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아가 태어난 지 정확히 365일 되던 날이었다. 영상으로 연결된 로아를 보고 아내와 나는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생중계 영상 속의 로아가 우리 눈앞에서 생후 처음으로 두 발로 걸었던 것이다. 첫 돌을 맞은 그날에 말이다.
퇴근한 현아와 수현이가 돌봄이 분으로부터 그날 로아가 다섯 걸음을 혼자 힘으로 걸었다는 말을 들었다. 우리와 영상으로 연결된 상태에서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기어가고 있는 로아를 일어서게 하려고 아빠가 안아 든다. 로아는 즉시 거부의 몸짓으로 바닥으로 뒹굴면서 아빠 손에서 벗어나더니, 이내 혼자의 힘으로 휘청거리면서도 어렵사리 두 발로 일어선다. 곧이어 한 발 두 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한다. 걸으면서도 엄마 아빠를 둘러보고 영상 속 할머니 할아버지를 번갈아 쳐다보면서 마치 ‘나 잘하죠’라는 표정을 짓는다. 흥분한 엄마 아빠 할머니 할아버지의 감탄사와 환호 속에 10걸음을 옮긴 뒤, 무릎을 접어 그 자리에 주저앉는다.
감동의 장면이 아닐 수 없었다. 로아 첫 돌 행사로 지난 주말을 함께 보내면서도 혼자서는 걷지 못했다. 소파나 펜스를 손으로 붙들고는 발걸음을 잘 움직였지만, 손을 떼고는 발걸음을 떼어 놓지는 못했다. 단지 며칠 사이에 스스로 걷는 모습, 그것도 열 걸음이나 걷는 모습을 보니 참으로 신기하고 마음이 벅차오른다.
영상이 꺼지고 생각해 본다. 이 순간이 왜 특별하게 느껴질까? 로아가 생후 3개월이 되기 전부터 거의 매주 내 눈앞에서, 내 품에서 성장하는 모습을 보아왔다. 그동안 로아의 성장 단계는 내겐 일련의 감흥의 순간들로 기억된다. 눈을 뜨고 초롱초롱한 눈으로 할아버지 얼굴을 똑바로 올려다 보던 순간, 할아버지 얼굴을 올려다보면서 웃음 짓던 순간, 할아버지의 ‘재롱’에 웃음과 옹알이로 반응하던 순간, 바닥에 누워 함께 책을 보면서 할아버지의 목소리에 커진 동공과 허공 발차기로 동참하던 순간, 손발을 허공으로 휘젓는 뒤집힌 거북이 자세에서 혼자서 뒤집기에 성공하던 순간, 어느새 다양해진 옹알이에 자신의 감정을 싣기 시작하던 순간, 할아버지 배 위에 누워 잠투정하다 어느새 새근새근 잠들던 순간, 문화센터 수업을 가기 위해 옷을 차려입고 문을 나서면서 할아버지 품에서 표정이 상기되던 순간....
그런데, 로아가 두 발로 걷던 순간은 왜 더욱 특별하게 여겨질까? 지금까지의 다른 순간보다 이 순간이 왜 로아 성장의 ‘빅스텝’으로 다가올까? 그동안 해왔던 이 할아버지의 격대육아 보탬이 하나 둘 쌓여 로아가 스스로 서고 걷는 결과로 열매 맺는, 에릭슨이 조부모 역할로 규정한, 대물림으로서의 ‘생성성’을 경험하기 때문일까? 알려진 대로 다른 영장류와 인간의 차이가 직립보행에 있다는 사실을 로아에게서 확인하는 체험이어서일까?
심리학자인 에릭 에릭슨은 사람은 나이가 들면서 젊음은 되돌릴 수 없다는 사실을 자각하고, 후속 세대를 가르치거나 돌봄을 통해 미래 세대와 사회에 이바지함으로써 심리적으로 보상을 받고 보람을 느낀다고 한다. 이를 에릭슨은 ‘생성성’으로 규정한다. 이 생성성이 조부모의 손주에 대한 대물림의 의미로 규정되 듯, 그동안 로아 육아에 참여해 온 나 역시 로아의 첫 걸음걸이에서 느꼈던 감흥이 이 '생성성'인 듯 싶다.
