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유산
“여러분, 모자를 벗으십시오. 저기 천재가 들어오고 있소.”
슈만이 독일 음악계에 쇼팽을 소개한 자주 회자되는 문구다. 당시 무명에 가까웠던 쇼팽에 대해 이보다 더 격조 있는 찬사는 찾기 힘들 듯하다. 후배인 브람스에 대해 그랬던 것처럼 자신과 동년배인 음악가 쇼팽에 대한 존중이 이보다 더할 수는 없을 듯하게 하다. 자신의 명성과 인기, 안위보다는 타인의 가치를 알아보고 그들을 위해 기꺼이 길을 정지하고 안내하는 역할, 그래서 슈만의 진지한 음악만큼이나 그의 인격이 오늘날에도 존경스럽다.
당시 쇼팽은 여러 어려움에 부닥쳐있었다. 빈으로의 연주 여행 중 고국 폴란드는 러시아로부터의 독립운동 실패로 이후 고국으로 돌아가지 못하게 되어 이국땅으로 떠돌아야 했다. 빈과 파리에서 작곡과 연주 활동도 평단과 청중으로부터의 반응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멘델스존과 슈베르트가 청중의 관심을 끌던 그 시대에 쇼팽의 음악은 낯설고 괴팍하고 이해하기 힘든 것으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여러분, 모자를 벗으십시오.”
슈만의 점잖은 ‘명령’은 자신의 활동 근거지였던 라이프치히와 빈의 보수적인 평단 및 청중을 향했다. 지금과는 달리 당시의 평단은 새로운 형식의 음악에 대해 인색하기 그지없었으며, 중상류층 사교장 역할을 했던 연주회장에서는 연주자에 대한 존중은 크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연주가 자신들의 마음에 들지 않을 경우, 자기들끼리 큰소리로 대화하거나 심지어는 연주자에게 야유를 퍼붓기까지 했다고 한다. 심신이 허약했고 감성적으로 대단히 민감했던 쇼팽이 자신의 음악을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 평론가와 청중 앞에서 연주하는 모습이 어떠했을지 충분히 상상이 간다. 이런 쇼팽을 빈과 독일 전역에 널리 알리는데 작곡가로서만이 아니라 권위 있는 음악평론가로서의 슈만의 역할은 적지 않았다.
“여러분, 모자를 벗으십시오.”
슈만의 이 요청을 종종 내 삶에도 적용해보기도 했다. 젊은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하다 보니 중절모를 쓰는 나이가 되어 라이프치히나 빈의 청중처럼 내 중심에서 나의 가치관과 생각만을 들이대며 젊은 세대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는 않아 왔는지 자기 검열을 위해서다. 당대와 후대 청중에게 쇼팽 음악의 가치를 안내해 주었던 슈만 닮아가기는 차치하고서라도, 적어도 선생으로서 잘못된 사회적 유산을 물려주지 않기 위해서다.
사회적 유산
감정유산이 다분히 한 가족 내에서 정서와 가치관이 세대 간에 이어지는 것이라면, 사회적 유산은 넓은 단위에서 한 세대가 다음 세대에게 바람직한 가치관과 환경을 마련해 주고 물려주는 것을 의미한다. 손녀 로아가 태어나면서 사회적 유산에 대한 나의 관심은 더욱 구체화하였으며, 그 중심에는 지금의 젊은 세대와 로아가 살아갈 환경문제에의 관심이 자리 잡고 있다.
오늘도 로아는 창문에 기대어 연신 밖을 내다보고 있다.
창으로 들어오는 햇볕에는 따뜻한 봄기운이 느껴진다. 따뜻한 햇볕의 유혹이 강하다. 밖에 봄이 오고 있는 것을 로아도 아는가 보다. 로아의 선망의 눈초리에도 데리고 나갈 수 없어 안타깝다. 수도권의 미세먼지 지수는 오늘도 ‘나쁨’이다. 내가 사는 강릉의 미세먼지 상황을 체크해 본다. 오늘도 ‘좋음’이다. 괜한 짓을 한 것 같아 바로 후회가 든다.
수도권의 미세먼지가 지속되던 얼마 전, 현아 수현이와 로아의 봄맞이 야외 활동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로아가 답답한 아파트 실내를 벗어나 야외에서 따뜻한 햇볕을 받으며 우리의 부축으로 아장아장 걷는 모습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마음에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듯했다. 하지만 아지랑이는 이내 걷히고 말았다. 계절적으로 미세먼지와 황사가 봄에 심하다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이다. 인천도 그 한복판에 있어서다.
“아버님, 날씨 좋아지면 매 주말 로아 데리고 강릉으로 갈까 봐요.”
현아의 푸념 섞인 바람이 마음에 걸린다. 실은 미세먼지 지수를 체크할 때마다 나 역시 마음이 많이 걸린다. 우선은 로아를 마음 놓고 밖으로 데리고 나갈 수 없어서이고, 조금 더 생각을 키워보면, 우리 세대가 미래세대에 떠넘긴 환경공해의 빚 때문이기도 하다. 평소 마음 한편에 밀어 두었던 미안한 감정이 로아로 인해 봉인 해제된 느낌이다.
