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국신화, 제4장 자유의 투사 이승만

대한민국 정통사관 제2부

by 현진석

제4장 자유의 투사 이승만


대한민국의 역사에서 이승만은 가장 신화적인 인물이다. 한 인물의 생애에서 수십년의 간격을 두고, 대통령에 두번 임명되고 동시에 두번 모두 불명예 퇴진한 기록은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일이다.

그런 스토리에 걸맞게 그에 대한 평가는 극과 극을 달린다. 공산주의와 싸워 기적적으로 나라를 구한 건국대통령, 권력욕의 화신으로 민족을 분단시킨 독재자 등등…

어쩌면 그의 투사적인 성향이 그 모든 영광과 오명을 가져왔을 수도 있다. 이승만의 일생은 목숨을 건 싸움의 연속이었다. 대한제국 고종황제와의 싸움, 일본제국과의 싸움, 임시정부 반대파와의 싸움, 하와이 반대파와의 싸움, 미군정과의 싸움, 공산제국주의와의 싸움… 이 모든 싸움에서 물러서지 않고 이겨냈던 그이지만 마침내 끝이 왔다. 대한민국 국민들과의 싸움에서는 많은 피를 흘린 시민들의 민주주의 열망에 굴복하면서, 이후 산업화세력과 민주화세력에게 격하되어 최고의 민족지도자라는 칭호도 2인자 김구에게 빼앗기고 말았다.

1945년 10월 17일, 33년만에 고국에 돌아온 노(老)정객은 기자회견에서 앞으로 벌어질 싸움을 예고하며 빙그레 웃었다. “나도 해외에서 상당히 싸움을 해온 싸움꾼이니까 건국을 위하여, 대한 동포의 살길을 위함이라면 당당히 싸우겠소.”, “나는 그러한 알몸뚱이로 국제문제 같은 데 나서고자 한다. 나는 지금까지 미국의 외무성과 싸워 온 사람이다.”[1]


독립과 건국의 영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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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의 관계를 제외하고 이승만의 신화를 이야기할 수는 없다. 그가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연장자들을 물리치고 국무총리(임시대통령)에 선임된 것은, 그의 국내투쟁에 따른 투옥경력 보다는 일본에 대항할 수 있는 강대국 미국의 힘을 기대했기 때문이다.

그는 최초의 한국인 국제정치학 미국대학 박사였으며, 루스벨트대통령을 직접 만나 조선의 독립을 청원하였고, 윌슨 대통령과의 사제지간이라는 친분을 가져 3.1운동 이전에도 높은 명성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국제정치의 냉정한 현실은 젊은 대통령의 날개를 꺽었다. 1921년 11월에 미국에서 개최된 ‘워싱턴군축회의(일명, 태평양회의)'에 서재필, 정한경 등의 한인들과 구미위원회의 돌프, 토머스 등을 동원하여 영문 자료들을 배포하였으나 참석국의 대표들은 한국대표단에게 참석권이나 발언권을 주지 않았다. 주요 참가국인 일본의 눈치를 볼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워싱턴에서의 실패가 결국 이승만의 첫번째 대통령탄핵의 결정적 원인이 되었다.

투사(鬪士) 이승만답게 그는 ‘한미협회’, ‘기독교인친한회’, ‘구미위원부’ 등을 통하여 지속적으로 미국정부에 임시정부의 승인과 한국독립 지원을 요청하였고, 1882년의 조미조약을 지키지 않은 미국을 나무라며 미국을 압박했다. 미국관리들에게 이승만은 골치아픈 늙은 독립운동가였다. 다음은 카이로회담 6개월 전에 루스벨트대통령에게 보낸 이승만의 친서이다.


…저는 지금이야말로 미국이 지난 38년 동안 한국민과 한국에 대해서 저지른 잘못과 부정(不正)을 시정할 때라는 사실에 대하여 각하의 주의를 환기시키고자 합니다. 각하께서 잘 알고 계시는 바와 같이, 미국은 1882년에 체결된 조미조약(朝美條約)을 위반하여 1905년에 일본이 한국을 점령하고 1910년에는 한국을 병탄하는 것을 묵인하였습니다. 각하께서 [최근에]행하신 공중 연설에서 언급하신 바와 같이, 그때부터 한국인은 전 세계의 피(被) 정복 민족들 가운데 누구보다 더 심하고 그리고 더 오랫동안 고통을 겪어왔습니다. 대한제국의 파괴는 일본의 [전 세계]정복 계획의 시작에 불과하였습니다. [그 후]도쿄의 군국주의자들 손에 하나하나 먹혀들어간 나라들은 여기서 다시 열거할 필요도 없습니다.

1941년 12월 7일 후 섬나라 민족인 일본의 폭력으로부터 문명과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하여 얼마나 많은 피를 흘렸고, 얼마나 많은 금전이 허비되었습니까? 이 모든 것은 서양의 정치가들이 독립된 한국이 동양 평화의 보루로서 얼마나 중요한지를 인식하지 못한 데 기인한 것입니다. 서양의 정치가들은 수 세기에 걸쳐 일본의 침략을 여러 차례 격파한 것이 한국인이었다는 사실을 간과했습니다. 그들은 한국이 독립.부강한 나라가 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대신에 제국주의적인 일본을 옹호하여 세계 평화를 위협하는 폭압적인 국가로 육성하는 데 물심양면의 지원을 아끼지 않았습니다.(중략)[2]


[1]손세일, <이승만과 김구>6권, 2015, 187~188쪽

[2]유영익, <이승만의 생애와 건국비전>, 2019, 18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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