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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진 Nov 06. 2024

여자와 군인 사이

남초 집단 속 그녀들에 관하여

 여자 군인은 피곤하다. 여자+군인이라서 피곤하다. 군인으로 살기에도 바쁜데, 필요시 여자의 회로도 가동해야 해서 더 피곤하다. 머릿속만 피곤한 게 아니고, 현실도 피곤하다. 여자와 군인 사이의 간극에서 벌어지는 오해가 있고, 애로사항이 있어서 피곤하다.  


 이런 말을 들어본 적이 있다. 근무 여건이 좋은 거 아니냐고, 부럽다고, 남초 집단에서 근무하는 느낌이 궁금하다고... 몰랐다. 내가 어떤 의미로는 좋은 여건에서 근무하고 있다는 것을;; 몰랐던 나는 (속으로) 답해준다. '그쪽과는 비교도 안되죠. 그쪽은 민간인이잖아요.' 또, 종종 받는 오해는 뭐가 있을까? 희소성의 이유로 (조건 불문) 인기가 많겠다?

 몸담고 있는 세계를 기준으로 말해보면, 군 생활은 현실이다. 너무 현실이라, 남초 집단이고 뭐고 매 순간을 버티기에 급급하다. 바빠도 너무 바쁘고 어쩌다 시간이 나면 그때는 내가 뭘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뭘 하며 살던 사람인지도 몰라 공허하다. 오해받는 희소성의 혜택(?)을 느낄 여유도 없고, 오해받는 인기(?)라는 것을 실감할 새도 없다. 결국 한 조직에 있다 보면 사람 대 사람으로 수렴할 뿐이다. 난 그렇다.  

 선배들도 상황이 크게 다르진 않아 보인다. 일정 연차(마흔 전후) 이상 여자 장교는 비율로 보면 미혼이 적지 않다. 여자는 자원해서 군에 오는 만큼, 오래도록 군에 남는 사람을 보면 개인의 삶보다 군이 우선시되는 경우가 많다. 그 헌신은 과연 자의일까? 겪어보니 업무가 워낙 많아서 '헌신' 아니면 다른 선택지가 없는 것 같다. 그래서 오래도록 군에 계시는 분들을 보면 개인은 없고, 군인의 자아만 존재하는 경우가 많이 보인다. 만약 그 '비혼'이 자발적 선택이라면 상관없지만, 겪어본 나의 군 생활에 비춰보면 비 자발적이 되었을 가능성도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경로로. 바빠서 시간이 없고, 연애를 안(못) 하고, 결혼이 늦어지고, 시기를 놓치고, 결국 결혼에서 멀어지는.. 혹은 너무 바빠서 그것에 관해 진지하게 생각조차 못 한 채 시간이 흘러버렸거나. 아니면 모든 과정을 건너뛰고, '결혼은 패스'의 경로로 직행하거나... 당연히 진실은 알 수 없다. 물론 자발적 비혼도 있겠지만, 비슷한 연차의 남자 장교는 미혼이 거의 없다는 것과 대조적이다.   

 애로사항은 뭐가 있을까? 아마 여자와 군인 사이의 외적 간극 아닐까. 개인의 가치를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나는 미모(미모라고 부를만한 게 있다면. 참고로 미모(美貌)는 아름다운 얼굴 모습이라는 뜻이고, 아름다움은 주관적이다.)와 군 생활은 양립하기 어려운 개념이라고 생각한다. 일단 전투복을 입으면 사진발, 화면발처럼 전투복발이 있을 수는 있다. 사복이나 체육복을 입으면 평범해도, 전투복을 입으면 안 평범해 보이고 한 번이라도 더 시선이 가는 효과라 할 수 있겠다. 근데 '군인 여자' 말고 그냥 '여자'라고 생각했을 때는, 일반인과 점점 출발 선상이 달라진다. 사실 군인은 미모가 필요한 직업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외모를 포기할 수 없다면 군 생활을 다시 고려해 봐야 한다. 나이 듦은 누구나 막을 수 없지만, 야전부대 군인의 외적인 시간은 격무와 스트레스, 잦은 직사광선 노출 등으로 더욱 빠르게 흐른다. 더구나 여자 군인은 메이크업과 액세서리, 의상 등의 도움도 받을 수 없고, 염색이나 펌조차 허용되지 않으니 본인 자체로 승부(?) 해야 해서 미모 관리에 취약한 직종이다. 당연히 네일(Nail)도 불가하다. 굳이 원하면 투명 무광 정도? 물론 외모관리에 관심이 많다면 애초에 이 직업을 선택하지 않았을 확률이 높겠지만. 그리고 과하게 그쪽으로 치중하다 보면 성별 자체로도 눈에 띄는데, 더 눈에 띄어 군 생활이 피곤해질 확률이 높다. 근데 내가 보기에 여자 군인들은 이미 조직에서 자신을 무채색으로 만드는데 능한 존재들이다. 그녀들은 아는 것이다. 눈에 띄는 것은 업무 성과만으로 충분하다는 것을. 그래서 행동에도 늘 주의를 기울이고 의상에 있어서도 운동복은 물론 사복도 점점 무채색으로 가게 된다. 그렇게 점점 원래의 자신과는 다른 사람이 되어간다. 그리고 어느 순간 군 생활에 찌들다 보면 생기(生氣, 활발하고 생생한 기운)가 사라지는 경우도 보인다. 매일 본인만 보면 잘 모를 수 있는데, 오가며 동기들을 만나거나 오랜만에 사진을 봤을 때 미모가 사그라드는 것이 보이기도 한다. 아... 너마저... 내가 다 안타깝다.  

