래서 태교 음악이 나왔고, 임산부 배에 대고 태아에게 음악을 들려주는 헤드폰 모양의 일명 ‘태교 기계’라 불리는 제품이 예비 엄마들 사이에 관심을 끌고 있는 이유다.


태아 때부터 음악에 자주 노출될 경우, 유아들이 <피터와 늑대>와 같은 음악동화에 집중력을 갖는데 도움이 되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음악 동화에서 '동화'인 스토리도 아이들의 관심을 끄는 요소다. <피터와 늑대>처럼, 대부분 음악동화는 스토리에 등장하는 사람이나 동물을 특정 악기 소리로 표현하여 이야기를 이끌어 간다. 로아는 아직은 스토리 내용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지만 음악에 맞춰 스토리텔링 해주는 이 할아버지의 목소리에 크게 관심을 보인다.


로아에게 음악을 들려주며 알게 되는 점이 또 있다. 아이들은 경쾌한 춤곡에 더욱 끌린다는 점이다. 차이콥스키의 유명한 발레음악 <호두까기 인형>이나 <잠자는 숲 속의 미녀>, <백조의 호수>를 아이들도 좋아하는 것도 스토리 요소와 더불어 춤곡이 음악의 중심을 이루기 때문으로 보인다. 클래식 음악과 애니메이션의 조합으로 디즈니의 <판타지아>에 실린 곡 중, 로아 아빠와 삼촌이 어려서 테이프가 늘어지도록 가장 많이 보고 들은 것이 <호두까기 인형>에 나오는 ‘꽃의 왈츠’와 ‘사탕요정의 춤’이었다.


<피터와 늑대>에서 로아가 가장 큰 관심을 보이는 부분도 춤 리듬이다. 주인공 소년 피터가 숲가로 나와 쾌활하게 뛰놀며 동물들과 교감하는 장면으로, 피터 역을 맡은 현악 4중주는 피터의 모습과 동작, 표정을 춤의 리듬으로 표현한다. 왈츠 리듬을 많이 닮았다. 이 음악이 나오면 로아의 동공은 커지고 몸의 움직임이 활발해진다. 로아에에게 가장 신명나는 장면이다.



“아버님, 로아가 음악을 들으면서 이유식 먹으면 더 잘 먹는 것 같아요.”


현아가 요한 슈트라우스의 왈츠 음악을 틀어 놓고 이유식을 먹이다가 내게 건넨 말이다. 맞다. 나도 로아에게 이유식을 먹일 때 주로 트는 음반이 모차르트 음악과 왈츠 음악이다. 음악이 흘러나오면 로아는 이유식을 먹으면서도 스피커 쪽으로 자주 고개를 돌려 바라보곤 한다. 로아가 오전에 쾌활하게 놀 때도 주로 음악을 틀어 둔다. 집에서 챙겨 온 음악은 주로 모차르트 음반과 왈츠 음반이다.



흔히 클래식 음악은 태아와 엄마에게, 영유아에게 심신을 안정시키고, 아이들에겐 집중력과 자제력을 키우는데 도움이 된다고 한다. 우리 아이들이 어렸을 적 아이키우는 부모에게 관심을 모았던 <모짜르트 이펙트>라는 책과 부록 CD가 대표적인 예다. 나도 주로 클래식 음악을 어린 시절의 로아 아빠에게 들려 주었고, 지금은 로아에게 들려준다. 이 클래식 음악만이 아이들의 정서적이고 지적인 성장에 도움이 된다는 믿음 때문이 아니다. 내가 다른 장르의 음악에 익숙하지 않은 이유가 오히려 크다. 다만, 태아나 산모, 어린아이에게는 심신을 안정시키고 집중에 도움이 되는 음악이라면 어떤 장르의 음악도 상관없다는 생각이다. 기왕이면 부모 (혹은 조부모)가 좋아하는 음악이라면 더 좋지 않을까 싶다. 본인이 좋아한다면, 아아에게 더욱 자주 들려줄 가능성이 많고 음악을 통해 함께 공감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내가 특별히 왈츠를 어린 아이였던 로아 아빠나 지금의 로아에게 들려주기 시작한 것은 과학적인 근거나 확신이 있어서가 아니다. 단순한 리듬이 지속해서 반복되고 음악이 경쾌해서 아이들이 좋아할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나 조부모라면 비슷한 생각을 하지 않을까 싶다. 그런데 아기를 둔 엄마 아빠들(그리고 조부모들)이 관심을 가질 만한 연구 결과가 최근 발표되었다. 왈츠가 영유아의 두뇌 발달에 미치는 결과다.


