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들이 속한 조직의 지휘 부담에 관하여
중대장님이 곧 떠날 예정이다. 능력 있는 분이라는 생각은 했었는데, 어렵다는 위탁교육 대상자로 선정되어 대학원에 진학하는 것으로 다음 보직이 결정되셨다. 군에 오래 남기를 원하시는 분인데 진로가 바람직하게 풀리고 계신 것 같아 잘 됐다. 후임자로는 무려 여자 중대장님이 오실 예정이다. 나랑 출신도 같다. 마침내 여자 직속상관과 근무하게 되다니 어떨지 궁금하다. 7년 선배라던데.. 역시 여자 군인은 전입 전부터 많은 관심을 받는다. 어차피 오시면 알게 될 텐데, 발 빠른 간부들은 여기저기서 정보를 물어오고 있다. 현재 어디 소속이고, 업무 스타일은 어떻고, 성격은 어떻고...로 이어지다가 외모로 넘어간다;; 키는 얼마고, 얼굴은... 나중에 나도 부대 이동할 생각 하니 미리 부담스럽다. '
여자 군인에 가끔 따라붙는 단어가 있다. '지휘 부담'. 지휘부담이라는 단어는 '여자 군인'에 종종 세트로 따라붙는다. 지휘부담을 이유로 애초에 여자 군인을 거부하는 지휘관도 있다. 군인이지만 '여자'의 성별을 가진 그들로 인해 벌어질지 모를 사건사고 위험 부담을 떠안고 싶지 않은 것이다. 실제로 전입 전에 거부당해 보직이 바뀌거나 부대가 바뀌는 동기들이 있었다... 내가 이 부대에 받아들여지던 분위기는 어떠했을까? 이제껏 소대장을 받던 형태보다 체계적이고 조직적으로 받아들여지던, 유난이라 분류해도 될 만큼의 과도함. 그 온도를 따져보면 '환영'으로 분류해도 될 분위기 아니었을까. 그 후 나는 속으로 힘들어할 뿐 특별히 문제가 될만한 행동은 하지 않았고, 직속상관인 중대장님과 창장님과 잘 지내서 '지휘 부담'은 나와 거리가 먼 이야기라고 오해했다. 아니었다. 지휘 부담은 내 행동으로 야기되는 개념이 아닌 내 존재가 야기하는 개념이었다. 내가 의식하지 못했을 뿐, 그것은 내가 전입 온 이래 상관들은 지속적으로 떠안고 있었다.
- 부대 내 사건 사고가 생겨 수습을 위해 동료들과 지방에 간 적이 있다. 일과를 마치고 출발하다 보니 당일에 돌아오기에는 늦은 밤이 되었다. 피곤했던 우리는, 나 말고도 다른 동료 여군이 있어서 찜질방에 갔다. 여성 전용 취침 공간도 따로 있어 문제 될 건 없으리라 생각했으나, 창장님의 전화를 받고 새벽에 어둠을 뚫고 빠르게 복귀했다. 여군 두 명을 다른 동료들과 외부에서 재우기에는 그분의 지휘 부담이 크셨던 것이다.
- 군 내에서 독서감상문 수상자로 선정되어 군수사령부에 가게 되었다. 먼 길을 가야 하기에 부대에서는 운전병과 함께 차를 내주었고, 마침 그날은 창장님도 사령부에 일정이 있으신 날이었다. 하지만 복귀 시간이 달라 (다행히) 차를 각각 타고 갔다. 창장님보다 먼저 일정을 마친 나는 운전병과 복귀했고, 부대에 최대한 천천히 가고 싶어 하는 기색이 역력했던 아이와 점심을 먹고 들어가기로 했다. 점심을 먹고 다시 돌아가는 길 깜빡 잠이 들었다가 창장님의 전화에 깼다. 옆을 보니 창장님의 차가 지나가고 있었다. 복귀 후 창장님 방에 불려 가서 한소리 들었다. 둘이 차를 타고 갈 때, 자고 있으면 안 된다며 운전자의 혈기왕성한 나이를 강조하셨다.
- 어느덧 나는 탄약 중대의 선임 소대장이 되었지만 몇몇 업무들은 끝내 경험해 보지 못했다. 부대에서 일주일간 영내 대기하며 지내는 5분 전투대기부대(일정 숫자 이상의 병력이 주둔하는 병영이나 숙영지에서 긴급한 초동조치가 필요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를 대비하여 군대에서 운용하고 있는 부대) 업무와, 타 부대에서 1박을 하고 돌아오는 탄약 호송(護送, 목적지까지 보호하여 운반함) 업무에서 제외되었다. 초급 간부의 업무인 그 일을 하던 다른 간부들이 부러웠다. 남자들은 오히려 나를 부러워했지만, 형평성에 맞지 않는다는 의견을 제기하지는 않았다. 다만 나는 후임들이 탄약을 실은 차를 타고 떠날 때 여전히 속으로 부러워하고 있다.
