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어떻게 살 것인가?

by 로아 할아버지

“생존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캐나다의 소설가 에밀리 세인트 존 맨델의 소설 『스테이션 일레븐』의 핵심 화두다. 글로벌 팬데믹으로 거의 모든 인류가 사라진 절망적인 포스트팬데믹 세상, 운 좋게 살아남은 사람들 일부가 악단을 조직한다. 이들은 폐허가 된 마을을 돌아다니며 셰익스피어의 희극을 무대에 올리거나 클래식 공연을 한다. 전염병은 여전히 기승을 부리고 있고 마을의 생존자들은 자신들을 지키기 위해 외부인에게 폭력과 살인을 마다하지 않는 묵시론적 환경이다. 자신들의 생존마저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에서 유랑악단 단원들은 순회공연과 연주를 지속한다.


실제로 단원 중 일부가 폭력적인 집단에 의해 실종되거나 목숨을 잃기도 한다. 그런데도, 이들이 순회공연을 지속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아니 절망적인 상황이기 때문에 그들은 살아남기에만 목숨을 거는, 인간으로서 ‘생존만으로는 충분치 않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내일 지구가 멸망한다고 해도 사과나무 한 그루를 심겠다는 스피노자의 생각과 맥이 닿아 있다.


“관객들이 일어서서 박수갈채를 보냈다. 커스틴은 공연이 끝날 때마다 늘 그렇듯 붕 뜬 것 같은 기분으로 서 있었다. 아주 높게 날아올랐다가 불완전하게 착륙한 것 같은 느낌, 영혼이 가슴에서 빠져나와 높이 올라가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앞줄에 앉은 남자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한 것이 보였다.”


소설의 한 장면이다.


『스테이션 일레븐』을 처음 읽었던 것이 거의 10여 년 전인 것 같다. 최근에 다시 읽은 이유가 있다. 직접적인 이유로는 코로나19 때문이었지만, 보다 근본적으로는 ‘생존만으로는 충분치 않다’는 이 소설의 화두가 언제부터인지 내 마음에 뜬금없이 떠오르곤 했기 때문이다. 나도 이제 정년을 2년 남겨둔 나이가 되었고, 그동안 손녀 로아 양육에 참여하면서, 노년의 내 삶의 의미에 대해 자주 생각하는 과정에서 떠오른 것은 아닌지 싶다.


‘생존만으로는 충분치 않다’는 화두, 사람들이 나이 들어가면서 삶의 의미를 다잡아 가는 과정에서 갖게 되는 생각일 수도 있고, 아님, 노년의 삶을 살아가는 과정에서 특정 경험을 통해 구체적으로 느끼게 되는 고마운 생각일 수도 있다. 할머니 할아버지의 손주 양육 참여가 바로 그러한 경험이 아닐까 싶다.



‘로아는 내 보물 1호야’


‘으응? 내가 잘못 들었나?’

로아를 데리고 병원에 다녀오는 길, 운전하던 현아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차 안에는 로아와 로아 옆자리에 앉아 동행하신 현아 어머니밖에 없었다.


‘엄마는 저런 표현하실 분이 아닌데, 내가 잘못 들었겠지.’하고 말았다. 현아 어머니도 더는 아무 말씀도 없으셨다.



“로아는 할머니의 보물 1호야!”

이번에는 집에 도착해서 현아는 분명하게 들었다. 눈으로도 목격했다. 현아 어머니가 로아를 바라보면서 흐뭇한 표정으로 분명하게 로아에게 말을 건네시고 계셨다. 이제야 현아도 차 안에서 자신의 귀에 들렸던 말이 엄마가 로아에게 건넨 말이었음을 확인한다.


“엄마도 그런 표현할 줄 알아? 우리한텐 그런 표현한 적이 없잖아?”

“아, 너희 키울 땐, 학교 일로 그리고 사느라고 정신없이 바빠서 그랬지.”

현아의 투정 아닌 투정에 돌아온 대답이었다.



현아로부터 이 이야기를 전해 듣고는 나도 모르게 웃음이 지어졌다. 아내나 나 역시 현아 어머니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두 아이를 키우던 시절, 우리 둘 다 몸과 마음 모두 세상일에 바빠서 마음껏 아이들을 예뻐해 주고 표현해 줄 정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세상일에서도 몸과 마음 모두 여유가 생길 나이에야 비로소 선물로 다가온 손주에 대해 우리네 할머니 할아버지는 ‘보물 1호’로서 마음껏 느끼고 마음껏 표현하게 된다. 실제로 매주 로아 돌봄 교대를 하면서 뵙는 현아 어머니 표정에서도 로아가 보물 1호임이 확인된다.


로아 외할머니께서는 처음부터 로아에게 이 정도로 끌리셨을까? 정말로 당신의 삶에 손녀 로아가 ‘보물 1호’로 자리 잡게 될 거라고 처음부터 예상하셨을까? 아마도 그 정도까진 아니었지 않을까 싶다. 손주는 그 자체로 귀하고 예쁜 존재인 것은 분명하지만, 노후 삶 설계에 무엇보다도 자신의 삶을 우선시하는 것이 지금 조부모가 되기 시작하는 우리 세대의 특징이기 때문이다.


