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serves you right.
누군가의 불행을 진심으로 바란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하지만 타인에게 커다란 해를 끼치고도 아무렇지 않게 잘 사는 이들의 이야기를 뉴스로 접하거나, 얄미운 행동만을 골라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잘못을 깨닫기는 커녕 그 얄미운 행동들의 기술적 고도화를 꾀하는 것을 접할 때마다, 옛날 이야기에 나왔던 도깨비라도 진정 이 시대에 필요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우리에겐 누군가를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으로 나눌 자격이 없고, 절대적으로 좋은 사람과 또 절대적으로 나쁜 사람은 없다는 것은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타인에게 아무 이유 없이 해를 끼치거나 질서를 파괴하며 도덕적으로 잘못된 행동을 하는 사람은 벌을 받아야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살다 보면 "이 사람 정말 안 되겠네 진짜!"하고 단전에서부터 깊은 열받음이 올라올 때가 있다.
어딜 가나 아주 매너 없고, 얄미운, 잘못된 행동을 하는 이들이 꼭 숨어 있다. '월리를 찾아라' 속 '월리'보다 교묘하게 쏙쏙 잘 숨어있다. 복도식 아파트에서 남의 집 앞에 떡하니 쓰레기(크지는 않다. 뭐라고 하기 애매할 정도의 과자 봉지나 껍질 등이다.)를 버리고 가는 사람, 모두들 뙤약볕 아래 줄 서서 기다리고 있는데 교묘하게 새치기하는 사람, 만원 지하철도 아닌데 굳이 서 있는 사람을 세게 밀치고 가는 사람, 뒤에서 걸어오면서 가래침을 뱉어서 남의 다리에 튀게 하는 사람, 주차 자리를 어렵게 찾아서 겨우 주차하려고 진입하는데 거의 뭐 드리프트 실력 뽐내는 마냥 주차칸에 순식간에 바퀴 걸치는 사람. 이 외에도 다양한 상황 속 각양각색의 '빌런'들이 있지만, 이들을 거론하는 것만으로도 열기가 올라오니 여기까지 해야겠다.
'빌런'이란 단어는 본래 영화 속 '악당'을 가리켰지만, 현시대에는 위와 같은 이들을 통칭하는 표현으로도 많이 사용된다. 상식 밖의 몰지각한 행동을 일삼는 이들을 참다 참다 이제는 '악당'이라고 부르기 시작한 것이 왠지 모르게 귀엽다. 영화 속 빌런은 마동석급 주인공에게 참교육이라도 받지만, 현실 속 빌런들은 어쩌면 좋나. 현실에도 히어로가 필요하다. 직접 빌런과 대화를 시도하다가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현실이기에 몸을 사릴 수밖에. 영화 같은 비현실적이고 비상식적인 일들이 아무렇지 않게 벌어지고 있는 현실임에도 비현실적인 히어로만 없다. 난감한 현실이다.
빌런들에게도 레벨의 차이가 존재한다.
귀엽게 봐줄 수 있는 낮은 레벨의 쁘띠 빌런부터 정말 경찰을 불러야 하나 싶은 막가파 빌런도 있다. 그러나 이런 다양한 레벨의 빌런들이 있다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빌런 총량 보존의 법칙'이라는 말이 있다는 것이다.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보았을 것이다. 내가 생활을 하는 곳에 빌런이 없다는 생각이 들면, 그건 어쩌면 내가 빌런일 지도 모른다는 이야기 말이다. 그만큼 사람 사는 세상 어느 곳에나 크고 작은 빌런들이 존대한다는 것이겠지. 그리고 혹시 내가 의도치 않게 빌런이 할 만한 일을 하고 것은 아닌지 가끔 셀프 성찰도 필요하다는 뜻일 것이다.
어쨌든 빌런에게 대놓고 직접 대적하는 것은 여러모로 골치 아프고 피곤한 일이다.