미국 워싱턴대학의 <학습&두뇌 과학 연구소>에서는 생후 9달 된 유아들을 대상으로 6주에 걸쳐 음악을 들려주고 음악이 영아에 미치는 뇌파 변화를 조사했다. 음악을 들려준 영아들에게서 그렇지 않은 영아들에 비해 청각기관에 관여하는 뇌파가 훨씬 많이 활성화되었을 뿐만 아니라, 패턴 인지 기능을 담당하는 뇌의 전전두피질이 놀라울 만치 활성화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패턴 인지 기능은 미래에 대한 예측을 가능하게 해주는 능력으로, 자기 성취와 삶에 대단히 중요한 요소다. 이 패턴 인지 기능이 이미 영유아시기에 음악을 통해 길러질 수 있다는 이 연구 성과는 큰 관심을 끌었다. 이 연구에 사용한 음악이 왈츠였다. 3박자가 지속해서 이어지고 박자가 분명하여 아기들도 쉽게 파악할 수 있는 음악이 왈츠였기 때문이다.


아기들이 왈츠 박자에 잘 다가갈 수 있는 또 이유가 제시된다. 왈츠 박자가 태아가 엄마 뱃속에서 듣는 심장 박동과 유사하다는 추정이다. 이 추정에 따르면, 분당 대략 140회 뛰는 태아의 심박수는 분당 70회의 엄마의 심박수와 맞물려 뛰면서, 함께 왈츠의 3/4박자와 유사한 박자와 리듬을 형성한다고 한다. 수현이와 로아의 사례로 보건대 적어도 내겐 이 추정이 설득력이 있다. 자궁 속에서 엄마의 심장이 한번 뛸 때, 태아의 심장은 두 번씩 뛰면서, 엄마의 강한 심박은 정박인 다운비트가 되고 태아의 약한 두 심박은 엇박인 업비트가 되어, 마치 왈츠의 ‘강-약-약’ 3박자의 세계를 태아가 경험할 수 있는 것은 아닐까. 어린아이들이 다른 음악보다 왈츠에 더 관심을 보이는 이유일 수도 있지 않을까? 왈츠를 한 번도 들어보지 않은 아기들도 왈츠에 맞춰 몸을 씰룩거리지 않을까?



지난 연말에 아내와 모차르트의 <마술피리> 연주회를 다녀왔다. 지금까지 집에서 LP와 CD로 여러 번 들었고 과거 연주회에서도 들었지만, 이번 연주회는 각별했다. 음악이, 스토리가 내 마음에 그대로 직진해 들어왔다. 예상했던 것도, 의도했던 것도 아니다. 이번 공연의 연주 자체가 특별해서도 아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음악을 듣는 나의 마음가짐이 달랐기 때문이었다. 로아의 할아버지로서 마음이었다.


<마술피리>는 모차르트가 숨지기 2달 전에 완성한 최후의 오페라다. 말년의 모차르트는 대중에겐 거의 잊힌 존재로서, 전성기 시절의 천재로서 대중으로부터 한 몸에 받았던 사랑과 명성, 존경은 더 이상 남아 있지 않았다. 자신의 죽음을 예견한 모차르트는 세상의 무관심과 가난과 질병 속에서도 음악에의 순수한 열정과 영혼을 마지막으로 불태웠다. 그 열정과 영혼은 베토벤식의 거창한 ‘인류’가 아닌, 한 사람 한 사람을 향한 순수한 사랑과 자유에의 염원이었다. 그래서 이 음악은 단순하면서도 사랑으로 열린 마음을 가진 사람에겐 마음속으로 직진해 들어와 어루만져 준다.


이때의 모차르트는 남을 가르치려 들지도 경고하려 들지도 당혹하게 만들지도 않고, 오직 자신의 인격체를 음악에 온전히 헌신하고 소멸시키고 있다. 모차르트의 음악과 삶을 시어로 승화시킨 헤르만 헤세의 말이다.


이 단순한 우화 같은 <마술피리>가 불멸의 음악으로 남아 지금도 감명을 주는 이유임이 틀림없다. <마술피리>가 고결하고도 겸손한 인격이 요구되는 손녀 양육과 육아란 사명을 감당하는 이 할아버지에게도 각별한 이유다. 우리들 할머니 할아버지가 손주를 위해 ‘소멸’까지는 아니더라도 (그렇게 되어서도 안 된다) ‘헌신’하는 이유는 자신들을 통해 손주들이 더 나은 인격체를 가진 ‘작품’으로 성장하는데 도움이 되기 위함이라면 지나친 비약일까?



오늘도, 왈츠의 3박자에 맞춰, 로아와 함께, 몸과 마음(으로) 스텝을 밟는, 꿈을, 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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