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나 환영받는 로아! 새로 오실 육아도우미 분하고도로아가 건강하고 활기차게 잘 자라길 기도하고 있어.”
“감사합니다, 어머니. 저희도 로아가 지금의 쾌활함을 잘 유지하면서 건강하게 잘 자라길 바랄 뿐이에요.”
앞으로 로아를 돌봐주실 육아 도우미 분이 정해졌다. 아내와 현아가 주고받는 대화 속에 로아에 대한 할머니의 마음과 엄마의 마음이 읽힌다. 우여곡절 끝에 로아와 잘 소통해 주실 것으로 보이는 분으로 정해져서 다소 마음이 편안해진 것은 사실이지만, 앞으로 로아가 새로운 돌봄 아주머니와 어떻게 적응할 수 있을지 걱정이 온전히 해소된 것은 아니다.
그동안 주중의 낮시간을 외할머니와 이 할아버지가 교대로 로아를 돌보아왔다. 로아가 생후 3개월이 되기 조금 전부터 시작해서 이제 만 11개월이 되었으니, 엄마 아빠와 더불어 로아는 지난 8개월을 외할머니와 할아버지와 함께 커왔다. 3월부터 나의 현업 복귀를 앞두고 현아 수현과 함께 앞으로의 로아 돌봄에 대한 긴 고민의 시간이 이어져왔다.
우리의 가장 큰 고민은 어떻게 하면 새로운 육아 시스템에서 로아가 겪을 혼란을 최소화하고 그동안 우리가 관심을 기울여 육아해 온 방향성을 지속시켜 줄 것인가에 있었다. 이 두 가지 고민 속에 월요일과 화요일은 외할머니와 아내, 내가 번갈아가며 로아를 돌보기로 했다. 다행히 나도 2~3주에 한 번씩은 계속 로아 육아에 참여할 수 있도록 스케줄 조정이 가능했다. 나머지 수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육아를 담당할 도우미 분 모시는 일도 그 방향성에 맞춰서 진행해 왔고, 다행히도 우리가 제일 마음에 들어했던 분께서 하시기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앞으로 10일 동안 로아와 할아버지는 서로를 못 보는데, 누가 더 보고 싶을까?”
집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며 내가 현아한테 말을 건네자, 현아는 웃으며 로아에게 되묻는다.
“로아야, 앞으로 10일간 할아버지 못 보는데, 로아 생각에 누가 더 보고 싶을 것 같아? 아마도 로아가 할아버지를 보고 싶어 하는 것보다는, 할아버지가 로아를 더 보고 싶어 하시는 거 아닐까?”
지난 금요일이다. 8개월간 지속해 온 로아 육아 루틴이 끝나는 날이다. 요즈음 로아의 표정과 표현, 몸짓이 부쩍 다양해지고 횟수도 많이 늘었다. 미소와 웃음도 풍성하다. 온갖 표정을 동원한 미소와 웃음을 지어 블랙홀처럼 어른들의 관심을 자신에게 빨아들인다.
로아의 활기찬 표정과 몸짓이 집 밖의 환경에서도 표현되어서 더 반갑다. 같은 지난 금요일, 이날은 12주 동안 매주 금요일에 할아버지가 동행해 온 로아의 문화센터 수업의 마지막 날이었다. 처음 몇 주 동안은 낯선 환경 때문이었는지, 수업 활동에 크게 관심이나 흥미를 보이지 않았지만, 횟수가 반복될수록 활동에의 적응이 눈에 띄게 늘었다. 온몸을 흔드는 율동이나 도구 놀이도 주저함이 없다. 음악만 나오면 몸 율동은 자동으로 시작된다. 처음부터 옆 아기나 선생님한테 기어가서 터치하는 것을 좋아했던 로아는 말리지 않는 이 할아버지의 격려(?)로 이젠 다른 아기 엄마들과 얼굴을 마주치면 집에서 하던 미소를 짓기도 한다.
로아의 해맑고 유쾌한 표정과 미소, 웃음을 보고 있으면 그동안 로아와 함께했던 시간이 더없이 행복하게 다가오고 마음이 뿌듯해진다. 그동안 이 할아버지도 로아의 정서 형성에 도움이 되었다는 느낌 때문이다. 로아도 이 할아버지의 뿌듯한 마음을 알까? 고맙게도 로아가 이 할아버지한테 애착 표현을 참 많이 해준다.