“저는 오늘 브리티시콜럼비아 대학 교수로서 이 자리에 서지 않았습니다. 저는 오늘 데이비드 스즈키 재단 이사장으로서 이 자리에 서지 않았습니다. 저는 오늘 한 할아버지로서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얼마 전 태어난 손녀의 할아버지로서 말입니다.”
작년에 캐나다의 전 브리티시 콜롬비아대학 교수인 데이비드 스즈키의 기조연설을 들을 기회가 있었다. 스즈키는 교수로서만이 아니라 방송인이자 데이비드 스즈키 재단을 세운 환경운동가로서 지명도가 높은 인물이다. 이날 강연은 자신의 전문 영역인 유전학의 입장에서 인간의 환경 훼손 문제를 다루는 흥미로운 내용이어서 개인적으로 큰 기대를 하고 있었다.
평소 같았으면 스즈키의 이 오프닝 멘트는 진지한 주제 내용에 앞서 참가자들과의 어색하고 서먹서먹한 분위기를 깨고 편하게 다가가고자 하는 아이스 브레이킹으로 들렸을 것이다. 경험이 풍부한 기조연설자들이 자주 구사하는 수사학이기 때문이다. 부드러운 표정과 미소가 동반된 인사말이 끝나자마자, 그의 표정은 진지하게 바뀌었다. 이어서 일말의 망설임 없이 위의 멘트가 나왔다. 그의 표정만큼이나 내게도 이 멘트가 더없이 진지하게 다가왔다. 실제로 강연이 끝나고 나서도 강연 내용보다도 이 오프닝 멘트와 그의 표정이 생생하게 남아있었다. 이때가 나도 ‘예비’ 할아버지였기 때문이다. 로아가 엄마 배 안에서 성장하고 있었다.
지구적 유산
작년 1월 강추위 속에 탑골공원에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모였다. 이들 손에 들린 손팻말에는 손주들의 이름이 적혀있었다. “경은아, 할머니가 나설게,” “진서·진하야!! 초록 지구 파란 하늘 할머니가 앞장선다,” “민호·성찬아 이 할아버지가 나설게," “하연아 승규야, 이 할아버지가 지켜줄게.”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기후행동 모임이었다.
‘60+ 기후행동.’ 이 운동 단체 이름에 드러나듯, 60세 이상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모임인 이 단체는 본인들로 초래된 기후위기 때문에 미래세대에 미안하고 미래세대가 걱정되어 결성되었다. 내 나이도 60+, 우리 세대는 열심히 일했지만,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면서 풍요를 마음껏 누린 세대이기도 하다. 하지만, 우리 손녀 손자들이 살아갈 지구환경 문제를 생각하면 미안하고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게 된다.
“우리 노년은 반성합니다. 우리가 누려온 물질적 풍요가 청년들의 미래를 빼앗아온 결과라는 사실을 겸허하게 받아들입니다. 물려받은 것보다 조금이라도 더 좋게 물려주기 위해 우리는 전환의 맨 앞에 나서야 합니다. 노년이 세상을 바꿀 수 있습니다.”
‘60+ 기후행동’의 창립취지문처럼, 우리들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사회적 유산 실천에 관심이 크다. 백발노인들의 녹색운동이란 뜻의 ‘그레이 그린’(Grey Green) 할머니와 할아버지들이 기후위기에 직면하여 세계 곳곳에서 활동하는 것을 보면 ‘지구적 유산’이란 말을 붙여도 될 듯하다.
“우리는 집단적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 배출가스를 마구 뿜는 차를 운전하며 살아왔고, 엄청난 양의 온실가스를 발생시키는 비행기를 타고 여행을 즐겼다. 후손들에게 미안해서 거리로 뛰쳐나왔다.... 우리는 살 만큼 살았고, 전과자가 돼도 상관없다. 잡아갈 테면 잡아가라.”
재작년 가을, 런던에서 있었던 기후변화 대응 집회에 참여했던 다수의 노인이 불법시위 혐의로 체포되는 일이 있었다. 이들은 영국의 그레이 그린 소속 노인들이었다.
한겨울 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들의 손녀 손자 이름이 적힌 손팻말을 든 탑골공원의 할머니 할아버지나 전과자가 돼도 상관없다며 기꺼이 체포되는 것을 마다하지 않은 영국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에게서는 어느 문구처럼 ‘수동적이지 않고, 무기력하지 않으며, 퇴행적이지 않은’ 노년의 열정이 읽힌다. 우리의 손주들은 사회적 유산, 아니 지구적 유산의 원동력인 셈이다.
'할아버지, 모자 벗으셔야지요'
난 오늘도 로아의 매서운 눈초리를 피해 가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