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가을 Jul 29. 2022

콧 속이 가려우세요?

초예민 영어강사의 수업일지 3


앞에 서면 꽤 잘 보인다. 아니 아주 잘 보인다. 학교 다닐 때 친구들이랑 수업시간에 쪽지 주고 받으면서 킥킥대어 본 1인으로서 그 당시의 수학 선생님에게 조금 미안해진다. (수학이 재미없어서 유독 수학 시간에만 쪽지를 많이 남발했던 것 같다.) 앞에 서면 다 보이고 다 들린다는 그 사실을 미처 몰랐던 그 당시엔 정말 선생님이 등 돌린 틈을 타서 휙-휙-쪽지 잘 전달했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나이가 들어 사범대학에 들어가고 교생실습을 나갔던 순간부터 알게 되었다. 앞에 서면 인공위성이 펼쳐진 듯 다 알게 된다는 것을.  


얼마 전 수업시간이었다. 대학생인 T의 얼굴이 유독 생기가 돌았다. 마스크를 착용했음에도 그 마스크 안 쪽에서 입이 귀에 걸린 느낌이 느껴졌다. 눈이 반짝거리고 나를 보고 있으면서도 또 동시에 다른 곳에 눈길이 자꾸 머무르는 것이 포착되었다. '어디 보자. 음, R이군. 아, 그렇구나. 강의실 안에서 설레임이 피어오르고 있구만.' T와 R은 두 줄 간격을 두고 앉아있지만 보이지 않는 선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그렇지만 두 수강생 모두 수업엔 열심히 참여하고 있으니 방해될 것 도 없었고, 그 보이지 않는 선이 나에게는 보이고 있어서 뭔가 나만이 비밀을 같이 공유하는 느낌도 들어 흥미로웠다.


수업이 끝나고 이동하는 시간. 문득 떠오르는 일들이 있었다. 계속 앞에 서서 일하다 보니 알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저절로 알게 되었던 것들, 또 보고 싶지 않지만 다 보여서 난감했던 일들이 떠올라 나도 모르게 힛-하고 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 당시에는 정말 당황스럽고, 어찌해야 하나 싶었지만 지금은 웃음이 새어 나온다는 사실에 새삼 놀라웠다.





그 중 한 가지 일은 토익 수업을 진행하던 때였다. 토익 수업은 강의실이 거의 꽉 차고 다들 목표하는 바가 있어 수업에 집중력도 높아서 수업의 진행 속도도 빠른 편이다. R/C 문제풀이를 진행하는 경우에 수강생들의 시선은 "여기 잠깐 같이 보시겠습니다." 라고 말하며 관련 문법을 추가적으로 설명하고 정리해 줄 때 외에는 책상 위의 교재와 프린트물에 향해있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필기하고 설명을 메모하느라 손길과 눈길이 바빠서 다른 행동을 하는 경우는 거의 드물다. 나는 설명하며 중간중간 수강생들을 체크하는데, 그때 어느 한 수강생과 눈이 마주쳤다. 그것도 아주 가까운 두 번째 줄 바로 직선 거리에서. 나도 모르게 속으로 '으잉?' 이라는 반응이 나왔다. 왜냐하면 나를 똑바로 바라보면서 코를 후비고 있었기 때문이다.


'코가 가려웠나보네. 그럴 수 있지.' 하고 그 다음 문제 해설로 넘어간다. 설명을 하고 있는데, 시선이 느껴진다. 아까 그곳이다. 그 순간 그 시선을 마주해야 하나 회피해야 하나 갈등에 휩싸였다. 그런 내적갈등 속에 그 다음 문제로 넘어가고, 그 문제는 추가적인 문법 설명이 필요한 순간이었다. "이 문제에서 분사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 또 분사의 역할에는 무엇이 있었는지 다시 한 번 짚어보겠습니다. 다 같이 살펴봅니다. 여기 보세요." 하며 고개를 들었는데 역시나 아까 그 수강생은 콧구멍에 손이 들어가 있다.


'아니, 왜?'

'아직도 가려운거야? 충분히 시간 지났는데 콧구멍 안의 상황이 해결이 안 된 건가?'

'아님 일부러?'

이해가 가질 않았다. 일반적으로 콧구멍에서 뭔가를 꺼내고 싶다면 재빨리 해결하든 아님 나랑 눈이 마주쳤을 때 뭔가 창피한 표정을 짓거나 당황했을 텐데 너무 빤히 쳐다보는 모습에 이게 뭔가 싶었다. 그렇다고 "뭐 하는 거예요? 코 파지 마세요!" 이럴 수도 없지 않나. 머릿 속에 물음표가 백만 개다. 옆 수강생도 그 수강생을 쳐다봤다. 그랬더니 그의 손이 멈칫하며 슬쩍 내려간다.