타 부대 동기들을 봐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또한 성(性) 관련 사건 사고 예방을 위해 여군과 함께 근무할 때 지켜야 할 방침은 구체적으로 강화되고 있다. 일례로 단둘이 사무실에 있을 때는 문을 열어둘 것, 1:1로 차량에 동승하지 말 것, 식사 등의 1:1 만남도 지양할 것 등.. 지금은 권고 사항이지만 나중에는 방침으로 확정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강화된 방침의 실효성에 의문을 가졌는데, 얼마 전에 동기(여자)의 이야기를 듣고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야근을 마친 동기는 늦은 밤 집에 가야 하는데 갈 방법이 없었다. 이성 간의 1:1 카풀은 금지되어 동료의 차를 함께 타고 갈 수 없고, 이성 간 1:1 귀가도 금지되어 동료와 함께 걸어갈 수 없고, 부대에서 숙소까지 가는 길이 어둡고 위험해 혼자서도 걸어갈 수 없고... 집에 갈 방법이 없던 동기는 결국 정해진 방침에 가장 덜 위반되는 택시를 불러 귀가했다. 사실 늦은 밤의 택시도 위험할 수 있지 않나... 어쨌든 사고가 군 내(內)에서는 벌어지지 않아야 한다는 건가.
하지만, 앞서 언급한 나를 둘러싼 지휘 부담과 주변의 이야기들은 그럼에도 가벼운 축에 속할 것이다. 실제로 지휘 부담은 무거울 형태로 발현될 가능성이 크며, 관련한 사건사고는 정작 지휘 부담을 가지는 지휘관 '당사자'에 의해 일어나기도 한다. 범죄나 그 밖의 형태로 사람 사는 곳이면 일어날 수 있는 여러 가지 형태의 사건사고가. 범죄는 역시 강압이 개입되는 경우일 테고(상하 관계의 영향도 있을 수 있다.), 그 밖의 형태라... 최 측근에서 다른 성별이 보좌해 주다 보니 왜곡된 사랑의 형태로 변해간다던가, 사실 여부는 확실치 않아도 보직 해임으로 이어질 수 있는 껄끄러운 구설수들 아닐까. 군대 역시 작은 사회이기에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각양각색의 사건 사고가 일어날 가능성이 다분하고, 부대는 외진 곳에 위치하는 경우가 많으니 외로움에 시달릴 확률이 크다. 그 외로움이 사건사고를 부추기는 경우는 없을까.
그런가 하면 다른 측면의 지휘부담으로는 지휘관 본인이나 구성원들의 경험 부족이나 여군을 대상으로 한 인프라 구축의 부족함에서 빚어지는 부담이 있겠다. 익숙지 않은 성별을 한 조직에 받아들이기 위해 만들어야 하는 기반 시설들, 남자들끼리의 군 생활만 하다가 익숙지 않은 성별에 적응해 가는 과정과 시행착오들. 그런 표면적 이유들 외에 여자 군인이 가질 수 있는 내면적 이유들. 지휘부담으로 부대에 받아들여지길 거부당하면 미리부터 위축되거나, 행여나 생길 수 있는 오기. 그러한 마음들이 쌓여 지휘관 혹은 상급자와 일으킬지 모를 마찰. 또한 갓 성인이 되어 부사관으로 입소하거나 대학 졸업 후 처음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장교들의 경우 미숙하고 사회 경험도 없는데 계급과 권력이 존재하는 이 조직에서 행여나 불합리한 일을 겪어도 불합리한지 조차 인지할 수 없고, 제대로 문제 제기를 하기 어려우며 수없이 시행착오를 겪거나 상처도 많이 받을 것이다. 현실적으로 이들을 보듬어 줄 윗사람이나 멘토도 부족하고 이해받기 어려운 마음을 혼자 안고 지낼 수도 있다. 마침내는 최대한 내부적으로 덮으려고 노력하지만 손을 쓸 수 없을 즈음 기어이 외부로 터져서 접하게 되는 사건 사고들... 경험하지 않아도 그러한 무거움 들을 감히 조금은 짐작할 수 있다. 가벼운 고백만 하고 넘어가기에는 나를 씁쓸하게 만드는 무거움을.
그래서 여자 군인은 의도치 않게 여자와 군인 사이에 놓임을 당하는 경우가 있고, 이 경우 그들의 지휘관은 지휘 부담을 갖게 된다. 상황을 수용하고 변화하고 본인이 성장하며 여자 군인까지 성장시키는 훌륭하신 분들도 많지만, 안타깝게도 여자 군인을 받고 싶지 않다는 거부의 뜻을 나타내거나, 혹은 원망의 화살을 당사자에게 돌리는 경우도 있다. 다양한 형태의 사건사고를 직접 평가할 입장은 아니지만, 누군가는 겪었을 사건사고들을 군 생활 간 직간접적으로 나마 겪거나 경험하지 않아 다행이라고만 여기고 간과하기에는 마음이 무거워지는 일들이 많다.
그나저나.. 이런 마음들을 많이는 이해 못 하는 선배들은 여자 중대장님 전입 소식에 그저 날 놀리느라 신났다. 이제 좋은 시절 다 갔다며(언제 좋았는지 모르겠다만;). 이제 너는 맨날 얼차려 받고 갈굼 당하고 혼날 거라며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는데... 전혀 무섭지 않다. 설마 후보생 시절의 훈육 장교님 같은 분이 오실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건 본인들 희망 사항이 아닐까. ㅋ 근데 기행 병과라 그런지 훈련을 제외하면 내가 소속된 탄약 중대의 평시 모습은 확실히 전형적인 군인을 떠올리기에는 무리가 있다. 그런 거 보면 역시 군인의 꽃은 '보병'이 맞나 보다. 이야기가 다른 쪽으로 흐르고 있는데, 끝으로 궁금한 것은... 여자 지휘관은 과연 휘하의 여자 부하에 대해 지휘 부담을 가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