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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형 Apr 19. 2024

4.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방법

안녕! 투발루

아낌없이 흥청망청

집에서 출발해 51시간에 투발루에 도착했다. 비행기에 내려 공항을 빠져나오는 시간은 그나마 빨랐다. 비행기에서 내려서 30걸음만 걸으면 입국장이라 입국장까지 가는 시간이 별로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입국 수속에 걸리는 시간도 짧았다. 투발루에는 일주일에 비행기가 4대 도착하기에 내가 타고 온 비행기가 오늘 도착하는 유일한 비행기다. 그리고 내가 타고 온 비행기가 68인승 비행기라 입국 수속을 밟는 사람이 적기 때문이다.   


‘비행기에 내려 30걸음만 걸으면 입국장이다.’


분주한 공항청사를 빠져나와 호텔로 걸어갔다. 내가 예약한 호텔은 투발루에서 가장 좋은 푸나푸티 라군 호텔(Funafuti Lagoon Hotel)이다. 다만 한국사람이 생각하는 그런 5성급의 화려한 호텔이 아니다. 2성급 정도 되는 호텔인데, 그나마(?) 투발루에서 가장 좋은 호텔이다. 참고로 푸나푸티 라군 호텔은 호텔 예약 누리집을 통해 예약할 수 없고, 오로지 호텔 홈페이지에 나와 있는 이메일 주소로 이메일을 보내서만 예약할 수 있다.


미리 구글 지도를 보고 대략적인 위치를 파악해 놔서 무거운 몸을 끌고 뚜벅뚜벅 호텔로 걸어갔다. 여기서도 한국사람이 생각하는 공항에서부터 숙소까지의 상상의 거리와는 차원이 다르다. 공항 청사에서 호텔까지는 무려 120m, 걸어서 200걸음이면 충분히 도착할 거리이기 때문이다. 참고로 공항에서 가장 가까운 호텔은 필라모나 롯지(Filamona Lodge)로 출국장에서 94m 정도 거리에 있다.


‘출국장을 나와 200걸음만 걸으면 호텔이다.’


긴 시간을 거쳐 투발루에 도착한 나는 호텔 체크인을 마치고 바로 길을 나섰다. 투발루에 도착했다는 ‘생존 신고’를 한국에 있는 사람들에게 해야 했기 때문이다. 나중에도 이야기하겠지만 호텔의 와이파이는 무용지물이고, 투발루는 해외 로밍이 안 되는 국가이기 때문이다. 와이파이도 안되고, 로밍도 안 되는 내 핸드폰은 아무런 통신 기능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생존 신고를 위해서는 유심을 사야했다. 숙소와 공항 중간쯤에 있는 노란색 지붕을 한 단층짜리 투발루 텔레콤(Tuvalu Telecom)을 찾아 나섰다. 투발루 텔레콤은 1993년에 만들어진 국영 기업으로 투발루에 유선 및 무선 전화 서비스를 제공하는 유일한 통신사였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기존까지는 유일했다는 것이다.


투발루 텔레콤 건물


10호주달러를 내고 작은 봉지 속의 유심을 받았다. 작은 봉지에 적힌 7013391이라는 숫자는 내 전화번호라고 한다. 그녀가 알려준 대로 남자 중 가까운 사람에게 찾아가 핸드폰과 유심을 건냈다. 그 사람 역시 매번 같은 일을 했던지라 무심하게 유심을 갈아준다. 데이터는 내가 원하는 용량만큼 살 수 있다. 단가를 계산해 보니 원화로 1기가에 대략 7,300원 정도였다. 우선 어떻게 될지 몰라 20호주달러를 주고 2.6기가를 구매했다.

유심과 나의 전화번호
투발루 데이터 요금제


2023년 이전까지는 투발루 텔레콤이 투발루 주민들이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통신사였다. 우리나라처럼 SK텔레콤, KT, LG유플러스, 그리고 알뜰폰을 고를 수 없다. 투발루 텔레콤을 통해 통화하고, 데이터를 사용하고, 인터넷도 사용했다. 유일한 대안이었지만, 다만 그 속도는 만족할 만한 상황은 아니었고, 데이터 비용도 상대적으로 비쌌다.


그런데 2024년부터는 혁신적인 변화를 누릴 수 있게 되었다. 바로 일론 머스크(Elon Musk)의 ‘스페이스 X’에서 운영하는 스타링크(Starlink)가 남태평양 지역에서도 가능해진 것이다. 아직은 비용이 싸지 않다.  한 달에 16만 원이면 투발루 주민들의 소득 수준에 비하면 아직 비싼 가격이기는 하다. 그래서 공공기관이나 생활 수준이 나은 주민들이 먼저 사용하고 있다. 아직 우리나라도 여러 가지 이유로 도입되지 않은 스타링크가 남태평양의 외딴섬에 하나의 빛줄기가 된다고 하니 신기하기는 했다.


