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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십에 읽는 흑역사

#13. 대형서점 파산신청

by Peregrine

2011년


1998년에 방영된 톰 행크스와 멕 라이언이 주연한 “You’ve Got Mail”이라는 영화가 있다. “The Shop Around the Corner”라는 영화를 리메이크한 것인데, 새로운 시대 변화에 맞게 Fox and Sons Book라는 대형서점이 Shop Around the Corner라는 2대째 어린이 전문서적을 판매하는 소형서점을 잠식하는 과정을 다룬다. 대기업 팍스가의 조 (Joe: 톰 행크스 분)와 돌아가신 엄마가 평생 동안 지역사회와 어우러져 어린이의 꿈을 키워주던 서점을 이어받아 운영하는 캐서린 (Kathleen: 멕 라이언 분)이 경쟁 사업을 하는 철천지 원수임에도 불구하고 인터넷상에서 사적인 부분을 서로 공유하지 않는 관계로 자신이 상상하는 선량한 타인이란 생각에 서로에게 호감을 가진다. 아침에 알림으로 "You've Got Mail!"이 뜨면 설레는 마음으로 상대에게서 온 이메일을 읽고, 글귀로 전해온 소식을 음미하며 룰루랄라 신나게 하루를 시작한다. 각자 오랜 관계를 지속해 온 파트너가 있음에도 흡사 새로운 사랑에 빠진 듯 구름 위를 걷는 황홀함이다.


뭐 현실에서는 사업상 "죽을 때까지 싸운다"는 전투력으로 경쟁하게 되지만, 채팅을 하면서 어려운 상황에 처한 캐서린에게 영화 '대부'를 언급하면서 목숨 걸고 싸우라는 조언을 하는 당사자 역시 '적'이자 분노 유발자인 조였다. 온라인상에서 호감을 가졌던 상대가 오프라인에서는 원수임을 알게 된 후에도, 원수와의 대화에서 캐서린이 진정 자신이 하고 싶었던 일이 아동문학작가임을 깨닫게 되고, 원수관계를 극복하고, 서로 연인이 된다는 해피엔딩이다.


당시로서는 손 편지가 아닌 이메일로 상대가 누구인지 모르는 상태에서 채팅을 하면서 불특정 상대가 친절하고 자신과 비슷한 선호도를 가졌을 것이라 가정한다. 급기야 표현하는 데 익숙하지 않고 쑥스러워하는 다시 (Darcey)를 오만한 자라고 엘리자베스가 오해하고 편견을 가졌으나 오히려 자신의 동생과 가족을 자신도 모르게 구해주는 따뜻한 마음의 소유자임을 알게 된다는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을 조도 좋아하게 될 거라면서 강추를 한다. 캐서린의 추천으로 책을 읽기는 하지만 조가 선호하는 책은 전혀 아니다.


감독 노라 이프론 자신이 아동문학에 관심이 있어서, 서점을 대형화 추세의 일례로 들은 것 같다. 사실 대형화 추세는 모든 분야에서 이뤄지고 있었다. 약국, 병원, 문구점, 마켓 등등…


캐서린이 서점을 폐점하고, 동거남과 헤어지고, 지독한 감기에 걸려 집에서 쉬고 있을 때, 조가 용기를 내어 캐서린의 아파트로 찾아왔다.


캐서린: 이봐요, 당신 때문에 내가 폐업했잖아요!

조: 네, 뭐 그랬죠.

:

:

조: 하지만 사업일 뿐이지, 사적인 의도는 아니었습니다.

캐서린: 나한테는 사적인 거였어요. 어머니의 모든 것이 깃든. 어쨌든 사적인 게 뭐가 문젠데요? 누구나 첫 시작은 사적인 이유에서 비롯되는 건데!


사업하는 자가 사무적 결단으로 다른 사업장이 망하여도 사적인 감정에 비롯한 것이 아니므로 개인사업자의 폐점에 대한 책임은 없다. 영화니까 가업 말아먹은 수백만장자에게 구제된 신데렐라가 된 캐서린이지 현실이었다면 어떠했을까? 당시에는 아날로그에서 디지털 시대로 넘어가는 과도기에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설정이어서 참 재미있게 본 영화였다. 한국영화로는 한석규와 전도연 주연의 '접속'과는 또 다른 관점이었다.

Remembering Borders..png 책 뿐만 아니라 만남의 공간이었던 보더스 서점


2011년! 그 영화가 나온 지 13년쯤 지난 지금, 그런 대형서점 중 하나인 보더스 (Borders)가 파산신청을 하였다. 만남을 너머 책을 구매하는 것도 인터넷을 통하거나 킨들 같은 eBook이 있어서 젊은 층은 굳이 서점을 가지 않는단다. 나 같은 사람이야, 책뿐만 아니라 서점 안에 있는 커피도 마실 수 있는 공간에서 나들이 욕구도 충족이 되어 꼭 필요한 공간이었지만 말이다. 게다가 2008년 금융위기 여파로 미국의 경기가 워낙 안 좋아서 인지도가 높은 보더스를 매입할 작자가 없단다. 그래서 내린 결단이 파산이다. 모든 재고정리를 해야 하므로 최고 40%까지 할인한다고 하여, 그 잘 나가던, 없는 것이 없고, 휴식과 만남의 공간도 되고, 최고의 서비스를 자랑하던 그래서 동네의 자그마한 서점들을 잠식하고 군림하던 대형서점의 마지막 길을 배웅하러 갔었다.


물론 표면적인 이유야 그렇고, 레고 세트를 최고 40%까지 할인한다기에 가봤더니, 끝까지, 나 참! 최고가 40%이고 대개는 10% 할인이었다. 그것도 가격 비교를 해보면 코스트코나 월마트에서는 원래 할인된 가격에 파는데, 여기서는 원가에 10%를 할인해 봤자 비슷하거나, 레고나 장난감의 가격은 더 황당하다. 같은 모델 2504 레고 세트가 다른 곳에서는 50불이면 보더스에서는 64불이라고 가격표가 붙어있다. 여기에 10%를 할인해 보야 다른 곳보다 더 비싸다. 그러니 장사가 될 리가 있나. 비애라고나 할까 했던 마음이 담담해졌다. 그대, 보더스는 여기까진가 보오! 그나마 다른 곳에서의 시세를 모르는 책 2권을 떠나보내는 마음으로 골라봤다.


Borders closure.png


인터넷 상거래를 하면서 사람들이 판매세를 안내는 바람에 미국 각 주들이 재정적자에 허덕이고 있다고 한다. 인터넷으로 거래된 것에 해당하는 세금만 모여도 주 예산의 적자를 줄일 수 있다는데…그러면 공립학교 교사들 수를 줄이지 않아도 되고, 학급 인원수가 늘어나서 교육의 질이 떨어질까 염려할 필요도 없을 텐데. 너도 나도 일자리가 없어 잘려나가는 시기에 교육의 질을 생각하기도 배부른 생각인가? 세상이 참 변화무쌍하다. 빠르고 편한 이 좋은 세상의 이기가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고 있다.


향후 13년은 어떤 모습일까? 그 안에 서 있는 나는 또 어떠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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