앞으로 로아와 만나는 횟수가 줄어들 것을 생각하며, 할아버지를 대하는 로아의 눈과 표정을 들여다보면, 두 가지 생각이 든다. 하나는 로아가 성장하면서도 어떻게 하면 기본적으로 이 순수한 마음과 표정을 간직하고, 그리고 현아 수현의 소원대로 ‘쾌활함이 잘 유지’될 수 있도록 이 할아버지가 도움이 될 수 있을지의 생각이다. 다른 하나는 성장하면서 로아의 눈동자에 비친 이 할아버지의 일관된 모습은 어떤 모습일지다.
‘감정 유산’이란 것을 생각해 본다. 현대 심리학의 문을 연 지그문트 프로이트가 심리적인 상태가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상속되는 것을 가리켜 ‘감정 유산’으로 규정했다.
얼마 전 감정유산의 많은 사례를 담고 있는 책을 접했다. 올해 출간된 <아이에게 주는 감정 유산>이란 제목의 책이다. 가족 상담치료 전문가인 저자는 감정유산의 관점에서 그동안의 심리상담 사례와 본인이 엄마로서 딸에게 열어준 마음 성장의 힘을 이 책에서 이야기하고 있다. 저자는 자신의 딸이 성장하면서 많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정서적으로 편안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를 기질적 요인과 더불어 감정 유산 덕으로 본다.
“정서적으로 편안할 수 있었던 건 아이가 감정을 스스로 인지하고 처리할 수 있는 힘이 있었기 때문인 것 같아요. 기질적인 영향도 있을 테지만 [부모로서] 아이의 편안한 마음을 우선했던 것도 영향이 있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저자는 본인이 성장하면서 아버지에게서 긍정적인 마음가짐과 태도를 물려받았고, 자신도 엄마로서 딸에게 똑같이 긍정적인 마음으로 대해주었다고 한다. 3대에 걸쳐 이어진 감정 유산이다.
가끔씩 로아가 어떤 아이로 성장했으면 좋을지 현아 수현과 이야기를 나눈다. 우리에게 한 가지 지향점이 있다. 위 책 사례에서처럼, 로아가 마음이 맑고 편안한 아이로 성장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대부분 부모처럼, 현아 수현이도 로아가 성장하면서 맞게 될 도전적인 외부 환경에서도 로아가 그런 마음과 태도를 유지하는 일이 가능할지에 대해 염려한다. 부모 입장에서 감정 유산이 하나의 답이 될수 있을 것이다. 위의 책 저자의 딸 사례처럼, 감정 유산이란 “감정을 스스로 인지하고 처리할 수 있는 힘”을 부모로 붙터 물려 받는 것이기 때문이다.
아이를 키웠던 우리 세대나 로아와 같은 아기를 키우는 현아 수현과 같은 지금의 젊은 세대 모두 부모로서 자식에게 좋은 것을 유산으로 대물림 해주길 원한다. 부모의 본능이다. ‘감정 유산’이란 멋진 용어와 전문적으로 보이는 개념에 문외한이라도 말이다. 좋은 감정, 바람직한 감정을 후대에 물려주는 일은 재산을 물려주는 일보다 훨씬 중요한 일이다. 언제든 탕진할 수 있는 재산과는 달리, 부모로 부터 좋은 감정을 물려받게 되면, 자식은 자신의 삶의 원동력으로 평생을 써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감정을 물려주는 일은 만만한 것이 아니다. 그저 자식을 훈육하 듯, 말로만 전해 줄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감정 유산은 부모의 전 인격을 걸어야 한다. 프로이트가 그랬다. 감정 유산이란 잘 인식하지 못하는 심리적 혹은 정신적 상태가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다음 세대로 대물림된다고. 감정 유산의 특이점이다. 심리학자들에 따르면, 부모나 조부모는 자신의 심리적/정신적 상태 중 좋은 것만 선택해서 후세에 물려 줄 수 없으며 대물림되는 결과도 마음대로 제어할 수도 없다고 한다. 그렇다면, (조)부모에게 남는 선택지는 하나뿐이다. 자식세대에게 대물림해도 부끄럽지 않고 미안하지 않을 마음가짐과 생각, 행동을 매일의 삶에서 실천하는 일이다. 부모나 조부모에게 감정 유산이 무겁게 다가오는 이유다.
“재차 구독 후원을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시골 초등학교 학생들 방과 후 활동에 잘 활용할 수 있도록 열심히 만들겠습니다.”
어제 어린이 환경신문으로부터 인사를 받고 보니, 로아의 환한 얼굴이 더 맑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