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나는 대전을 지나고 있다. 나의 한 시절을 품고 있는 이 도시를.
군인이 된 후 대전은 내게 조금은 특별한 도시가 되었다. 임관 후 16주간 군수학교에서 초군반 교육을 받던 시간들, 군수학교 시절 주말마다 대전역을 오가던 시간, 초군반 동기들과 함께 은행동에서 보내던 시간들, 자대배치 후 수상자로 선정되어 군수사령부와 탄약사령부를 오가던 시간들, 초임장교 집체교육간 탄약사령부에 구대장으로 파견된 시간까지.. 나의 한 시절을 품고 있는 이 도시를 좋아한다. 자대와 본가를 오갈 때 지나며 늘 안부를 건네던 이 도시를, 지금은 여느 때와 다른 마음으로 지난다. 지금 나는 찬찬히 받아들일 새도 없이 심하게 긁혀버린, 어떠한 상흔을 씻고자 하는 마음으로 이곳을 지나고 있다.
만남이 주는 선물을 언제나 사랑했다. 혼자라면 가닿을 수 없는 세계를 만남을 통해 경험할 때 만남은 언제나 경이로웠고, 좁은 나의 세계를 넓혀주었던 만남을 사랑했다. 누리기만 했을 뿐 미처 몰랐다. 모든 만남에는 필히 감당해야 할 각자의 무게가 주어진다는 사실을. 몰랐던 대가로 나는 지금 고통스러운 마음으로 최근 내게 일어난 일들을 떠올린다.
"너 소식 들었어?" "무슨 소식?"... 비통한 소식을 전화로 접한 건 소대원들을 만나러 가던 길 택시 안이었다. 방어할 새도 없이 엄청난 기세로 내려앉던 심장. 꽃 같은 동기 하나가 스스로 세상을 등졌다는 소식에 잠시 모든 사고를 멈췄다. 고통스러운 일들은 편린적인 기억만 남는 걸까. 그 후 외박 나온 소대원들과의 약속을 어떻게 무마하고, 어떻게 숙소에 왔는지, 왜 일단 숙소에 왔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확실한 것은 그날 밤 빈 숙소에 나를 결코 혼자 둘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혼자 있으면 슬픔과 두려움의 무게에 눌려버릴 것 같아, 근처 부대의 동기들과 모여 통보하듯 부대의 동의를 구하고 밤새 차를 몰아 그의 빈소에 다녀왔다. 그 후로는 기억이 드문드문 이어진다. 처참한 빈소에서 마주했던 그의 가족들. 이곳까지 찾아와 주어서 많이 고맙다고. 우리 아이는 장군이 되고 싶어 했다고. 장군이 되어 칼을 차고 천하를 호령하고 싶어 했는데 그 칼이 비수가 되어 아비의 가슴에 꽂혔다고 말씀하셨던 그의 아버지의 말씀들. 수습할 엄두가 나지 않는 마음들을 일단 마음속에 구겨 넣고, 조문을 마친 우리는 다시 밤새 차를 몰아 각자의 부대로 돌아갔다. 돌아온 나를 기다리고 있던 건 긴 행군의 시간이었다. 빈소를 오가며 하룻밤을 꼬박 새우고, 곧장 출근해 하루종일 일하고 자정이 넘도록 산길을 걸으며 고된 행군에 차라리 감사했다. 공허함과 슬픔의 자리를 다른 것으로 메울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어두운 밤 산길을 걸으며 떠난 아이에게 여러 번 물었다. 왜 그랬냐고.. 가지 말지 그랬냐고... 행군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오래도록 잔 뒤 그 마음을 잠시 접었다. 그 아이가 생각나려 하면 다른 일들을 떠올리고 일상으로 덮었다. 생각하면 감당이 되지 않을 것 같아 자꾸자꾸 잊으려 노력했다. 어느 정도 통했다. 새로운 슬픔을 만나기 전까지는.
