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 약국, 이런 서비스도 제공합디다.
1. 귀 뚫기 (Ear Piercing)
삼삼오오 짝을 지어 교복을 입은 여학생들이 약국에 들어온다. 보통의 하교 시간보다 다소 이른 시간이다. 중간고사나 기말고사가 끝나는 날은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이곳의 학교도 하교가 이르다. 시험이 끝난 홀가분한 날, 대낮부터 제법 큰 여학생들끼리 재잘거리며 약국에 들어올 때, 여학생들이 원하는 것은 거의 정해져 있다. 화장품 쇼핑 아니면 “귀 뚫기(ear piercing)”이다. 나는 속으로 여학생들을 향해, ‘화장품을 사려무나. 할인하는 것도 있단다.’라고 주문을 걸어본다. 약국의 입장은 다르겠지만, 내 생각에는 조제실에서 처방전을 처리하는 것이 내 우선순위 업무이자 주요 업무이다. 부차적인 업무라고 여겨지는 이어 피어싱은 가능한 피하고 싶다. 게다가 귀 뚫기는 일반적인 다른 서비스보다 여러 단계의 절차가 필요해서 시간이 걸린다. 그러나 나의 바람과는 달리, 다소 상기된 표정으로 내게 다가오는 여학생은 여지없이 귀를 뚫어주는지 묻는다.
“그럼요.”라고 웃으며 대답을 일단 한다.
그리고는 지푸라기라도 잡을 요량으로 여학생에게 나이를 물어본다. 내가 근무했던 약국에서는 16세 이하일 경우 부모를 동반해야 이어 피어싱을 해주는 내규가 있었기 때문이다. 어떤 여학생은 부모님과 함께 오라는 말에 발걸음을 돌리기도 하지만, 다른 여학생은 엄마에게 허락을 이미 받았다며 자신의 핸드폰으로 엄마랑 통화를 시켜준다. 이쯤 되면, 여학생 손님의 기분에 맞춰 친절한 말씨와 다소 하이톤의 서비스 목소리를 장착하고 “귀 뚫기”를 시작한다.
“자, 여기에서 골라보세요.” 하고 샘플 귀걸이가 전시된 액자 형태의 디스플레이 세트를 여학생에게 내민다.
엄마랑 함께 온 꼬마 소녀들은 대체로 생일에 맞추어서 월별 탄생석이나 꽃 모양의 귀걸이를 고르는 반면, 십 대 소녀들은 심플한 골드볼이나 실버볼 귀걸이를 고른다. 이것들이 가격이 저렴한 편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고민 끝에 귀걸이를 고른 여학생은 긴장한 채 의자에 앉는다. 나는 손 소독제로 손을 소독하고 라텍스 장갑을 낀다. 손님이 고른 귀걸이를 작은 장난감 플라스틱 권총처럼 생긴 장치에 총알을 장전하듯 찰칵 소리가 나게 잘 끼워 넣어 놓는다. 알코올 묻은 솜으로 손님의 귀를 잘 닦고, 검은색 펜으로 손님의 귓불에 점을 찍고 거울을 보여준다. 마음에 드는 위치인지 물어 위치를 조정해주기도 한다. 준비가 끝나면 귀걸이 총을 까만 점에 잘 갖다 댄다. 그리고 귀를 뚫는다.
”쓰리, 투, 원. “ 팡!
면봉에 알코올을 묻혀, 다시 한번, 귀가 뚫린 귓불을 소독해 준다. 그 사이 손님의 여학생 친구들은 난리가 난다. 이건 우리나라나 뉴질랜드나 똑같다.
“우와!! 예쁘다. 예뻐. 안 아파? 괜찮아?”
뉴질랜드의 약국에서 일하기 전에는 몰랐다. 약국에서 귀를 뚫어준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 일을 내가 하게 될 줄은 말이다. 어떻게든 약국에서 쓰임이 많은 직원이 되어 언어가 부족해도 이 직장에서 살아남아 보자는 마음으로 귀 뚫기를 배워서 했다. “이걸요? 제가요? 왜요?”는 꾹꾹 눌러 담았다.