로아의 첫 발걸음에서 느낀 중장년 삶의 보람으로서의 생성성의 의미와는 별개로, 로아의 직립보행은 또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인류가 손을 자유롭게 만들어 도구를 사용하기 위해 두 발로 걷게 되었다는 찰스 다윈의 진화론적 주장은 잘 알려져 있지만, 이 주장에 부합하지 않는 연구결과 역시 지속해서 나오고 있는 것을 보면 직립보행을 진화론적 결과로만 볼 필요는 없을 듯하다. 어쨌든, 인간은 직립보행을 함으로써 그렇지 못한 다른 영장류가 누리지 못하는 혜택을 누려오고 있다는 점은 분명한 듯 보인다.
로아가 그 점을 보여준다. 로아가 몸을 소파나 펜스, 의자에 기대고 두 발로 서거나 이동할 수 있게 되면서, 기어 다닐 때와 비교하여 로아에게서 발견되는 확연히 달라진 점은 손의 활용범위 확장 및 새로운 사물에의 관심과 목소리 성량변화, 옹알이 (언어) 다양화다.
로아는 두 발로 일어서면서 그동안 앉아있을 때는 시야에 들어오지 않았던 사물에 대해 강한 호기심을 보이면서 두 손으로 붙들고 손과 눈, 입으로 파악하느라 바쁘다. 두 발로 서게 되면서 그동안 열심히 가지고 놀던 바닥에 놓여있는 장난감에는 별 관심을 보이지 않고, 기회만 있으면 까치발을 짚고 식탁 위나 책상 위에 놓인 것들에 눈독을 들인다. 내 방에 들어오면 컴퓨터자판기와 마우스가 로아 호기심의 최고 먹잇감이 된다. 책상 옆에 놓인 낮은 탁자를 발판으로 삼아 의자로 올라서서는 눈을 번득이며 자판기를 피아노 건반인양 여기저기 두드려대다 옆에 놓인 무선마우스를 집어 들고는 뒤집어가며 여기저기 살펴보고 버튼을 눌러대느라 분주하다. 거의 매일 반복하면서도 쉽게 싫증 내지도 않는다.
언어 표현으로 로아가 옹알이를 활발하게 하고 다양하게 구사하는 것은 로아의 직립보행의 혜택이다. 진화적 관점에서 인간의 언어사용 발달은 직립보행의 결과로 설명된다. 네다리로 움직이는 동물은 호흡과 동조하여 걷게 되지만, 두 다리로 걷는 인간은 폐가 자유로워져 호흡조절도 정교하게 됨으로써 말하기가 쉽다고 한다. 로아가 메조소프라노에서 소프라노로 성량이 탁 트인 시점이나 옹알이 빈도와 다양화가 급격하게 진행된 시점도 네발로 기다가 두 발로 서기 시작하면서였다는 점이 우연만은 아닌 것으로 생각되는 이유다. 현아 수현이가 올린 최근의 한 영상에서 로아는 그동안 우리가 들어보지 못했던 탁 트인 목소리로 메조소프라노에서 소프라노로 음역대를 자유자재로 옮겨 다닌다. 아리아를 부르듯 리듬을 타며 즐겁게 때로는 장난스럽게 표정까지 지어가며 계속 소리를 내고, 아니 지르고 있다. 로아의 목소리에는 다양한 옹알이도 동반되었다. 영상을 찍는 현아 수현이도 신기했던 모양이다. 엄마 아빠가 내뱉는 감탄사가 추임새 역할을 했던지 로아의 아리아는 영상으로도 1분을 넘기고 있다. 영상을 자세히 보니 로아는 낮은 의자를 붙들고 서있었다.
두 발로 걷게 됨으로써 이제 로아는 첫 돌을 지나며 성장의 다음 단계에 들어선 것으로 보인다. 두 발로 일어서서 자유로운 손으로 온갖 호기심을 동원하여 사물을 살피는 로아는 큰 뇌를 가진 ‘슬기로운 인간,’ 호모 사피엔스에 들어섰다. 온갖 표정을 동반하여 ‘아리아’를 맘껏 부르며 자신의 목소리 표현에 스스로 대견한 듯 웃어대는 로아는 이제 ‘언어를 사용하는 인간,’ 호모 로쿠엔스가 되었다.
이제는, 호모 엠파티쿠스다.
