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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미 안투네즈 Oct 06. 2022

우물 안의 개구리.

The Frog Prince by Jane Ray




'우물 안의 개구리'라는 속담을 좋아한다. 정확하게 말하면 이 속담의 다음 이야기를 좋아한다.


'우물 안의 개구리는 바다가 얼마나 넓은지 모른다. 하지만 우물의 깊이는 알고 있다.'


우리는 언제나 더 넓은 세상, 보다 좋은 삶을 바깥에서 찾는다. 하지만 우리가 삶 속에서 진정으로 깨달아야 하는 것은 바다가 얼마나 넓은지가 아니라 바다가 이미 내 안에 들어 있다는 사실이다.


나는 그것이 명상이라고 생각한다. 나의 존재 이유를 밖에서 찾지 않는 것. 나의 내면을 채워 줄 그 무언가를 찾아 세상을 떠돌아다니는 것이 아니라 이미 내가 모든 것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을 내 안을 깊이 탐구함으로써 발견하는 것.




영국의 철학자 '조지 에디워드 무어'는 사람은 필요한 것을 찾아 온 세상을 헤매지만 집에 돌아와서야 그것을 발견한다고 말했는데 나의 인생이 딱 그랬다. 스무 살을 넘기자마자 나는 일본으로 갔다. 그리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가 미국을 가고 다시 일본을 가고 호주도 가고 인도네시아도 갔다. 나는 무언가를 얻기 위해 그리고 보다 멋지고 새로운 내가 되기 위해 꿈을 찾아 사랑을 찾아 세상을 떠돌아다녔다. 하지만 나에게 남겨진 것은 허망한 가슴과 눈물로 얼룩진 얼굴뿐이었고 이제 다시는 집을 떠나지 않으리라 굳게 다짐했을 때 지금의 남편을 만나 미국에 정착했다. 외국에서 살고 싶다는 꿈을 포기하자 꿈을 이룰 수 있었다.


우리 집은 나무로 둘러싸여 있다. 세상을 떠돌아다니며 살던 나는 조용한 이곳에서 엄마라는 이름으로 고립되었다. 하루 종일 아이를 돌보고 집안일을 하고  번의 식사 준비와  번의 설거지를 하다 보면 하루가 끝나버린다. 하지만 나는  고립을 기회로 삼았다. 매일 명상을 하고 글을 썼다. 바깥에서 내가 원하는 것을 찾는 것이 아니라  안에 있는 것들 깊은 곳에서 끄집어내기 위해 노력했다.


나는 무엇을 찾아 그토록 세상을 떠돌아다녔을까? 나는 내가 아닌 내가 되고 싶었다. 새로운 나, 멋진 나, 부유한 나, 아름다운 내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어떠한 내가 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나는 내가 되는 것이 아니라 나를 잊고, '나'라는 에고를 잊고 명상으로, 숨으로, 현존으로, 에너지로 돌아가 무無가 되어야 했다. 끝도 없는 무, 시작과 끝인 무. 우리는 무에서 와서 무로 돌아간다.


그 맑고도 한없는 무가 되는 순간은 언제나 지금 이 순간이었다. 나는 명상을 하고 지금을 살기 위해 노력했다. 나를 바꾸기 위해 과거로부터 도망치지도, 새로운 내가 되기 위해 미래로 달려갈 필요도 없었다. 명상 속에서, 글을 쓰는 현존의 시간 속에서 나는 그 무엇이 될 필요도 없었고 슬퍼할 필요도 괴로워할 필요도 없었다.




나는 자주 '우물 안의 개구리'라는 속담을 마음속에 새긴다. 그리고 더 지독하게 우물 안에 있기로 다짐한다. 나는 우물의 깊이를 헤아리며 이 우물이라는 세상이 오직 나의 머릿속에만 존재한다는 것을 느낀다. 그리고 보다 넓고 보다 멋진 바다 또한 나의 머릿속에만 존재한다는 것을, 나는 그저 오늘 하루를 열심히 사는 작은 개구리일 뿐이라는 것을 느끼며 지금 이 순간 속에 존재하고자 노력한다.  


하루가 또 시작된다. 아침을 하고 점심을 하고 저녁을 한다. 아이를 돌보고 청소를 하고 변기를 닦고 바닥을 닦고 옷을 갠다. 나라는 존재가 소모되고 남편을 위해, 아이를 위해 사는 주부의 일상이 시작된다. 세상을 떠돌아다니던 젊은 시절의 나를 떠올려 본다. 피식하고 웃어본다. 아이를 본다. 창가의 나무를 보고 남편의 구멍 난 양말을 본다. 내가 찾던 것들은 여기에도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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