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3년 10월 9일 북한의 잔학한 테러에 순국한 16분과 김재익수석을 추모하고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저의 책의 소명은 50%는 한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물가와 임금의 고공비행 속에서 정치적 위기까지 맞은 대한민국호는 자칫 좌초할 수도 있었지만, 전두환대통령의 박대통령과의 차별화 욕심과 자유주의를 신봉하는 김재익경제수석과의 결합으로 한자리수 물가와 86년 사상 최초의 경상수지(무역수지) 흑자라는 쾌거를 이루어 내었다.
김재익이 미국 유학 시절에 접한 강경한 자유주의 경제사상가 루트비히 폰 미제스(Mises, 1881~1973)는 '계획경제는 자의적인 경제 계산이 나올 수 밖에 없어 비합리적인 계산이 나올 수 밖에 없다'라고 주장했고, 김재익도 자유주의 시장을 신앙처럼 지지했다.
임금과 추곡 수매가, 기업투자를 억제한다는 정책은 경제주체들에게 격렬한 저항을 불러왔다. 당장 물가가 치솟는 상황에서 재정 긴축은 실질 소득이 감소하는 것이었슴으로 당연한 반발이었다. 이에 정부는 물가가 안정되면 실질소득이 증가하게 된다는 내용을 지속적으로 홍보, 교육하면서 여론을 안정시켰고, 전대통령의 강력한 신임을 받은 김재익수석의 활약 속에 한국경제는 과열을 막을 수 있었다.
1980년 30%에 달했던 도매물가는 82년에는 4.7%, 83년에는 0.2%로 크게 낮아졌고, 소매물가는 80년 29%에서 82년 7.1%, 8
3년 3.4%로 안정되었다.
2천년대에 그리스와 중남미 등에서 자주 들려오는 몇십, 몇백프로의 물가상승은 한국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 되어 버린 것이다.
아웅산묘소에서 북한의 폭탄테러로 순국한 한국 최고의 인재 17분의 성함은 다음과 같다. 서석준 부총리, 이범석 외무부장관, 김동휘 상공부장관, 서상철 동자부장관, 함병춘 대통령비서실장, 이계철 주 버마대사, 김재익 경제수석비서관, 하동선 해외협력위 기 획단장, 강인희 농수산부 차관, 김용한 과기처차관, 심상우 민정당 총재비서실장, 민병석 대통령 주치의, 이재관 대통령 공보비서관 , 이중현 동아일보 사진기자, 한경희 경호원, 정태진 경호원, 이기욱 재무부차관.‘
김재익은 결국 내가 죽음의 길로 안내한 꼴이 되었다. 차라리 그가 원하는 학자의 길을 가게 했더라면 이런 일은 없었을 것을...... 유족들을 뵐 낯이 없다. 다만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김재익은 비록 짧은 인생을 살다 갔지만 꽃다운 청춘을 바쳐 이 나라 경제를 바 꾸어 놓았다. 그가 보여 준 공복 정신과 경제철학은 세계화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영원한 길잡이가 될 것이다. 삼가 명복을 빈다.
남덕우, <80년대 경제개혁과 김재익 수석>, 5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