'뭐지? 정말 뭐지?'

'나랑 눈이 마주쳤을 땐 마치 날 보란 듯이 코를 후볐는데 지금 옆 사람은 의식하네?'

정말 오랫동안 수업을 해왔음에도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 더욱 어리둥절했다. 그러던 사이 문제 풀이가 다 끝나고 그 날의 수업도 마무리가 되었다. 나는 그 수강생을 다시 한 번 응시했다. 그는 아무 일

없었다는 평범한 표정으로 다른 수강생들과 함께 "수고하셨습니다." 라는 말과 함께 강의실을 빠져나갔다.


그 수강생이 잘못한 것은 아니지만 뭐랄까 나를 똑바로 응시하며 코를 후비던 모습은 다소 무섭게 느껴지기도 했다. 회화 수업처럼 수강생들과 대화를 많이 나누며 친해지는 기회는 거의 없다 보니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수업시간에 코에서 손가락은 빼자고 그 수강생에게 말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그 다음 수업일. 나도 모르게 긴장이 되었다. 지난 시간과 같은 그 모습을 보게 되면 어떡할지 대책을 세우지 못한 상황에서 혹시라도 그 보다 더한 모습을 보게 될까 봐 긴장과 걱정이 밀려왔다. 하나 둘 씩 자리가 채워지고 수업을 시작할 시간이 다 되었다. 그 수강생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다행이었다.


하지만 수업을 시작하고 10분쯤 지났을까? 뒷 문이 열리고 어제 그 코를 후비던 수강생이 입장했다.  많은 학생들 틈에서도 지난 시간의 아찔한 기억 때문에 단번에 얼굴을 알아볼 수 있었다. 머릿 속의 경보음이 울렸다. '앞자리가 아니니 내가 시선을 두지 않으면 되는 거겠지. 그래. 뒷 쪽을 보지 말자.' 이렇게 주문을 걸며 수업을 이어나갔다. 그런데 멀리서 살짝살짝 들리는 부스럭부스럭 소리. '혹시?' 혹시는 역시나였다. 오늘은 봉지과자로 나의 시선을 끌었다.


이 소리는 나에게만 들리는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마이크를 이용해서 설명하는 상황에서도 부스럭- 사각- 바삭- 이런 소리들이 꽤나 불규칙적으로 들리다 보니 설명 중간중간 효과음처럼 새치기를 하고 들어왔다. 어제는 시각적 공격이라면 오늘은 청각적 공격으로 느껴졌다. 더욱이 오늘은 다른 수강생들에게도 방해가 되는 일이니 간과할 수는 없었다.


"수업 중 음식물 섭취는 다른 분들에게도 방해가 됩니다. 간단한 음료 외에는 섭취 금지합니다~!" 최대한 부드러우면서도 단호한 목소리로 그리고 일부러 그 수강생을 똑바로 바라보며 이야기를 했다. 어제 코를 후비던 때와는 다른 표정. 뭐라 설명할 순 없지만 아주 멍한 표정으로 응시하고 있다. 잠깐 동안의 정적. 마치 나에게 그 순간은 그 수강생과 나와의 보이지 않는 기싸움이었다. 몇 초가 지나고, 그 수강생은 자리에서 일어나 바로 나가버렸다. 화를 내거나 소리를 크게 내지도 않고 조용히, 그 과자봉지를 책상 위에 남겨두고 말이다. 마음 같아선 먹던 봉지도 챙겨가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 말까진 하지 않았다.

참으로 알 수가 없었다. 다 큰 사람이 왜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인지 이해불가였다. 누군가는 이런 사람도 있고 저런 사람도 있지 뭘 다 신경 쓰고 사느냐고 말하기도 하지만 난 그게 쉽지 않다. 내 강의실에 들어온 이상 모두 다 신경이 쓰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중 한 명이 이해 못 할 행동을 보이고 사라져 버렸다. '그냥 못 본 척 넘어가고 무시하는 게 맞았던 걸까? 아니야, 끝나고 따로 불러서 이야기를 하는 게 맞았을까? 아니면 내가 행동한 게 최선이었던 걸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들에 답은 없었다.


그 후로도 몇 달 간은 길 가다 코를 후비는 아이를 보거나 길에 굴러다니는 과자 봉지를 봐도 그 때 일이 떠올랐다. 지금 생각하면 어이없는 웃음이 먼저 튀어나오지만, 혹시 그런 수강생을 다시 만나게 된다면 무엇이 정답일까? 지금도 잘 모르겠다. 영어문제에 답은 있지만, 사람을 대하는 데 정해진 답은 없으니 말이다.














이전 03화 나도 가끔은 민낯으로 일할 순 없는 걸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