 그렇다면 군인으로서의 외모는 내려놓더라도, 부대 바깥이나 휴가 때의 반전을 생각할 수 있겠지만 부지런함이 전제되어야 하고 그럼에도 벌어지는 그 간극을 메우기 쉽지 않다. 이런 거다. 아주 잠깐을 위해 언제 손톱 색깔을 일일이 바꾸고, 머리에 웨이브를 주고 메이크업에 긴 시간을 투자할 것이며, 그럼에도 몇 번 해보면 당위성의 부족으로 의욕은 빠르게 사라진다. 찰나의 시간이 지나면 원상 복구를 해야 하므로. 또한 그을리고, 무난함에 익숙해져 가는 외모는 소위 '예쁘다'를 생각했을 때 떠오르는 것들과는 부조화를 이루고, 민간인 친구들을 만나면 차이가 점점 벌어진다. 혼자 군인이 사복을 입은 느낌? 결국 어느 한쪽을 놓게 되고, 아마 민간인 쪽 분위기를 포기할 확률이 높겠다.

 너무 외적인 부분을 확대 해석하는지는 모르겠다. 물론 그에 앞서서 전제되어야 할 것은 성품이겠지만. 어떤 사람은 성품이 너무 아름다워 외모가 잘 보이지 않고, 누군가를 자주 봐서 익숙해지면 외모가 잘 눈에 들어오지도 않으므로. 근데 자문해 볼 필요는 있다. 그렇다면 나는 그 모든 것을 초월할 성품을 지녔는가라고.

 다른 오해라면 여자 군인은 부대에서 인기가 많겠다, 남초 집단이니 연애하기 쉽겠다 정도 아닐까. 일단 초반에는 이유 불문 관심과 호기심의 대상이 되긴 한다. 하지만 그것이 인기는 아니다. 희소성의 이유로 이유 불문의 인기를 누리는 것은 아니고, 여자 군인의 인기도 부익부 빈익빈일 확률이 높다. 그 인기라는 것도 특별히 어떤 실체가 있는 것은 아니다. 실상은 아마 어떤 유형의 이미지로 소비되는 것이리라. 누가 예쁘다더라, 누구는 내 스타일이다 정도의. 그리고 그것이 연애로 이어지는 건 또 다른 문제다. 실명을 내세워 일하는 이 조직에서 앞뒤 분간 안 하고 섣불리 들이대기에는 위험부담이 크기에 과도하게 들이대는 사람은 드물다. 그리고 앞뒤 분간 안 하고 접근하는 경우가 있다면 그때는 진짜 경계해야 한다. 아주 피곤함을 겪는 수가 있다. 그리고 어느 조직이나 마찬가지이겠지만 이곳 또한 사내연애 후폭풍이 크다. 비밀연애도 좁은 지역에 모여 살다 보니 들키는 건 시간문제고, 때로는 구설수에 오르내릴 수도 있다. 신중해야 하는 이유이다. 표면적으로는 직속상관과의 연애도 금지되어 있다. 이토록 외적인 제약이 많은데, 아마 내적인 제약도 많으리라 여겨진다.  

 가장 큰 내적인 제약은 점점 딱딱해져 가는 본인 아닐까. 남초 집단에서 소수 성별로 버티다 보면 예민하고 날카로워지기 쉽다. 편견이나, 소외, 과도한 배려, 실질적 불합리함 등등 개인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부분이 있고 그러다 보면 긴장을 좀처럼 늦출 수 없게 된다. 자주 날을 세우고 있는 것이다. 또한 남초 집단임을 감안해 오해를 빚을 만한 일들을 경계하며 수없이 자기 검열을 하다 보면 점점 딱딱한 사람이 되기 쉽고, 실제로 어떤 사람들은 경계할 만한 충분한 자격을 갖추고 있다. 그래서 여자 군인은 자신을 숨기기 위해 무채색이 되었다가 마침내는 무채색을 넘어 자신이 아닌 색으로 변하기도 한다. 그러다 보면 고상함과 멀어지고, 여기서 고상함(품위나 몸가짐의 수준이 높고 훌륭하다.)이 적절한 단어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연애를 하기에도 점점 메마른 성품으로 변해 갈 수 있다. 오히려 남초 집단이기 때문에 연애와 멀어질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군인을 만나고 싶지 않은데 군인 말고는 만날 시간이 없고, 자신의 그 모든 생각을 초월할 만큼의 맘에 드는 사람은 없는 등등의 이유로 모르는 사람은 오해하는 남초 집단의 혜택(?)을 누리지 않는다. 


 그래서 여자 군인은 자주 피곤하다. 이 모든 것이 나의 이야기는 아니지만, 그래서 나도 피곤하다. 그리고 때에 따라 여자 군인은 여자와 군인 그 어디쯤에 위치하게 된다. 그것은 능동적이 아닌 수동적 개념에 가깝다. 그들이 여자와 군인 그 어디 즈음에 놓임을 당하는 순간, 그들의 지휘관은 여자와 군인 그 어디 즈음에 놓인 존재에 지휘 부담을 느끼기도 한다. 지휘 부담. 조만간 지휘부담에 관한 고백을 이어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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