2. 여권 사진 찍기
“여권 사진 찍어주나요? ”
“네. 그럼요. ”
뉴질랜드 여권 사진을 원하는 것인지 다른 사진을 원하는 것인지 확인을 한 후, 손님에게 거울을 내어준다. 손님이 거울을 보는 사이, 나는 소형 디지털카메라를 꺼내고 컴퓨터에서 여권 사진 프로그램을 열고 블라인드 내리듯 카운터 옆의 좁은 공간에 흰 배경을 준비한다. 손님을 흰 배경 앞에 세우고 사진을 찍는다. 잘 찍는 것이 아니라 그저 얼굴이 잘 보이게 상반신 위주로 두 번을 찍는다. 그래도 목소리만큼은 약간 하이톤의 서비스 목소리를 장착하고 즐겁게 외친다.
”쓰리, 투, 원. “ 찰칵! “한번 더, 쓰리, 투, 원.” 찰칵!
근무했던 약국은 직장인들이 많이 있는 중심 상업가에 위치해 있었다. 출근하는 길이나 점심시간을 이용해 약국에 와서 여권 사진을 찍는 손님이 종종 있었다. 각종 증명사진이나 여권 사진처럼 중요한 사진을 찍을 때, 전문 사진사가 있는 사진관에 가서 가능한 잘 찍어, 적당한 보정을 해주는 것을 선호하는 우리나라의 문화와는 달리 약국에서 여권 사진을 찍는 뉴질랜드 문화는 한 때 내가 직접 여권 사진을 찍어주는 서비스를 해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생소하다. 가끔은 고개를 가누지 못하는 어린 아기의 여권 사진을 찍어주기도 했다. 이것이야말로 시간과 품이 많이 드는 작업이었다. 다른 손님들이 왔다 갔다 하는 카운터 근처의 맨바닥에 흰 배경지를 깔고 아기를 일단 눕힌다. 아기가 가만히 얌전히 있으면서 동시에 눈을 뜨는 순간을 포착해 사진을 찍어야 하는데 만만치가 않다. 여러 번 찍는 것만으로는 안 돼서 시간 간격을 두고 다시 찍는 경우도 많다. 그나마 쓸만한 사진이 찍히면 다행이다.
찍은 여권 사진은 컴퓨터로 옮긴다. 여권 사진을 적정 크기에 맞게 조절해 주는 프로그램에 넣어 얼굴 크기나, 사진 크기를 조절한다. 그리고 여권 사진으로 사용 가능한지 확인해 주는 사이트에 접속을 해서 한 번 더 확인을 한다. 이마가 반짝여 규정을 통과하지 못한다던가 하면 살짝 보정도 해준다. 그리고는 손님이 원하는 대로 인화를 해주거나 이메일로 사진 파일을 전송해 준다. 다행히 뉴질랜드에서 사용하는 사진은 권장하는 프로그램에서 검증을 했기 때문에 사진의 질과는 관계없이 규정에 통과를 못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문제는 다른 나라 여권이나 비자에 사용하는 사진이다. 구글을 검색해 각 나라에서 요구하는 사이즈만 겨우 맞춰서 사진을 제공했는데, 솔직히 말하면 돈을 받고 서비스를 제공하는 나 스스로도 사진이 괜찮은 것인지 자신이 없었다. (여권이나 비자 사진은 우리나라에 갔을 때 사진관에 가서 찍어오자는 교훈을 얻었다.)
조제실에서 처방전을 처리하는 것이 나의 주요 업무라고 생각했다. 내가 배운 공부도 기술도 그것이다. 여권 사진은 업무의 난이도를 떠나 나의 포지션과 맞지 않는 업무였고 하고 싶은 업무는 더욱 아니었다. 그 일을 제대로 하는지조차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마음에 들게 사진이 나오지 않았다고 불만을 표하는 사람이 자주 있었다면 정말 못할 일이었을 것이다. 그나마 얼굴만 나오면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는 무난한 뉴질랜드 사람들이 많아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외국인들의 여권 사진이 왜 모두 머그샷같은지 일견 이해가 된다.
뉴질랜드의 약국에서 일하기 전에는 몰랐다. 약국에서 여권 사진을 찍어준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 일을 내가 하게 될 줄은 말이다. 어떻게든 약국에서 쓰임이 많은 직원이 되어 언어가 부족해도 이 직장에서 살아남아 보자는 마음으로 여권 사진 서비스를 배워서 했다. “이걸요? 제가요? 왜요?”는 꾹꾹 눌러 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