혹시 모든 슬픔과 죽음은 같은 곳에 뿌리를 두고 있는 걸까. 상처가 채 아물기도 전에 다시 비통한 소식이 찾아왔다. 휴식 시간에 잠시 행정반에 있다가 접했던 사건 사고 문서에는 사령부 예하 모 부대의 무슨 직책을 맡던 간부의 극단적 선택에 관한 내용이 담겨 있었다. 안타까워하며 문서를 읽는데, 기분이 묘하게 이상했다. 다시 찬찬히 읽어봤다. 계급. 부대이름.. 설마? 이니셜로 처리된 이름은 건너뛰고, 직책까지 확인한 뒤 심장이 심하게 내려앉아버렸다. 아는 사람이다. 아는 사람. 심지어 조금 친해진 사람이다. 초임장교 집체 교육 간 만났던 선배의 부고. 실낱같은 희망을 품고 같은 부대에 근무하는 후배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 선배님." 울음이 가득한 목소리에서 더는 확인이 필요치 않음을 알았다. 갑작스러운 비보는 잔인하게도, 가슴 한구석에 있던 상처까지 함께 끌고 나왔다. 차마 마주하고 수습할 용기가 안 나, 마음 한구석에 구겨 넣어둔 동기를 보낸 아픔까지 기어이…
구체적으로 알던 이들의 젊은 죽음은 처음이었다. 잠깐의 만남이라도 누군가의 상실은 마음에 얼마나 큰 상흔을 남기는가. 그들의 마지막 모습은 어땠던가. 웃고 있었을까. 함께 하는 시간 나는 그들에게 어떤 다정한 말을 건넸을까. 직접적인 부채는 없지만 그럼에도 한없이 미안했다. 그래서 아팠다. 한 번이라도 더 연락해서 안부를 물었다면 좋았을 텐데. 어떻게 그렇게 한순간에 떠날 수 있었을까. 마지막 시간, 그들은 혼자였다. 곁을 지키는 이가 아무도 없던 자신의 마지막이 그들은 두렵지 않았을까? 아니면 모든 두려움을 넘을 만큼 고통을 견딜 수 없던 것일까.. 모든 마음은 언젠가는 흘러가버림을 기억하고 조금만, 아주 조금만 더 그 시간을 견뎠더라면, 아무것도 안 해도 좋으니 그냥 견디기만 했었더라면 그랬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모든 것에는 끝이 있음을 기억하고, 자신을 조금만 더 믿었다면...
세상에는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없다고 생각했다. 아니었다. 어떤 일들은 삶의 시간이 아무리 길어져도 끝내는 이해 할 수 없을 것이다. 어쩌면 이해받지 못해 떠났을 그들을, 끝내는 나조차 이해할 수 없을 것 같아 그래서 다시 미안했다.
선배의 빈소에는 찾아갈 수 없었다. 파견기간 잠시 함께 근무한 나로서는 마땅한 명분도 없었고, 여건도 되지 않았다. 수시로 그의 SNS에 들어가 사람들이 그를 추모하는 글을 읽고, 근무지 조회 시스템에서 수시로 그를 검색해 그의 이름을 확인하고.. 사라지지 않길 바라며 내 방식으로 그를 기억하고 추모하는 것 밖에 할 수 없었다. 그리고 떠난 사람은 잊힌다. 조금씩.. 조금씩 잊힌다. 어느덧 군인 근무지 조회 시스템에서 그는 더 이상 검색되지 않았고, 그의 sns에서 그를 기억하는 방문객들의 속도는 느려졌다...
함께 휩쓸려 버린 이 슬픔 끝에 나를 기다리는 것이 자기 연민임을 원치 않는다. 이기적인 나는 이 슬픔을 매듭짓고자 노력하며 끝내 나를 걱정한다. 한때 존재하던 이들이 남긴 구체적인 빈자리의 무게까지 더해진 이곳에서 또다시 긴 시간을 보내야 하는 나를.
다행히 업무적으로는 아직 평탄한 날이 이어지고 있다. 덕분에 잠시 휴가를 내고, 잠시 쉬어가는 시간을 갖기로 한다. 집으로 가는 길 나는 대전을 지난다. 흐린 날이다. 그들을 보내기에 알맞은 날. 대전을 지나며 나는 대전에서 만난 그들을 보낸다. 비우고 비우고 다 비우고 다시 좋은 기억으로 채워지기를. 다음번 다시 대전을 찾을 때는 그 마음이 기쁨이길 바라며. 이곳에서 만난 이들과의 만남을 이곳에서 맺는다.
나는 다시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을 할 수밖에 없다. 다시 찾아오는 만남들을 믿고, 만남에는 사계절이 있음을 기억하는 것. 나에게 주어진 삶을 힘껏 껴안는 것. 오직 나에게 주어진 나의 삶에 자리에 부지런히 나의 몸과 마음을 가져다주는 것. 행여나 언젠간 이 만남이 다시 나를 고통의 자리로 부른다면, 기억하자. 이 시간 나는 그들을 보냈음을. 그럼에도 당신들을 만나서 좋았고, 그래서 나는 내 삶을 더욱 사랑하겠다고.