늦지만 언젠간 도착하겠지

나는 여행자이다. 뚜벅뚜벅 푸나푸티를 배회하는 여행자이다. 투발루에서 천천히 시간을 보내는 방식 중 하나가 걷는 것이다. 투발루에 머물었던 일주일 동안 하루에 15,000보씩은 걸었다. 그 덕분에 한국에서 있었던 허리 통증이 사라졌다. 한국에서는 낮 동안 회사에 머물기에 보통 하루에 최소 8시간 정도는 앉아있다. 그런데 투발루에서는 많은 시간을 걷는 데 소비했다.


숙소에서 남쪽으로 10분쯤 걸어가다 보면 단층의 노란색 우체국 건물이 보인다. 우리나라처럼 커다란 간판이 없고, 건물 앞에 세워진 패널이 여기가 투발루 우체국임을 알게 해준다. 우체국 앞에는 형광 노란색을 칠한 오토바이와 자전거가 서있다. 섬이 좁으니 조금 먼 곳은 오토바이로 편지를 배달하고, 조금 가까운 곳은 자전거로 편지를 배달하나 보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차가운 냉기가 나를 반긴다. 행복한 순간이다. 우체국 오른쪽 벽에는 시대순으로 우표가 진열되어 있었다.


투발루가 영연방국가이다 보니 영국 여왕인 엘리자베스 2세를 기념한 우표도 진열되어 있고, 2012년 영국 왕실의 윌리엄 왕세손 부부의 투발루 순방을 기념하는 우표가 진열되어 있었다. 투발루도 우표를 발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새롭게 알게 된 순간이었다.


특이한 것은 외국의 우표도 팔고 있다는 것이었다. 특히나 2019년 우리나라의 문재인 대통령과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정상회담 기념우표, 그리고 북한의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의 정상회담 기념우표도 팔고 있었다. 미국 우표인 듯한데, 호주달러를 주고 살 수 있었다.


엽서를 보내는 방식은 이랬다. 우선 원하는 엽서를 2호주달러를 주고 산다. 투발루의 자연경관과 동식물 사진이 그려진 5개 정도의 엽서가 있었다. 나는 투발루의 야자수 사진의 엽서를 한 장 샀다.


우푯값은 2호주달러다. 우표는 2호주달러짜리 보통우표를 한 장 사서 붙이거나, 진열된 우표 중에서 2호주달러를 맞추거나 그 이상의 우표를 사서 붙이면 된다. 보통우표는 투발루 연안에 서식하는 파란 산호(Acropora echinata)의 사진이다. 나는 보통우표를 사서 엽서를 부치고, 투발루의 물고기가 나와 있는 기념우표를 샀다.


참고) 투발루는 자국 화폐가 없고, 호주달러를 사용합니다.



우체국 귀퉁이에 앉아 아내와 아이들에게 엽서를 썼다. 예전에는 아내에게만 엽서를 써서 작은 엽서지만 그나마 글을 쓸 공간이 여유로웠던 것 같다. 오랜만에 해외에서 엽서를 쓰다 보니 아이들은 그사이 커서 이제 글을 읽게 되었다. 아이들에게 엽서 내용을 안 쓰면 아이들이 삐질 것이 분명했다. 좁은 칸에 블록을 쌓듯 여유 공간이 남지 않게 빼곡히 적었다.


“항상 우리 가족을 잘 챙겨줘서 감사한 마음 뿐이야”

항상 건강하고, 밝게 지내는 모습이 아빠에겐 더할 나위 없는 행복일 뿐이야”


엽서를 쓰고, “과연 이 엽서가 한국에 도착할까?”하는 의심이 들었다. 그래서 엽서를 부치기 전 엽서 사진을 찍어두었다. 아직까지는 나의 의심이 틀린 것은 아니다. 엽서를 3월 14일에 보냈고, 이 글을 쓰고 있는 오늘은 4월 19일이다. 


엽서를 보낸 지 한 달이 넘었지만, 아직 나의 엽서는 우리 집에 당도하지 않았다. 


그래도 엽서 사진을 찍어놓은 증거가 있다. 포기하다 보내면 느린 우체통처럼 1년 뒤에는 배송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시간과 공간이 우리의 경험과 다른 투발루에서 엽서도 다른 시간의 궤적으로 우리 집에 당도할 것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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