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다슈니
호돌이는 제법 이상한 구석이 있는 아이였군요. 저는 직관적으로 몹시 이상한 아이였던 것 같아요. 솔직히 ADHD였던 게 확실합니다.
어릴 때 제 캐릭터를 한 문장으로 요약하자면: 시끄럽고, 눈치 없고, 하고 싶은 건 다 하고, 사고는 덤. 이 정도면 독보적이죠?
친구 집에 놀러 가면 겉옷이든 가방이든 뭔가 하나는 꼭 두고 오는 아이였어요. 신발주머니는 수없이 잃어버렸고, 어느 날은 도시락 가방 하나만 달랑 들고 등교한 적도 있습니다. 책가방도, 신발주머니도 집에 두고, 도시락만 자랑스럽게 챙겨 간 거죠. 고등학생이 되어 휴대폰을 들고 다니기 시작하면서는 잃어버림의 스케일이 한 단계 업그레이드됐습니다. 휴대폰의 등장으로 불행의 새 서막이 열렸달까요. 주위의 모든 이들이 한 번씩 제 휴대폰을 찾아 주었었지요. 호돌이도 그때 제 잃어버린 휴대폰을 찾아준 적이 있지요.
어릴 땐 맞벌이를 하셨던 부모님을 대신해 방과 후엔 이모가 저와 동생을 돌봐주셨어요. 이모네는 작은 슈퍼마켓을 하셨는데, 지금까지도 만날 때마다 꺼내시는 레퍼토리가 있습니다. 어린 저는 100원이 필요하면 같이 놀던 친구들을 줄줄이 데려와서 "이모, 100원 주세요! 저도 주고 얘도 주고 쟤도요!" 하고 당당히 외쳤다고 해요. 반면 여우 같았던(이모 오피셜) 제 동생은 살금살금 다가와 귓속말로 "이모, 저 콜라 먹고 싶어요…" 했다고요. 왜 그랬을까요. 그때의 나, 진짜 노답이었네요. 절레절레.
그럼에도 저는 제 어린 시절을 꽤 밝고 명랑한 아이로 기억하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얼마 전 중고등학교 시절 친구들이 써준 편지를 오랜만에 꺼내 읽었더니, 화 좀 풀어라, 화나게 해서 미안하다는 메시지가 줄줄이 나오는 게 아니겠어요. 아니, 이런 애랑 어떻게 친구를 해준 걸까요. 화도 잘 내고, 물건도 잘 잃어버리고, 시끄러운 데다 눈치도 없었는데 말이에요.
이런 저와 지금까지 친하게 지내준 친구들, 정말 고마워요. 손절 사유가 넘쳤던 나를 끝끝내 손절하지 않고 놀아줘서. 그중에서도 제일 고마운 사람은 역시 호돌이, 당신이에요. 잃어버린 휴대폰도 찾아주고, 수많은 사고도 함께 수습해 주고, 나의 멘탈 지킴이♡
ADHD는 천천히 나아졌는데, 거의 완치 수준으로 끌어올린 건 공연기획사에 입사했을 때인 것 같아요. 눈물 쏙 빠지게 혼나고, 영혼까지 탈탈 털리던 시절. 덕분에 저는 진짜 '쓸 만한 인간'으로 업그레이드된 것 같습니다.
물론 지금도 ADHD의 잔재는 조금 남아 있어요. 가끔 물건을 어디 뒀는지 까먹고, 집중하면 주변이 안 보이고. 그런데 이 정도면 기적적인 개선 아닐까요? (뻔뻔한 편)
어린 시절의 나는 이상하고 부끄러운 구석이 많았지만, 그 모든 기억이 결국 지금의 나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당신과 함께라면 앞으로도 조금씩 더 괜찮아질 수 있을 것 같아요. 성장판이 언제 닫힐지는 모르겠지만 — 닫히기 전까지는 계속 성장하고 싶습니다.
호돌이와 함께.
오늘도 한 뼘 더 자라나는, 성장하는 ADHD 다슈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