그동안의 고정관념을 깬 남녀노소 다양한 모습을 한 빌런들은 일단 피하고 보는 것이 상책이다. 빌런과는 대화가 통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고(애초부터 대화를 통해 문제가 해결된다면, 그 상대는 빌런이 아니다), 직접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다가 뉴스에 나올 만한 일이 생길 수도 있는 요즘이니 몸을 사릴 수밖에 없다. 하지만 뭔가 당하고만 있기에는 마음이 괜찮지 않다. 지금 당장 이 억울하고 기분 나쁜 문제를 대신 해결해 줄 히어로는 없지만, '하늘에서는 너의 이 모든 행동을 다 보고 있노라!'라는 마음이라도 가져본다. 그리고 작은 소심한 복수라고 해보고 싶어진다. 그것도 아니면 '인생은 결국 인과응보라 했으니까!!'라고 셀프 위로해 본다.
하지만 이렇게 잔뜩 웅크린 소시민에게도 약간은 통쾌한 순간이 아주 가끔 찾아온다.
내가 진입하고 있던 주차칸에 "약 오르지?" 느낌으로 주차를 먼저 하려고 급 들어오더니 생각보다 좁은 주차라인에 진땀 빼고 있는 빌런. 그 순간 근처 더 좋은 위치에 차가 나간다. 오예-! 나는 편히 차를 댄다.
"흥! 꼴 좋다!"
환자에게 함부로 거칠게 대하고, 매일 밤 약속된 처치를 하지 않고서는 거짓 서명만 하고 갔던 빌런 간호사. 참다 참다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주치의 선생님에게 말씀드렸더니 "해야 될 일을 안 하고 서명을 거짓으로 하면 어떡해요? 안 했으면 안 했다고 하세요!"라고 빌런 간호사에게 주의를 주셨다. 속 시원한 것까진 아니어도 그래도 조금은 위로가 되었다.
"그래도 쌤통이다 정말!"
이런 순간이라도 가끔 있어야 하는 게 맞다.
가끔이라도 찾아와 주는 이런 순간이 없다면 우리도 언제 흑화 되어 빌런이 될지 모르니까 말이다. 어이없고 열받게 하는 빌런을 마주하게 되면 온몸으로 스트레스받는 대신, "꼴 좋다!" , "쌤통이다! 내 그럴 줄 알았다!"라고 대놓고 말하게 되는 상황이라도 상상하며 빌런을 피해보련다.
[한 모금 더]
serve
여러 의미로 사용되는 동사이다. 뒤에 어떠한 단어 및 어구들을 취하느냐에 따라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다. 기본적으로 '제공하다','섬기다'를 뜻하는 것뿐 아니라, '기여하다, 도움이 되다', '복무하다, 복역하다' , '(스포츠에서) 서브하다' 등으로 해석될 수 있다. 아래 예문을 통해 살펴보자.
- They serve lunch from 12 to 2.
점심은 12시부터 2시까지 제공돼요. (=그들은 점심을 12시부터 2시까지 제공해요.)
- He served the king loyally for years.
그는 수년동안 충성을 다해 그 왕을 섬겼다.
- They served the poor in remote villages.
그들은 외딴곳의 불쌍한 이들을 도왔다.
- He served in the Marines for a decade.
그는 십 년 간 해병대에서 복무했다.
- It’s your turn to serve.
네가 서브할 차례야.
- This box serves as a table and a seat.
이 상자는 탁자와 의자 역할을 동시에 해요.
[비슷한 표현]
* 해석은 자연스럽게 번역한 것으로, 직역이 아니므로 주의!
It serves you right!
쌤통이다! (*목적어인 you는 상황에 맞게 다른 목적어로 변경하여 사용!)
You had it coming!
다 네가 자초한 일이야!
That's what you get.
자업자득이야.
What goes around comes around.
자신의 행동은 다시 (자신에게) 돌아온다.
You'll reap what you sow.
뿌린 대로 거두리라.
작은 컵에 든 물속에 더러운 물을 조금 부으면 금세 컵속 물은 더러워지지만, 깊은 강 속에 더러운 물을 조금 부었을 때는 크게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어요. 언제 어디서 우리가 빌런을 맞닥뜨릴지 모르지만 그럴 때에도 우리의 이너 피스를 지키는 것이 중요할 것 같아요. 그들은 언젠가 자신의 행동을 후회할 일이 생길 테니 말이죠!
"They’ll get what they deserve somed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