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터의 참호처럼
제로그래비티 침대를 정작 제로그래비티 모드로 올리지 않고 산다는 글을 한참 전에 적었었는데, 최근 호되게 아프고 난 다음부터는 하루도 빠짐없이 제로그래비티 모드다. 몇 주 전, 새벽 내내 멈추지 않는 구토와 몸살로 고생하다가 대략 새벽 네 시쯤 되었을까, 몸과 마음이 너무 지친 상태에서 문득 '그렇지, 이 침대는 제로그래비티라는 기능이 있었지' (그렇다, 사실 그 기능을 잊고 살았기 때문에 작동하지 않았던 것뿐, 이라고 해도 그게 적절한 핑계는 아닐지도 모르지만) 하는 깨달음을 얻고 오랜만에 작동했는데, 웬걸, 그대로 아침 무렵까지 잘 수 있었다. 숙면과 불면의 갈림길에서 나는 다시 제로그래비티 찬양론자로 돌아왔다.
자정 전에 잠들어서 한 번 뒤척이지도 않고 눈을 뜨니 4시 50분이다. 조금 더 잘까 순간 고민하지만, 몸이 나를 깨우는 시간에 일어나면 하루가 더 평화롭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기에 미련 없이, 하지만 천천히, 몸을 일으킨다. 정확하게 이 시간에 깨어 노래하기 시작하는 새들이 있다는 것을 새소리를 들으며 기억해 낸다. 어젯밤엔 창문을 조금 열어두고 잤기 때문에 아침의 새소리가 더 명확하게 들린다. 조용하고 어두운 거실로 나와 불을 켜고, 제일 먼저 찻물을 끓인다. 거실 천장의 선풍기를 틀자 집안이 깨어나기 시작한다. 공기의 흐름이 있다는 것은 사소해 보이지만 중요한 차이다.
며칠 전 정리를 하다 책상 위에 올려둔 오래된 단총 차 한 봉을 발견한다. 딱 한 번 내릴 분량으로 포장된 것인데 여행 갈 때 가져가야지, 생각하고서 벌써 2년이 지났다. 압시향, 혹은 ''Ya Shi", 직역하면 오리똥이라는 이름의 차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차 중의 하나다. 이 특이한 이름에는 여러 가지 유래가 있지만 내가 가장 좋아하는 버전은 '어느 농부가 우연히 이 차나무를 발견하고 마셔보니 너무 향긋하고 맛있어서 혼자만 마시려고 다른 사람들에게 이건 별거 아닌 오리똥이라고 했다'는 이야기다. 지극히 인간적이고 차 애호가적이군, 하며 오리똥 차를 마시는 자신에게 괜스레 관대해지게 된다.
아침 첫 차를 내리는 순간은 그날의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분명하게 드러내준다. 오늘은 고요하고 차분한 성격의 중년인데, 역시 제로그래비티 숙면의 효과인지도 모른다. 92도로 데워진 차 주전자를 들어 하얀 개완에 물을 붓는다. 뚜껑을 덮고, 개완을 둥그렇게 돌려 데운 다음 물을 찻잔에 옮겨 담는다. 오래된 차 봉지를 열어 따끈하게 김이 올라오는 텅 빈 개완에 가만히 옮겨 담는다. "찻잎을 방해하지 마" 하고 나에게 차 마시는 법을 알려주던 친구의 말을 떠올리며 숨을 고르고, 차 주전자를 들어 올린다.
첫 찻물이 찻잎에 닿는 그 순간.
가슴속에서 기쁨이 피어오르는 것이 느껴지고,
나도 모르게 스륵 미소를 짓는다.
동시에 함께 떠오른 시구. "기쁨을 수호하라, 전쟁터의 참호처럼."
이 시를 처음 읽었던 순간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류시화 시인이 매일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나 글을 쓴다는 이야기를 하며 번역한 시를 올렸었다. 어떤 시들은, 내 안에 내려앉는 순간을 잊을 수 없게 만든다. 지금도 이 시를 읽을 때마다 그 느낌이 생생한데, 가슴에서부터 뭔가가 차오르면서 목구멍을 채우고 턱 밑까지 단번에 올라오는 물결 같은 것이 느껴진다. 오늘 아침 내 전쟁터의 참호는 바로 이 첫 찻물의 고요한 순간이고,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붙잡았다는 사실에 기쁨이 커진다.
동시에 문득 깨닫는다. 그 긴 시에서 유독 '전쟁터의 참호처럼'이라는 시구가 오늘따라 크게 다가온 이유는 지금 나의 상황이 조금은 전쟁터처럼 느껴졌기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이번주에는 난생처음 구조조정이라는 것을 겪어봤고, 고용주에게 유리한 싱가포르 노동법에 따라 근로자는 협상의 여지없이 구조조정 통보를 받는 즉시 회사와 관련된 모든 권한을 잃게 된다. 작년부터 시장 상황이 좋지 않았고 이런 노동법의 구조는 싱가포르로 이사 오면서부터 알고 있었던 것이니 그런 건 아무래도 괜찮았다. 다만 오랫동안 애정을 가지고 일하는 와중에 내 정체성의 많은 부분이 일과 엮어 있었다는 것을 깨닫는 과정, 싱가포르에서 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의 비자 문제, 지난달부터 절반 가까이 오른 집세와 치솟는 싱가포르의 물가... 그런 것들을 생각하면 아무래도 심장이 벌렁거리지 않을 수 없다. 차분하게 대응하는 것에는 변함이 없지만, 어쩌면 전쟁터의 장군이 침착하게 부대를 정렬하는 이미지가 있었기 때문에 저 시구가 떠올랐던 건지도 모른다.
그리고, 나에게는 여전히 전쟁터의 참호 같은 기쁨의 순간들이 있다.
어제만 해도 오전 햇살을 받으며 천천히 아침을 먹던 순간의 느긋함, 저녁에 요가를 마치고 천천히 걸어 돌아오는 길에 마음에 쏙 드는 노래를 발견하고 그 리듬에 맞춰 몸을 흔들거리며 발걸음을 늦추던 순간, 새벽 무렵 침실 창 밖으로 청초한 초승달을 발견하는 순간들이 있었다. 그런 순간들은 목적이나 결과 따위를 벗어나 있다. 현실 속에 있지만 미묘하게 현실을 비껴 나 있기도 하다.
머리가 아니라 몸에서 느껴지는 감각, 때 묻지 않은 순수한 즐거움, 어린아이다움 - 그런 순간을 놓치지 않고 최대한 만끽하는 것. 그걸로 충분하다. 지금은 그거면 됐다,라고 자신에게 조금 관대해지기로 한다. 그리고 전쟁터의 장군에게 제대로 참호를 파고 그 참호를 지켜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도 기억하기로.
류시화 시인이 번역한 마리오 베네디티의 "기쁨을 수호하라"
(표지의 사진은 류시화 시인의 포스팅 사진을 그대로 사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