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토 마리네이드
'처음 이 셀프 스몰 케이터링(?)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남은 음식을 버리지 않기 위함이었다. (중략) 냉장고 안에서 천천히 썩어간 음식을 가슴 아프게 발견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래서 눈에 보이는 곳에 두기 시작했다. 집 안을 왔다 갔다 하면서 하나씩 하나씩 주워 먹으면...'-요조, 만지고 싶은 기분
'요조'의 글에는 종종 기발한 발상이나 재치 있는 표현이 등장한다. 나는 그가 이미 아는 것을 새로운 시각으로 풀어내는 문장을 좋아한다. '먹다 남은 음식들을 버리지 않기 위해 보이는 곳에 꺼내놓고 오가며 집어 먹기 위해 '셀프 스몰 케이터링'을 시작했다는 표현은 '케이터링(catering, 행사나 연회를 할 때 음식을 만들어 제공하는 일. )'을 행사와 연관 지어 거창하게 생각해 온 내게 새로운 발상으로 다가왔고, 나는 그 표현과 더불어 '소박한 케이터링'을 좋아하게 되었다.
여유롭게 혼자 보내는 주말 오후였다. 원하는 일을 하며 시간을 보내다 길었던 해가 마침내 떨어질 조짐이 보여 밖으로 나갔다. 한낮의 열기가 식지 않아 지면은 아직 뜨거웠고 잔잔한 바람은 있었지만 바람조차 열기가 담겨있었다. 내심 달리기를 할까 생각했지만, 귀찮기도 했던 터라 무리하지 말자는 달리기 방침에 따라 합법적으로 마음 편히 걷기 시작했다. 원래도 고요하고 조용한 지역에서 지내는데 더운 여름날의 주말저녁 길은 유난히 한산했다. 남들이 특별히 선호하지 않는 것을 선호할 때의 이점은 이런 것에 있다는 생각을 한다. 아침 일찍 관공서 앞마당을 혼자 전세 낸 듯 달리고, 그곳을 아이와 넓은 야외 놀이터 삼아 놀고, 한적한 산책로를 누비는 일. 오늘은 고요한 동네를 누비는 소박한 호사 속에 찬찬히 걸었다. 머리를 비우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머릿속 한 구석을 차지하고 있는 생각은 '쓰고 싶은 글'에 관한 생각이었다. 좋아하는 임경선 작가는 본인의 롤모델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 소설 중 최애 50편 정도는 열 번 가까이 읽었다고 한다. 그는 글을 쓰다 막히면 하루키의 단편 소설을 읽고 '아, 내가 이런 글을 쓰고 싶었지'라며 환기가 된다고 하는데 그만큼 까지는 아니지만 나도 선호하는 형태의 글을 보면 '이런 글을 쓰고 싶었지' 생각하며 몇 번 읽어보고, 나의 글을 어떻게 개선해야 할지 생각하며, 쓰고 싶은 주제를 어떻게 풀어나갈지 생각하다 보면 머리가 복잡해져서 벗어날 필요가 있었다.
덥지만 걸을만했고, 뛰지 않는 대신 평소보다 조금 멀리 산책을 다녀오기로 했다. 잘 비워지지 않는 머리를 비우려 노력하며 걷다가 돌아오는 길 마트에 들렀다. 특별히 필요한 건 없었지만 빨갛게 완전히 익어버린 토마토를 보자 갑자기 필요해졌고, 모처럼 토마토에 설탕을 잔뜩 뿌려 먹을 생각을 하며 돌아왔다. 가벼운 산책이었지만 피곤했고, 드라마도 보고 시원한 것도 마시며 모처럼 혼자인 밤의 호사를 누리려던 때, '토마토 마리네이드'가 떠올랐다. 잠시 휴식을 미루고 내일의 나를 위해 5분만 시간을 내서 '소박한 케이터링'에 돌입했다.
책이나 기사, tv를 통해 생소한 요리를 접할 때 호기심이 생기는 요리가 있는데 '토마토 마리네이드'도 그중 하나였다. 무슨 요리인지 전혀 짐작할 수 없어 찾아보니 '마리네이드(marinade)'는 고기·생선 등을 재는 양념장이라는 뜻으로 '토마토 마리네이드'는 쉽게 말해 '토마토 절임'류의 요리임을 알았고 방법도 간단해 한번 만들어 보았다. 벌써 오래전의 일이다. 간단한 과정에 비해 맛이 좋았다. 인 풋 대비 아웃 풋이 좋았던 그 요리를 종종 만들어 냉장고에 비치해 두었는데 어느새 잊고 올해 들어 한 번도 토마토 마리네이드를 먹지 않은 사실이 떠올랐다. 갑자기 존재감이 부각된 토마토 마리네이드가 내일의 나는 먹고 싶을 수 있는데, 절여지고 숙성되는 시간이 필요한 토마토 마리네이드는 만들어서 바로 먹을 수 있는 요리가 아니므로 나는 내일의 나를 위한 케이터링에 나섰다. 양푼을 꺼내 토마토를 직경 1.5cm 정도로 잘라 담고(열십자로 칼집을 내서 끓는 물에 살짝 담가 껍질 벗기기는 귀찮아서 생략), 소량의 양파도 다지고, 바질 파우더도 뿌리고, 키우던 바질잎도 두 장 뜯어 넣고, 식초, 레몬즙, 꿀, 올리브유, 소금을 적당히 넣고 버무려 '토마토 마리네이드'를 만들었다. 어차피 우리 집에서는 나만 먹을 요리니 재료의 비율이 안 맞아도 딱히 상관은 없었다. 토마토 자체가 맛의 중심을 잡아주니 마리네이드가 시면 신대로, 짜면 짠 대로, 달면 단대로 나쁘지 않을 것이다. 숙성만 남은 토마토 마리네이드를 냉장고에 넣고 뒷정리를 하며 소박한 케이터링을 마쳤다.
만들다 보니 토마토 마리네이드에 관해 글을 쓰고 싶어 졌고, 그래서 (최대한 주변의 지저분한 것들이 안 나오게 노력하며 ) 과정샷을 찍었다. 글의 주제는 정해졌고 풀어나가는 일만 남았다. 언제나 바라는 소박하지만 결코 소박하지 않은 바람은, 재미 감동 유쾌 위로 개성 센스 등등 어떠한 이유로든 눈을 뗄 수 없는 매력적인 글을 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