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사 새옹지마 아니겠어?

It's gonna be a blessing in disguise.


요즘 나의 알고리즘으로 자주 등장하는 것 중 하나는 '대운이 오기 전 나타나는 증상들'이다.

얼마 전 저 강렬한 타이틀에 이끌려 나도 모르게 클릭해 버린 뒤로, 소셜 미디어에 접속할 때마다 매번 조금씩 다른 포스트가 여기저기서 나타난다. 조금씩은 다른 그 내용들 중에서 꼭 포함된 한 가지 내용은, '대운이 찾아오기 전엔 반드시 견디기 힘들다 느낄 만큼의 고난과 역경이 찾아온다'는 것이다.


나는 세상만사를 긍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는 인간 유형은 전혀 아니다.

굳이 유형을 구분하여 솔직히 밝혀 본다면 '세상엔 이상한 사람이 너무 많아.'라거나 '나는 왜 좋은 꿈을 꾸고 로또를 사도 1등 당첨은 안 되는 거야?‘ 라며 약간 삐딱한 시선으로 궁시렁 거리는 유형에 가깝다고나 할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 '대운이 오기 전 나타나는 증상들'은 왠지 꼭 믿고만 싶다.


사실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잘 생각해 보면, 위에서 말한 저 포스트들은 모두 '현재 힘든 고난을 겪고 있는 사람들'과 '감당하기 힘든 역경들로 불안해하는 사람들'을 위로하는 글이기 때문이다. '나에게 언젠가는 대운이 찾아올지도 몰라'라는 믿음으로, 또 하나의 힘든 하루를 견뎌낼 수 있다면 기꺼이 믿어볼 만하다고 생각한다. 설령 '저것이야 말로 희망고문 아니야?'라고 말하는 이가 있다 하더라도, 너무나도 힘든 하루하루를 살아내고 있는 사람에겐 희망이라는 것이 아예 보이지 않는 것보다 희망고문이 백배 천배 나을지 모른다.


'견뎌내는 자가 결국 승리한다' 라는 말을 들어보았을 것이다.

이 말도 '힘든 일은 언젠가는 다 지나간다'라던가,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말과 일맥상통할 것이다. 단순히 ‘견뎌내기만 하면’, ‘시간이 지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라기보다는, 불행하다고 생각했던 그 힘든 일들이 결국 시간이 지나고 나서는 오히려 행운의 모습으로 찾아올 수 있다는 의미라고 생각한다. '새옹지마'라는 말의 유래가 되었다는 '새옹'이라는 노인의 말처럼, 화(禍)라 여겼던 일이 복이 되어 돌아왔다가, 다시 화 되기도 하고, 그 화가 언젠가는 돌고 돌아 또 다른 복의 모습으로 돌아올 수도 있으니 말이다.


급하게 전셋집을 구하러 다닌 적이 있었다.

고달프게 발품 팔아 이곳저곳 돌아다녀도 내가 가진 예산에 마땅한 집을 찾지 못하고 고민하고 있었다. 그러던 참에, 정말 괜찮은 집을 발견했다. 하지만 예산을 살짝 초과한 전세보증금 금액에 망설이다가 그 집을 놓쳐버렸다. '대출을 조금이라도 더 받고 선택했어야 했나..'하고 후회도 많이 했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까 그 집주인 할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시는 바람에 전세 보증금이 상속유산이 되어 문제가 복잡해졌다는 부동산 아주머니의 이야기...망설이다가 놓쳤던 걸 엄청 후회했었는데 이제 보니까 완전 다행이었던 거잖아?! 우유부단했던 나..잘했던 거잖아?! 결국은 현재 살짝 벽지가 하얗지 않고 베이지 색에 가까워지고 있는 집에 살고 있지만 나중에 전세보증금 받지 못할까 봐 전전긍긍하며 스트레스로 탈모가 오는 것보다 백 번 나으니까 이것 또한 예상치 못했던 행운이리라.


살다 보면 작은 일에 급 화를 냈다가, 또 예상치 못하게 얻은 작은 행운에 금세 희죽거린다.

큰맘 먹고 찾아간 맛집 앞. 줄을 서야만 입장 가능한상황에서 줄이 너무 길다. 결코 누가 시켜서 간 것도 아니면서 "이렇게 1시간 넘게 줄을 서서 기다릴 일이야?"하고 투덜투덜하다가도, 막상 들어가서 한 입 먹으면 언제 짜증이 났었냐는 듯 웃음이 난다. 소개팅을 하기로 한 날, 소개받기로 한 상대가 아파서 나오지 못한다는 말에 기분이 좀 나빴었는데 그 자리에 급하게 대신 나온 사람과 결국은 결혼한 지인도 있다.