최근에 ‘드라마와 진화’에 관한 강연을 들었다. 이번 글을 생각하고 있던 차에 강연 제목이 우연치고는 필연적인 우연으로 생각되었다. 외국저명학자 강연시리즈를 주관하는 지인의 초대라 거절하기도 어려웠고, 이 강연자의 인문생태학 저서를 인상 깊게 읽었던 기억이 있어서, 점심도 굶어가며 실시간 줌강연을 관심 있게 들었다. 강연 내용에 따르면, 그동안 인류의 진화는 자연에의 적응과 극복 과정에서 발전적으로 이뤄져 왔으며, 현재의 글로벌 기후변화라는 이전에 볼 수 없었던 엄중한 환경위기 상황에서 인간에게 새로운 형태의 진화가 요청되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타인과 자연 생명체에 대한 배려와 공감 능력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 공감 능력이라는 것은 전통적으로 연극과 같은 드라마의 핵심요소로 과거부터 사람들은 드라마를 통해 공감 능력을 길러왔지만, 디지털과 사이버 세상 속에 외롭게 사는 현대인들은 공감능력을 상실해 왔다고 본다.
우리가 영화나 드라마 속 어려움을 당하는 등장인물을 보고 자신의 경험과 연결 지어 슬퍼하거나 눈물 흘리는 것을 떠올리면 드라마와 공감 간의 관계는 바로 이해가 된다. 신경과학자들은 공감 능력을 우리 뇌의 거울 뉴런(거울 신경세포) 덕분으로 설명하며, 우리 뇌는 다른 사람이 하는 행동을 보기만 해도 자신이 직접 할 때처럼 신경세포가 작동한다고 한다.
AI와 쳇GPT 시대, 세계는 그야말로 예측 불가능한 방향으로 급격하게 흐르고 있으며, 현대인은 그 안에서 길을 잃고 우왕좌왕하고 있다. 나의 미래를 어떻게 대비해야 할지, 다음 세대의 미래를 어떻게 안내해야 할지 갈피 잡기가 힘들다. 이 와중에 미래학자들은 공통적으로 인간만이 가지는 공감 능력을 무엇보다 강조한다. 제러미 리프킨은 인간이 만물의 영장인 이유는 뛰어난 공감 능력을 가진 ‘공감하는 인간’인 호모 엠파티쿠스이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며, 공감이야말로 인류의 역사를 주도하는 가장 강력한 에너지로 미래는 분명히 ‘공감의 시대’가 될 것으로 내다본다.
“드라마와 진화”의 강연자나 리프킨의 호모 엠파티쿠스 개념은 세부적으로 결은 다르지만, 두 주장 모두 공감 능력은 앞으로의 인류의 생존과 공존을 위해서 그리고 미래의 인재가 갖춰야 할 핵심요소로 강조하고 있다. 신경과학자들은 인간의 공감 능력은 대개는 타고난다고 하지만, 그 능력 차이는 인간이 자라 온 환경의 영향 역시 무시할 수 없다. 기본적으로 인간성이란 유전과 환경이란 두 요소에 합이기 때문이다. 자녀 양육에 부모가, 조부모가 관심을 가져야 할 이유다.
첫 돌을 맞으며 로아에게 본격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한 슬기로운 인간 호모 사피엔스와 언어를 구사하는 인간 호모 로쿠엔스로서의 능력, 지난 9개월여를 매주 로아와 함께하며 손녀의 성장을 지켜보면서 이 할아버지는 너무나 벅찼고 행복했다. 로아와 함께 지내온 소소한 일상과 성장을 글과 사진으로 담아오는 일 역시도 보람되고 행복한 일이었다. 다만, 이런 글쓰기에 익숙치 않은 나로서는 브런치에 올리는 일이 여전히 어색하고 겸연쩍기기도 하지만, 이 역시 새로운 경험으로 글과 마음 나눔의 감흥도 어렴풋이 알아간다. 부족한 글을 스스로 마음으로 채워가며 읽어주신 분들에게 감사할 따름이다. 옆에서 응원해 주고 격려해 주신 로아외할머니와 할아버지, 아내, 현아, 수현에게 고맙다.
호모 엠파티쿠스, 로아에게 찾아온 성장의 변곡점에서 손녀를 향한 이 할아버지의 새로운 미션 방향타다. 기회가 된다면 함께 나누는 기쁨을 이어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