현아 어머니는 로아가 태어났을 때, 마침 평생 몸담았던 교직에서 퇴임한 시점이었다. 딸의 ‘갑작스러운’ 임신 소식을 듣기 전에는 대부분 퇴직자처럼 많은 계획을 세워두셨을 것이다. 내 주변의 퇴직한 지인들의 경우를 보더라도, 퇴직 후 1년 정도는 평소 하고 싶었던 것을 하느라고 퇴직 이전보다 더 분주하다. 현아 어머니께서도 평소 즐겨해 오셨던 그림 그리기나 악기 배우기, 마라톤, 여행 등, 하시고 싶은 일로 버킷리스트를 이미 가득 채워 놓으셨을 참이다.

딸의 손녀 돌봄 요청으로 이 계획들을 기꺼이 뒤로 물리시면서 어찌 아쉬움이 없으셨을까? 물론, 그 아쉬움은 결과적으로 당신의 ‘보물 1호’로 상쇄되었겠지만, 사람들에게는 무엇으로도 대체 불가능한 것이 한두 개는 있기 마련이 아닐까 싶다. 3월부터 내가 현직에 복귀하고 아내도 로아 육아에 참여하면서 이제는 현아 어머니께서도 3주에 한 번씩 일주일에 이틀만 육아에 참여하신다. 그동안 미뤄두었던 계획들로 요즈음은 정말 바쁘게 지내고 계신다. 그런 엄마의 모습을 보면서 현아도 마음이 훨씬 가벼워졌을 것이다.


생각해 본다. 현아 어머니나, 아내와 나 모두 할머니 할아버지로서 로아에게 이렇게 빠져들게 된 이유는 무엇일지. 손녀니까 끌리는 것일까? 그럴만하다. 그런데, 꼭 혈육의 끈만으로 설명이 될까? 그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는 생각이 든다. 지난 8개월 동안 매주 단위로 로아 육아를 해 오셨던 현아 어머니의 ‘로아는 내 보물 1호’이란 결과 선언이 그 점을 말해주는 것 같다. 같은 기간 로아 양육에 직접 참여해 온 나 역시 현아 어머니의 마음이 내게도 그대로 전달된다. 로아 외할머니의 선언은 그동안 당신이 로아와 함께 보냈던 시간과 노고가 맺어준 열매이지 싶다.



열매 맺는 삶, 김형석교수가 말한 ‘사회인’으로서의 노년의 인생론이다. 김형석교수는 태어나서 30세까지의 ‘배움인’으로 시작하여 30~65세까지의 ‘직장인’을 거쳐 이후 마지막 단계를 열매 맺는 ‘사회인’으로 규정한다. 그가 말하는 ‘사회인’이란 노년의 삶이 그저 ‘생존만으로는 충분치 않다’는 깨우침이다. 흔히 노년 삶의 3가지 행복조건으로 드는 일(봉사)과 공부, 취미활동으로 설명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인생의 황금기’를 위한 진정한 열매를 맺고 퍼뜨리는 행동으로서 말이다.


어떻게 살 것인가의 명제를 두고 꽃과 같은 인생이냐 아니면 열매 맺는 인생이냐의 양자택일로만 볼일은 아니다. 열매 맺기 위해서는 당연히 꽃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다만, 화려한 장미가 아닌, 은은한 향기를 새벽이슬에 묻혀 살포시 발치로 내어놓는 소박한 하얀 찔레꽃이 적격이겠다. ‘취미활동’을 통해 삶의 활력을 갖추고, ‘공부’(독서)를 통해 내적 소양을 키워 찔레꽃을 피워낸 뒤, 속이 꽉 들어찬 빨간 찔레열매를 맺어 ‘일’(봉사)를 통해 나의 마음과 인격을 퍼뜨리는 것이다. 그 대상이 일차적으로는 손주나 자식일 것이고, 조금 넓게는 이웃과 사회일 것이다.


첫 돌이 다가오는 요즈음 로아의 표정이 매우 다양하고 활기차다. 그 표정은 구김 없이 투명하고, 익살과 애교를 동반한다. 옹알이도 리듬을 타서는 메조소프라노에서 알토로 내려갔다가 급작스레 소프라노로 급상승하면서 화려함을 자랑한다. 소프라노 음역에서는 모차르트의 “마술피리”에 나오는 밤의 여왕 아리아도 소화할 듯하다. 기분 좋으면 옹알이가 그칠 줄 모른다. 기회 있을 때마다 책을 빼내 바닥에 펼쳐 놓고 한참을 들여다보다 집어 들고는 어른 품에 안겨들기 일쑤다. 이 모든 행동이 이제는 습관이 되었다.


“로아의 지금 모습, 너무 보기 좋고 감사한 마음이에요. 할머니 할아버지 덕이 크죠.”



현아 말에 현아 어머님도, 아내도 나도 우리 삶에 맺힌 작은 열매를 손녀의 존재를 통해 확인한다. 감사와 겸손의 마음이 찔레열매처럼 옹골옹골 여문다.


그렇다. 나이 듦의 삶은 ‘생존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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