일상 속 크고 작은 일들에 너무 일희일비할 필요가 없다. 지금 당장은 '도대체 왜 나한테 이런 일이?' 싶지만, '아... 그때 내가 그걸 선택했어야 하는데..'하고 후회가 되지만, 또 모른다. 이 일들이 나에게 언제 어떤 모습으로 다시 찾아와서 놀라게 할지 말이다. 안 좋은 일이라고 생각했던 일이, 그 당시에는 너무도 고통스러웠던 일이, 언젠가는 나에게 더 큰 복으로, 생각지 못한 행운으로 갑자기 변장을 벗어던질 수도 있는 것. 그럴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살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이런 마음가짐으로 힘든 인생 한 번 버티고 살아보라고 과거의 현자가 이 말을 만들었을 수도 있겠다. 실로 긍정적인 가스라이팅 일 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사실 작년부터 힘들고 마음이 쓰리고 고통스러웠던 일들이 꽤 있었다. 결국 이 모든 일들도 나중에 돌이켜 생각하면 "이렇게 좋은 일이 있으려고 그 당시에 그랬었나?"하고 말할 수 있는 날이 있을까? 미래의 일은 그 누구도 모르지만 그럴 거라고 믿으면서 오늘 하루도 살아나가 보는 거다.


"It's gonna be a blessing in disguise."






a blessing in disguise는 진정한 모습을 보이지 않은 채 변장한 모습 속에 감춰진 축복이자, 은혜, 행운인 것이다. 우리말로 표현하면, '인생사 새옹지마', 또는 '전화위복' 정도로 표현할 수 있겠다. 우리 인생에서도 겉으로 보기에 "이게 웬 낭패인가...." 싶고, 또 "이런 일이 일어난 건 정말 내가 재수가 없나보네.."라고 할 만한 일도, 어찌 보면 나중에 좋은 일로 또 예상치 못한 행운으로 제 모습을 드러낼지도 모른다.



[한 모금 더]

bless

아마도 한 번쯤은 "God bless you!" 라는 표현을 들어보았을 것이다. 영미권에서는 누군가가 재채기를 하면 "God bless you!" 혹은 더 편하게 "Bless you!"라고 말을 건넨다. 종교적인 의미를 넘어서 상대의 건강을 빌어주는 일종의 예의상 표현인 것이다. 여기서 bless는 '축복하다, 신의 은총을 빌다'라는 의미의 동사이다. bless -ing를 붙여 blessing으로 사용하면 '(하나님의, 신의) 은총, 은혜' ,'축복' 또는 '다행스러운 일, 행운, 고마운 것' 등의 의미가 된다. 동사에 -ing를 붙였으니 동명사형으로 보일 수 있겠지만, 현대 영어에서는 단순 명사형으로 취급한다. (동사 + -ing로 만들어진 단어가 이제는 엄연한 하나의 단순 명사 or 형용사로 쓰이는 경우는 꽤 많다. 여러분이 잘 알 수 있는 exciting도 마찬가지이다.)


disguise

동사와 명사로 사용된다. '변장(하다), 가장(하다)', '속이기' 또는 '(사실을) 숨기다, (감정, 의도를)감추다'의 의미를 가진다. 회사에서 아니꼽고 열받고 짜증 날 때, 그 감정을 투명 셀로판지처럼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가면을 쓴 것처럼 억지웃음을 짓거나 또는 전혀 아무렇지도 않은 척 표정 관리하는 우리는 disguise의 재주꾼들이다.



[이렇게 활용]

* 해석은 자연스럽게 번역한 것으로, 직역이 아니므로 주의!


I'm sure it'll be a blessing in disguise in the end.

내가 장담하건대 이건 결국 전화위복이 될 거야.


He realized getting fired was a blessing in disguise.

그는 해고당했던 것이 전화위복이 되었단 것을 깨달았다.


Maybe it's a blessing in disguise for me.

어쩌면 이것이 나에게 잘된 일인 걸지도 몰라.


The delay was a blessing in disguise. It gave us time to prepare better.

(그) 지연은 뜻밖의 행운이었어. 결국 우리가 더 잘 준비할 시간을 주었으니까.


Getting sick forced him to rest, which was a blessing in disguise.

그는 아파서 어쩔 수 없이 쉬었지만, 그것이 오히려 (그에게) 다행스러운 일이었어.








우리 때로 안 좋은 일이 찾아와도, 스스로에게 이런 말로 토닥여봐요.

"Don’t worry, it’s not a big deal. It might turn out to be a blessing in disgui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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